[대상판결: 서울행정법원 2025. 4. 10. 선고 2024구합64840 판결]
1. 사안의 개요
피고보조참가인(이하 ‘
참가인’)은 2023. 2. 6.부터 세종시에 위치한 A병원(이하 ‘
종전 병원’)에서 진료원장으로 근무한 한의사입니다. 종전 병원은 2023. 8.경 폐업하였고, 원고는 2023. 9. 26. 종전 병원과 동일한 주소지에서 B병원(이하 ‘
이 사건 병원’)을 개설하였습니다. 참가인은 종전 병원이 폐업함에 따라 근로관계가 종료되었는데, 이 사건 병원으로 고용이 승계되지는 않았습니다.
참가인은 원고가 고용을 승계하지 않은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하였습니다. 초심에서는 ‘원고가 종전 병원의 영업을 포괄적으로 양수하였다고 볼 수 없어 참가인에 대한 고용승계의무를 부담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제신청을 기각하는 판정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재심에서는 ‘원고가 실질적으로 종전 병원의 영업을 포괄적으로 양수하였는데도 정당한 사유 없이 참가인에 대하여 고용을 승계하지 않는 것은 부당해고에 해당한다’며 참가인의 구제신청을 인용하였습니다.
이에 원고는 재심판정의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서울행정법원은, 사용자가 사업체를 폐업하고 그에 따라 소속 근로자 전원을 해고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단결권 등을 방해하기 위한 위장폐업이 아닌 한 원칙적으로 유효하다는 기존 법리를 확인하였습니다(대법원 1993. 6. 11. 선고 93다7457 판결 등 참조). 그리고 법령상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재산상 권리의 양수인이 양도인 영업 일체를 양수할지, 아니면 그중 일부 자산만 양수할지는 ‘사적 자치’의 문제로 양도인과 양수인이 계약으로 정할 사항일 뿐, 반드시 양수인이 양도인 영업 일체를 양수하거나 기존 고용관계를 승계해야 할 법적 의무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영업양도’에 해당하는지는 영업재산이 어느 정도로 이전되어 있는가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종래의 영업조직이 유지되어 그 조직이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며 영업재산의 전부를 양도했어도 그 조직을 해체하여 양도했다면 영업의 양도로 볼 수 없다는 기존 법리도 확인하였습니다(대법원 2001. 7. 27. 선고 99두2680 판결, 대법원 2005. 6. 9. 선고 2002다70822 판결 등 참조).
이러한 법리에 비추어 다음과 같은 사정을 살펴보면, 참가인은 종전 병원이 폐업하면서 그 개설ㆍ운영자로부터 해고된 것일 뿐이고, 원고는 종전 병원의 자산 일부만을 양수한 것에 불과하므로 참가인을 고용할 법적 의무는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 종전 병원의 개설자는 병원 영업이 어려워지자, 종전 병원을 양도하는 방안을 모색하였다. 원고도 종전 병원의 양도를 제안받았으나, 이를 거절한 후 종전 병원의 임대차계약을 승계하지 않고 건물주와 신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등 새로운 한방병원을 개설할 준비를 하였다.
- 원고와 종전 병원의 개설자 사이에서 계약상 양도의 대상이 된 자산 대부분은 컴퓨터, 책상, 의사, 선풍기 등의 일반적인 물품 및 가구에 불과하고, 한방병원 영업의 핵심이 되는 전문적인 의료기기 자체는 소수만 양도대상으로 포함되었다. 원고가 대신 납부하기로 약정한 종전 병원의 의료기기 할부 채무 약 8,000만 원을 고려하더라도 계약의 전체 양수대금은 9,000만 원에 그친 반면, 원고가 의료기기 및 장비 구입비와 인테리어 비용으로 지출한 금액은 약 2억 8,000만 원에 달한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보면, 원고가 종전 병원으로부터 양수한 물적 자산이 종전 병원 영업의 근간이 되는 일체의 조직 수준에는 이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원고는 종전 병원의 인력들 중 참가인을 포함하여 한의사 2명을 모두 다시 채용하지 않았는데, 원고가 종전 병원의 영업 일체를 양수하여 이 사건 병원에 활용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면 핵심적인 운용인력인 한의사들만 고용하지 않을 이유를 찾기 어렵다.
- 원고와 참가인이 나눈 대화 내용에 따르면, 원고는 종전 병원의 개설자와는 달리 직접 의료행위를 할 의사가 있었기에 한의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참가인을 고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참가인과 같은 한의사의 고용을 승계하지 않은 합리적인 이유가 될 수 있다.
- 원고가 이 사건 병원 개설 시 발송한 홍보 메시지나 각종 광고에는 종전 병원의 폐업과 이 사건 병원의 개설이 서로 연결된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문구가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같은 장소에서 동종의 병원이 신규 개설된다면 그와 같은 내용의 광고가 이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이 사건 병원에서 종전 병원의 진료기록을 보관하고 있지만, 이는 환자들에게 진료기록을 발급하는 용도로 활용되는 것으로 보일 뿐 원고가 이를 이 사건 병원의 영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 원고는 종전 병원을 그대로 인수하여 운영할지, 아니면 종전 병원과 구별되는 새로운 병원을 신규 개설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 따라서 동일한 장소에서 동종의 병원을 개설하려 하였다는 사정만으로 원고가 종전 병원을 양수하려는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으며, 특히 종전 병원이 과다한 채무로 더 이상 운영될 수 없는 상황에 있었음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재판부는 위와 달리 판단한 이 사건 재심판정은 위법하다고 보았습니다.
3. 의의 및 시사점
대법원은 영업양도를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하여 조직화된 일체, 즉 인적ㆍ물적 조직의 동일성은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영업양도가 이루어진 경우, 원칙적으로 해당 근로자들의 근로관계가 양수 기업에 포괄적으로 승계되지만 근로자가 반대 의사를 표시함으로써 양도 기업에 잔류하거나 양도ㆍ양수 기업 모두에서 퇴직할 수 있습니다(대법원 2013. 5. 10. 선고 2011다45217 판결 등 참조). 그리고 영업양도 당사자 사이에 고용관계의 일부를 승계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특약이 있다면 그에 따라 근로관계의 승계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지만, 그러한 특약은 실질적으로 해고나 다름없으므로 현 근로기준법 제23조 소정의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어야 유효합니다(대법원 2002. 3. 29. 선고 2000두8455 판결 등 참조).
대상판결은 영업양도 및 고용승계에 관한 위 법리를 확인하였습니다.
다만, 종전 병원의 개설자와 원고 사이에 자산 양수도 계약이 체결된 경위, 내용, 규모 및 각 당사자의 의사 등을 고려하면, 그 조직을 해체하여 양도한 것으로 영업양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그 결과 종전 병원에서 이 사건 병원으로 고용승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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