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서울지방고용노동청 서울서부지청은 2024. 11.경 아이돌 그룹의 멤버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 민원 사건을 종결했습니다. 한편, 서울행정법원은 2023. 7.경 e스포츠 구단의 감독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보고 해고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였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3. 7. 13. 선고 2022구합77262 판결).
이처럼 프리랜서 방식의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가 많은
예술 및 체육계에서도 최근 근로자성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동종 업계의 동일 직군에서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구체적인 실질에 따라 근로자성 여부는 다르게 판단될 수 있으며, 그러한 사례로
스포츠 구단의 ‘트레이너’를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통상 스포츠의학을 선수들에게 직접 적용하는 현장의 전문가들로서, 선수트레이너(Athletic Trainer), 의무트레이너 내지 재활트레이너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아래에서는
최근 5년 간 스포츠 구단 ‘트레이너’의 근로자성 여부가 문제된 6건의 판결을 통해 주로 어떤 점에서 근로자성 여부 판단이 달랐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근로자성 판단 기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지는 계약의 형식이 고용계약인지 도급계약인지보다 그 실질에 있는 사업 또는 사업장에 임금을 목적으로 종속적인 관계에서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였는지에 따라 판단됩니다. 법원은 이와 같은 종속적인 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다음의
9가지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합니다(대법원 2006. 12. 7. 선고 2004다29736 판결 등).
① 업무 내용을 사용자가 정하고 취업규칙 또는 복무규정 등의 적용을 받으며 업무 수행 과정에서 사용자가 상당한 지휘ㆍ감독을 하는지
② 사용자가 근무시간과 근무 장소를 지정하고 근로자가 이에 구속을 당하는지
③ 노무제공자가 스스로 비품ㆍ원자재나 작업도구 등을 소유하거나 제3자를 고용하여 업무를 대행하게 하는 등 독립하여 자신의 계산으로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
④ 노무 제공을 통한 이윤의 창출과 손실의 초래 등 위험을 스스로 안고 있는지
⑤ 보수의 성격이 근로 자체의 대상적 성격인지
⑥ 기본급이나 고정급이 정하여졌는지
⑦ 근로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지
⑧ 근로 제공 관계의 계속성과 사용자에 대한 전속성의 유무와 정도
⑨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법령에서의 근로자 지위 인정 여부 등의 경제적ㆍ사회적 여러 조건 등
1) 대법원 2021. 7. 15. 선고 2017도13767 판결(축구단 트레이너)
이 사건 트레이너는 구단의 사전 승인 없이 업무를 제3자에게 위임할 수 없었고, 정형화된 출퇴근 시간, 합숙, 경기동행 등으로 인해 실질적인 시간적ㆍ장소적 구속을 받았습니다. 또한, 계약서상 겸직은 허용되지 않았고, 치료 등 업무 방식에 있어서도 구단의 지시를 받았으며 지각ㆍ조퇴ㆍ결근 시 구단에 보고해야 했습니다.
2) 대법원 2017. 11. 9. 선고 2017다263451 판결(축구단 트레이너)
이 사건 트레이너는 여러 해에 걸쳐 구단과 계약을 갱신하며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였고, 계약서 형식은 용역계약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구단의 구체적인 지휘ㆍ감독을 받았습니다. 출퇴근 시간과 장소가 구체적으로 정해져 있었고, 부상자 관리와 훈련일정 수행 등에서 구단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으며, 계약서상 겸직은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상황별 구체적인 보고체계 및 고정급 중심의 보수체계도 존재했습니다.
3) 대법원 2024. 12. 12. 선고 2024다288007 판결(야구단 트레이너)
이 사건 트레이너는 고정적인 출퇴근 의무를 부담하며 구단 내부 전산망을 통해 업무일지를 작성ㆍ보고하였습니다. 또한 연차별 임금 인상과 정기적인 고과평가에 따라 보수가 결정되었으며, 겸직이 규정상 허용되었으나 실질적으로 제한되었고, 구체적인 업무 내용도 구단의 필요에 따라 결정되었습니다. 나아가 트레이너실과 재활시설, 문서 작업 공간 등 근무환경이 구단에 의해 제공되었습니다.
