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결: 서울고등법원(인천) 2025. 11. 26. 선고 2023나10014ㆍ10021ㆍ10045ㆍ10038 판결]
1. 사안의 개요
원고들은 공정시험, 운송, 정비, 폐수처리 등 지원 업무를 한 하청업체 근로자들입니다. 원고들은 원청업체(이하 ‘
피고’)가 통합생산관리시스템(MES) 등을 통해 원고들에게 직접ㆍ구체적으로 업무 지시를 했다며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피고는 원고들이 각 소속된 하청업체 근로자로서 도급업무를 수행하였을 뿐, 피고 회사와 근로자파견관계에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습니다.
2. 1심 판결의 요지
1심은 원고들에 대한 피고의 지휘ㆍ명령을 포괄적으로 인정하면서, 변론종결일 당시 정년이 지난 하청 근로자들을 제외한 원고 923명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 1심은 개별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이 수행한 구체적인 업무의 내용을 구별하지 않은 상태에서, “원청이 하청 소속 현장대리인을 통해 작업 요청을 했더라도 이들은 원청의 지시ㆍ결정 사항을 하청 근로자들에게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며 하청 근로자에 대한 원청의 상당한 지휘ㆍ명령을 인정하였습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상판결은
“근로자파견관계 성립 여부는 각 근로자별로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함”을 전제로, 일부 원고들에 대한 불법파견만을 인정(대상판결에서 근로자파견관계가 인정된 하청 근로자의 수는 923명에서 566명으로 감소)하고, 중장비 운송, 정비, 폐수처리 업무를 담당한 하청업체 근로자에 대해서는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하였습니다. 대상판결이 위 3개 하청업체 근로자들의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한 주요 근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가. 판단의 전제
원고들이 담당한 구체적 업무 및 해당 협력업체 소속으로서 피고와의 관계에서 업무를 수행한 방식 등은 근로관계의 실질을 파악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요소이다. 또한 근로자파견관계 성립 여부는 각 근로자별로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
나. 판단
1) 중장비 운용업체 소속 원고들에 대한 판단 - 근로자파견관계 아님
가) 피고는 2009년경부터 2013년경까지 제3회사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후 그 제3회사가 중장비 운용업체들과 하도급 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이 기간동안 피고는 중장비 운용업체들과 직접 소통ㆍ협의한 바 없다. 그리고 피고는 2014년경 이후에서야 이 사건 중장비 운용업체들과 직접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다.
나) 피고가 구내운송 관리시스템에 입력한 내용은 해당 업무 수행에 필요한 인원수나 근로자, 작업순서, 필요장비의 대수 등을 특정하지 않은 채 포괄적으로 이루어지고, 중장비운용업체의 각 현장대리인이 해당 업무를 수행할 근로자와 장비를 특정하고 무전기로 구체적 업무지시를 하였다.
다) 피고가 사용한 구내운송 관리시스템이나 중장비운용업체가 구내운송 관리시스템에 연동하여 사용한 PDA, 태블릿 PC에는 상ㆍ하차 장소, 운송대상 등이 표시된 것으로 보이나, 피고가 중장비운용업체 소속 원고들에게 개별적으로 업무를 지시한 내용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라) 피고는 업무를 지연하고 있는 당해 근로자에게 직접 연락하여 업무수행을 독촉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이고, 위 원고들이 해당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피고가 개별 근로자를 징벌ㆍ제재 및 관리할 권한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 이 부분 업무는 피고의 직접생산공정과 실시간으로 연동되지 않고, 물리적으로 분리된 장소에서 이루어진 점 등을 고려하면, 제출된 증거만으로는 위 원고들이 피고의 사업에 실질적으로 편입되었다고 인정하기 어렵다.
2) 정비업체 소속 원고들에 대한 판단 - 근로자파견관계 아님
가) 피고가 맥시모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작업의뢰를 하면서 보다 상세하게 작업대상을 지정하는 것은 설비 가동 중 언제 고장이 발생할지 모르는 점검과 수리업무의 특성과 성격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고, 그 자체로 구속력 있는 지시라고 평가하기 어렵다.
나) 이 사건 정비업체는 피고가 맥시모 프로그램을 통해 의뢰한 작업을 수행할지 여부에 대해 선택할 수 있었고, 수행을 희망하지 않는 경우 작업이 취소된 경우도 상당수 존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다) 원고들이 피고의 요청사항과 달리 작업을 수행하는 경우에도 피고의 사전승인이 필요하지 았다.
라) 돌발수리의 경우 피고 소속 근로자들이 직접 이 사건 정비업체 소속 원고들에게 작업을 요청하거나 업무수행 장소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이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한 경우 예외적으로 이루어졌고, 피고 소속 근로자가 이 사건 정비업체 소속 원고들과 구조적ㆍ상시적으로 하나의 작업집단을 구성하여 공동업무를 수행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3) 환경수처리업체 소속 원고들에 대한 판단 - 근로자파견관계 아님
가) 고로집진수ㆍ환경수처리공정은 OO제철소 내 생산설비를 가동하는데 필요한 냉각수 등을 공급하고, 각 공정에서 발생하는 폐수를 처리하는 부속공정이기는 하나 철강 생산공정과는 내용적ㆍ기능적 면에서 구분되어 생산과정의 일부라고 보기 어렵다.
나) 위 원고들은 주기적으로 정해진 일정에 따라 고로집진수ㆍ환경수처리 업무를 한 것으로 보이고, 피고로부터 별도로 구체적 업무지시를 받았다고 볼 증거가 없다.
4. 의의 및 시사점
대상판결은 근로자파견관계를 ‘각 근로자별로 개별적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판례 법리를 전제로, 개별 근로자들이 수행한 업무별로 불법파견이 인정되는지 여부를 달리 판단하였습니다.
특히, 대상판결은 (i) 피고가 피고의 업무와 실시간으로 연동되는 MES를 이용해 업무 지시를 하지 않고, (ii) 업무 성격상 피고의 주된 업무와 밀접하거나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에 대하여 근로자파견관계를 부정하였는데, 이는 대규모 제조 사내하도급 관계에서도 구체적인 업무 내용과 수행 방법 등에 따라 불법파견 성립 여부가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