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노동관계법령은 직장 내 징계절차에서 변호사의 조력권이나 참여권(이하 ‘
변호사 조력권’)에 관하여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업은 통상적으로 징계절차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징계대상자 등에게 비위혐의에 대한 소명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는데, 이러한 절차에서 변호사 조력권이 인정되는지에 관하여 명시적으로 판단한 대법원 판결은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하에서는 (i) 기업의 징계절차에서 징계대상자에게 변호사 조력권이 인정될 수 있는지, (ii) 변호사 조력권을 제한하거나 침해한 징계절차가 무효인지에 관하여 하급심 판례 사안을 위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직장 내 징계절차에서 변호사 조력권 인정 여부
가. 변호사 조력권이 인정된 사례
서울동부지방법원은 징계대상자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여 함께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려고 하였는데 사용자가 그 출입을 제지하자 인사위원회에 참석하지 않은 사안에서, 변호사의 직무를 규정하고 있는 변호사법 제3조
1)를 근거로 징계대상자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서 자신의 비위혐의에 관하여 징계위원회에 변명하는 것이 허용된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징계대상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비위혐의에 관하여 진술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징계해고는 무효라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동부지방법원 2007. 10. 19. 선고 2007가합4668 판결, 동 판결은 항소심에서 피고가 항소를 취하하여 확정됨).
나. 변호사 조력권이 부정된 사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헌법상 보장되는 변호인으로부터 조력을 받을 권리
2)는 형사사건에 있어 체포ㆍ구속되는 경우 보장되는 권리로서, 사기업의 징계의결 절차에까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라고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 회사의 취업규칙 등에 징계대상자가 변호사를 대동하여 징계절차에 출석할 권리를 보장하는 규정이 존재하지 않고, 징계대상자로서는 서면으로 의견을 제출할 때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징계절차에서 징계대상자가 선임한 변호사의 참여를 배제한 사실만으로 징계대상자의 소명기회가 실질적으로 박탈당하였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6. 22. 선고 2021가합575125 판결, 동 판결은 확정됨).
서울행정법원은 회사가 징계대상자의 변호사 대동을 거부한 사안에서, 헌법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제12조 제4항)는 형사절차에서 신체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므로, 사경제 주체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징계절차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없으므로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징계절차에서 징계대상자가 변호사를 대동하여 출석할 권리가 당연히 보장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0. 9. 25. 선고 2020구합60604 판결, 동 판결은 항소 미제기로 확정됨).
또한 서울행정법원은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징계절차에서 교원징계위원회가 변호사의 대동을 거부한 사안에서, 원칙적으로 학교법인과 사립학교 교원의 관계는 사법상 법률관계에 해당하므로 별도의 정함이 없는 한 사립학교 교원에 대한 징계에 관하여는 사립학교법에서 정한 징계절차의 규정이 적용될 뿐 ‘대리인으로 선임된 변호사가 당사자 등을 위하여 행정절차에 관한 모든 행위를 할 수 있다’는 행정절차법에서 정한 절차적 규정
3)이 유추적용되지는 않는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19. 9. 6. 선고 2018구합70325 판결, 동 판결은 항소기각 및 상고 미제기로 확정됨).
다. 소결
위 서울동부지방법원 2007. 10. 19. 선고 2007가합4668 판결은 사용자가 징계대상자의 변호사 대동을 거부하여 결국 징계대상자가 인사위원회에 출석하지 않음으로써 비위혐의에 대한 소명이 이루어지지 않은 사안으로, 변호사 조력권 제한 자체보다는 징계대상자의 소명기회가 실질적으로 박탈되었다는 사유로 징계절차의 하자가 인정된 면이 있습니다.
반면, 비교적 최근 하급심 판례들은 취업규칙 등에서 징계대상자의 변호사 조력권을 명시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사기업 등의 징계절차에서 징계대상자에게 변호사 조력권이 당연히 보장된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 주류입니다.
생각건대 (i) 노동관계법령상 직장 내 징계절차에서 변호사 조력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은 점, (ii) 징계절차 등의 구성 및 운영에는 사용자에게 폭넓은 재량권이 인정되는 점(대법원 1991. 4. 9. 선고 90다카27042 판결, 대법원 2004. 1. 29. 선고 2001다6800 판결 등 참조), (iii) 변호사 조력권을 반드시 보장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근로자의 방어권 내지 소명기회를 충분하게 부여할 수 있는 점 등에 비추어볼 때, 기업의 단체협약과 취업규칙 등에서 명시적으로 변호사 조력권을 규정하고 있지 않다면, 사용자에게 징계대상자의 변호사 조력권을 당연히 보장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3. 변호사 조력권을 제한할 경우 절차적 하자 발생 여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기업의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변호사 조력권이 구체적으로 규정되어 있지 않는 이상, 징계절차에서 징계대상자의 변호사 조력권이 당연히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사용자가 징계대상자의 변호사 조력권을 제한하더라도 이로써 실질적으로 징계대상자의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초래되어 징계절차의 절차적 정당성을 상실할 정도(소명기회의 실질적 박탈 등)에 이르지 않은 경우에는 그 절차적 하자가 인정될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4. 나가며
직장 내 징계절차에서 변호사 조력권은 취업규칙 등에 별도의 명문 규정이 없는 이상 징계대상자에게 당연히 보장되는 권리라고 보기 어려우나 변호사 조력권은 징계대상자가 징계절차에서 방어권을 효과적으로 행사하는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기업은 징계절차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절차적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징계절차에서 징계대상자에게 변호사 조력권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징계대상자들에게 변호사 조력권을 인정한다면, 징계절차와 그 결과에 대한 징계대상자들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글은 월간 노동법률 2025년 3월호에 게재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