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25. 11. 14. 선고 2025가합9350 판결]
1. 사안의 개요
피고는 주식회사 B(이하 ‘
이 사건 회사’) 소속 근로자들을 구성원으로 하는 노동조합이고, 원고들은 이 사건 회사의 근로자로서 피고 조합원입니다.
피고는 2021. 3. 25.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피고 규약을 아래와 같이 개정하는 결의(이하 ‘
이 사건 개정결의’)를 하였습니다. 조합이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한 범위를 사실상 축소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이루어졌습니다. 피고는 2022. 3. 24., 2024. 3. 26., 2025. 3. 27. 피고 규약을 각 개정하였으나, 이 사건 개정 규약은 이 사건 개정결의 이후 추가적으로 개정된 적이 없습니다.
| 개정 전 |
개정 후 |
제61조(단체교섭)
① 본 조합은 단체교섭의 당사자이며, 본 조합이 교섭대표 노조가 되는 경우 위원장은 단체교섭 및 체결권은 있으나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친 후 체결하여야 한다.
② 위원장은 교섭권을 대의원대회에 의결을 거쳐 상급단체에 위임할 수 있다. |
제61조(단체교섭)
① 본 조합은 단체교섭의 당사자이며, 본 조합이 교섭대표 노조가 되는 경우 위원장은 단체교섭 및 체결권을 가진다.
② 규약 제21조 제4호에 따라 조합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는 임금협약 및 단체협약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정기 임금협약 및 정기 단체협약
2. 기타 필요하다고 인정한 경우
③ 위원장은 교섭권을 대의원대회에 의결을 거쳐 상급단체에 위임할 수 있다. |
피고는 2024. 10. 17. 이 사건 회사와 특별희망퇴직에 관한 노사합의(이하 ‘
이 사건 노사합의’)를 체결하였는데, 이 사건 노사합의와 관련하여 조합원 총회를 거친 적은 없습니다.
한편, 피고 조합원들은 피고와 피고 임원들을 상대로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은 채 근로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대한 노사합의를 함으로써 피고 조합원들의 근로조건이 훼손되고, 조합원으로서 가지는 절차적 권리를 침해하였으므로 불법행위에 따른 정신적 손해배상을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피고 조합원들의 청구를 인용하는 판결이 선고(2014가합35452, 서울고등법원 2015나2026878)되었고, 대법원에서 확정(대법원 2016다205908)(이하 ‘
선행판결’)되었습니다.
선행판결이 선고된 이후, 피고 조합원들은 ‘피고가 규약에 위반하여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고 이 사건 노사합의를 체결하였고, 이로 인해 원고들은 조합원으로서 가지는 절차적 권리를 침해당했다’며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2.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정기 임금 및 정기 단체협약 외의 주요 사항을 의결 대상에서 제외한 2021년 3월 규약 개정은 조합원의 단체교섭과 의사결정 참여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무효”라고 판단하면서, “총회 결의 없이 이루어진 이 사건 노사합의에 대한 피고의 불법행위가 인정된다”고 보아 원고들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가. 조합 규약 개정결의의 효력 - 무효
1) 노동조합법 제16조 제1항은 노동조합을 자주적 ·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데에 필요한 주요 사항을 반드시 최고의사결정기관인 총회에서 의결해야 하는 것으로 규정한다. 이는 노동조합의 구성원인 조합원이 그 조직과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고, 헌법이 규정한 근로자의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규정으로써 강행규정에 해당한다.
2) 노동조합법 제16조 제1항은 ‘단체협약에 관한 사항은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 ‘정기 단체협약’의 경우에만 조합원 총회 결의를 거치면 된다고 해석할 근거가 없다.
3) ‘정기 단체협약’과 ‘기타 단체협약’을 구분할 명확한 기준이 없다. 그런데도 이 사건 개정 규약에 따라 ‘정기 단체협약’의 경우에만 조합원 총회를 필수적으로 거쳐야 한다고 해석하게 되면 ‘조합원의 지위 및 권리 ·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총회 결의 없이 체결함으로써 노동조합법 제16조 제1항 제3호를 잠탈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4) 모든 조합원의 의사를 수렴하는 것에 절차적 번거로움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이와 같은 사정만으로 헌법 및 관련 법률이 보장하는 조합원의 총회 의결권을 박탈할 수는 없다.
나.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인정 여부 - 인정
1) 관련 법리
- 노동조합의 대표자가 위와 같이 조합원들의 의사를 결집 · 반영하기 위하여 마련한 내부 절차를 전혀 거치지 아니한 채 조합원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하여 만연히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하였고, 그 단체협약의 효력이 조합원들에게 미치게 되면, 이러한 행위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조합원의 단결권 또는 노동조합의 의사 형성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는 불법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대법원 2018. 7. 26. 선고 2016다205908 판결 참조).
2) 판단
- 선행판결에도 불구하고 피고는 단체협약에 대한 조합원 총회 결의를 제한하는 이 사건 개정 규약을 신설하고, 이에 근거하여 조합원 총회 결의를 거치지 아니한 채 이 사건 노사합의를 체결하였다는 점에서 피고의 위법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 전국대의원대회 결의만으로 조합원 총회에 갈음하는 조합원의 의견수렴 절차를 거친 것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
- 원고들은 피고가 조합원 총회를 거치지 않은 채 단체협약인 이 사건 노사합의를 체결함으로써 원고들의 절차적 권리가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이에 대한 손해배상을 구하고 있는 것이므로, 이 사건 노사합의 결과물이 원고들에게 유리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하여 절차적 권리 침해에 따른 위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거나 원고들의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3. 의의 및 시사점
대상판결은 헌법과 노동조합법에 의하여 인정되는 조합원의 총회의결권의 중요성에 입각하여 그러한 총회의결권을 실질적으로 박탈하는 노조 규약이 무효임을 선언하였다는 점에 의의가 있습니다. 노조의 총회와 대의원대회를 명확히 구분하여, “대의원대회가 총회에 갈음한다는 규정과 관행이 없음에도 대의원대회가 주요 사항을 총회 의결 사항에서 제외하는 결의를 한 것은 무효”임을 확인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희망퇴직 합의가 그간 회사가 정기적으로 실시해 온 희망퇴직보다 근로자들에게 다소 유리한 면이 있더라도, 조합원들의 중요한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항 등에 관하여 의결할 수 있는 조합원들의 절차적 권리가 침해되었다면 그 자체로 노조의 손해배상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한 점도 주목할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