나. 근로자성 부정 사례
1) 대법원 2021. 9. 16. 선고 2018다286840 판결(농구단 트레이너)
이 사건 트레이너는 선수단 소속으로 사무국과는 독립된 조직 하에서 근무하였고, 사무국의 지휘ㆍ감독이나 근태 통제를 받지 않았습니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였으나 이는 내부적 목표 달성을 위한 협업으로 해석되었습니다. 나아가 출퇴근 관리 및 휴가 승인 체계가 없었고, 성과보수 중심의 임금이 지급되었으며, 트레이너의 근무기간은 감독 계약기간에 연동되었습니다.
2) 춘천지방법원 강릉지원 2025. 1. 8. 선고 2023가단32609 판결(축구단 트레이너)1)
계약서상 이 사건 트레이너는 근로자가 아니고 퇴직금을 지급받지 않으며 겸직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명확히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실제 업무 수행도 자율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출퇴근 시간은 선수단 일정과 연동되어 있었을 뿐 근태는 관리되지 않았고, 트레이너는 별도 업무 매뉴얼 없이 자신의 전문적인 판단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였습니다. 또한, 성과보수 성격의 승리수당이 지급되었습니다.
3) 인천지방법원 2024. 9. 24. 선고 2023나68596 판결(축구단 트레이너)2)
이 사건 트레이너는 계약서상 용역계약임이 명시된 계약서를 작성하였고, 실제로 외부 대학 시간강사로 활동하는 등 겸직을 하였으며, 구단의 근태 통제는 없었습니다. 감독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했으나, 구단의 직접적인 관리는 없었고 업무 보고는 수석트레이너를 거쳐서 구단에 전달되었습니다.
다. 근로자성 요건에 따른 비교
위 6건의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의 내용을 근로자성 판단 기준에 관한 9가지 요소에 따라 대략적으로 비교하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위와 같은 비교를 통해 스포츠 구단 트레이너의 근로자성 판단에 주요하게 작용한 요인은
① 지휘ㆍ감독,
② 근무시간 및 장소에 대한 통제,
③ 독립된 사업자로서 활동했는지 여부, 즉 비품이나 도구를 직접 마련했는지, 겸직이 실질적으로 가능했는지 여부 및
⑥ 지급받은 수입 중 고정급이 차지하는 비중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① 지휘ㆍ감독 여부는 다른 업종에서의 근로자성 판단에서와 마찬가지로 트레이너의 근로자성 여부를 판단하는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트레이너의 근로자성이 인정된 사례에서는 사용자 또는 사용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부서로부터 지속적이고 구체적인 업무 지시가 존재했고, 트레이너의 업무 관련 보고 또한 구단 내 통제 체계의 일부로 기능하였습니다. 반면, 근로자성이 부정된 사례에서는 대부분 트레이너들이 구단 직원이 아닌 감독의 지시만을 받아 업무를 수행했고, 구단에 대한 직접적인 업무 보고는 없거나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4. 마치며
스포츠 구단 트레이너의 근로자성 여부는 실질적인 근무형태에 따라 달라지므로, 스포츠 구단에서는 그 실질에 부합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구단이 트레이너를 전속적으로 고용하여 팀 관리에 포함시키고자 한다면,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라 노동관계법령을 준수해야 합니다. 반면, 외부의 전문인력을 프리랜서로 활용하는 목적이라면, 트레이너의 업무 수행과 방식을 그에 맞게 조율하고 다른 수입 활동을 제한하지 않는 등 최대한 독립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스포츠 구단 트레이너의 근로자성에 관한 분쟁이 발생할 경우, 표면적인 계약의 형식을 벗어나 트레이너 업무의 실질과 조직 구조, 운영 실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사정을 확인하고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을 통해 근로자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향후 스포츠 구단 트레이너 외에도 여타 코칭스태프, 나아가 예술 및 체육계 프리랜서의 근로자성에 관하여 어떠한 판결례가 축적될지 귀추가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