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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헌법 · 행정 · 규제대응] 헌법불합치결정과 의료급여비용 지급보류처분의 위법 여부 - 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3두57913 판결
2026.05.29
1. 들어가며
위헌인 법률도 한동안 효력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어느 조항을 헌법에 어긋난다고 선언하면서도 일정 시한까지 계속 적용하도록 명하면, 그 조항은 위헌이면서도 당분간 효력을 가집니다. 헌법불합치결정은 위헌의 확인과 효력의 존속을 하나의 결정 안에 함께 담는 그릇입니다.
이러한 결정은 두 가지 의문을 남깁니다. 첫째, 헌법재판소가 위헌이라 선언하기 전에 법원이 스스로 그 조항을 위헌으로 보아 재판할 수 있는가. 둘째, 헌법불합치결정이 선고된 뒤 그 효력은 조항의 어느 부분에까지, 어느 시점의 사건에까지 미치는가. 대법원 2026. 5. 29. 선고 2023두57913 판결은 의료급여비용 지급보류처분을 둘러싼 분쟁에서 이 두 논점에 차례로 답했습니다.
2. 사실관계
원고는 목포에서 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의료법인입니다. 2019년 11월, 관할 경찰서는 원고의 실질적 운영자가 의료인이 아니면서 의료법인의 외관을 빌려 병원을 지배하였다는 수사결과를 목포시장에게 통보했습니다. 이른바 사무장병원 혐의였습니다. 목포시장은 2020. 1. 3. 의료급여법 제11조의5 제1항에 근거하여,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로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 사실이 확인되었다는 이유로 원고가 청구한 의료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했습니다.
처분의 전제는 그 뒤에 달라졌습니다. 운영자들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법원은 2021년 2월 의료법위반 부분에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한 사람은 다른 범죄로 벌금형을 받았으나, 의료기관 개설과 관련된 혐의만 놓고 보면 무죄였습니다.
분쟁은 행정소송으로 이어졌습니다. 원고는 처분에 절차상 하자가 있고, 근거 법률이 위헌이며,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 사실이 없고, 재량권을 일탈ㆍ남용하였다고 다투었습니다. 제1심은 의료급여법 제11조의5가 합헌이고 처분에 위법이 없다고 보아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습니다(광주지방법원 2020. 11. 12. 선고 2020구합10678 판결).
항소심의 결론은 제1심과 달랐습니다. 광주고등법원은 의료급여법 제11조의5와 거의 같은 구조의 국민건강보험법 제47조의2 제1항에 대하여 헌법재판소가 요양기관 개설자의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불합치결정(헌법재판소 2023. 3. 23. 선고 2018헌바433 등 결정)을 선고한 점에 주목하였습니다. 두 조항의 내용과 형식이 매우 유사하므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이 사건 처분에도 그대로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항소심은 제1심판결을 취소하고 이 사건 처분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는 위헌인 처분이라며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광주고등법원 2023. 10. 12. 선고 2020누12932 판결). 그러자 목포시장이 상고하였습니다.
3. 주요 쟁점
이 사건의 쟁점은 네 가지입니다. ① 법원이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 전에 스스로 위헌을 전제로 재판할 수 있는지, ② 헌법불합치결정의 계속적용 명령이 조항 전체에 미치는지 아니면 일부에만 미치는지, ③ 소급효가 결정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이던 병행사건에까지 미치는지, ④ 위헌성을 제거한 개정법의 취소 규정을 근거로 이 사건 처분을 취소할 수 있는지를 차례로 살펴봅니다.
4. 대법원의 입장
가. 법원은 법률의 위헌을 의심하더라도 스스로 위헌으로 전제하고 재판할 수 없습니다.
대법원은 항소심이 위헌 여부의 심판권이 헌법재판소에 있다는 법리를 오해하였다는 상고이유를 받아들였습니다. 헌법 제107조 제1항은 법률의 위헌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되면 법원이 헌법재판소에 제청하여 그 심판에 따라 재판하도록 정합니다. 헌법 제111조 제1항 제1호는 위헌법률심판을 헌법재판소의 관장사항으로 둡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이 있기 전까지 법률의 합헌성은 추정됩니다(헌법재판소 2010. 12. 28. 선고 2010헌가51 결정 참조).
여기에서 법원의 권한 범위가 분명해집니다. 법원은 적용할 조항이 위헌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품으면 헌법재판소에 제청할 수 있을 뿐, 스스로 위헌이라 판단하여 재판할 수는 없습니다. 위헌의 의심을 재판에 반영하는 방법은 제청에 한정됩니다. 항소심은 그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의료급여법 제11조의5를 위헌으로 전제하고 처분을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의 이러한 판단에 법률에 대한 위헌심판권의 귀속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나. 위헌성은 취소ㆍ보상 규정의 공백에 있고, 지급보류 근거는 유효합니다.
원심판결 뒤 헌법재판소는 2024. 6. 27. 선고 2021헌가19 결정에서 구 의료급여법 제11조의5 제1항 중 의료법 제33조 제2항에 관한 부분이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나 의료급여기관 개설자의 재산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위헌성이 어디에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헌법재판소는 지급보류 제도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처분 요건을 크게 완화하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취소 제도를 전혀 마련하지 않은 데 있었습니다. 무죄가 확정되어도 보류를 해소할 근거가 없었고, 재산권이 제한된 기간에 대한 이자나 지연손해금의 보상도 없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단순위헌이 아니라 계속 적용을 명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위반 사실이 확인되어 지급을 보류함이 정당한 경우까지 근거를 곧바로 없앨 경우,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려던 입법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운 공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대법원은 그 취지를 정밀하게 해석했습니다. 구법 조항 가운데 계속 적용할 필요가 있는 부분, 곧 위반 사실이 확인되었을 때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한 근거는 시한까지 효력을 유지합니다. 반면 취소 사유와 보상 장치를 두지 않은 부분은 적용이 중지된 상태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같은 조항이 한쪽은 계속 적용, 다른 한쪽은 적용 중지로 나뉜 결과입니다. 계속적용 명령은 지급보류 근거 부분에만 미치고, 취소ㆍ보상 규정의 공백 부분은 적용이 중지됩니다.
다. 소급효는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되어 계속 중이던 병행사건에 미칩니다.
다음 쟁점은 소급효의 시간적 범위입니다. 2025. 4. 22. 개정된 의료급여법은 제11조의5 제4항을 신설하여, 무죄 판결의 확정 등으로 혐의가 증명되지 않으면 시장 등이 보류처분을 취소하고 보류 기간의 이자를 더하여 지급하도록 하였습니다. 이자는 민법 제379조의 법정이율에 따릅니다. 다만 부칙은 소급적용에 관하여 아무런 규정을 두지 않았습니다.
개선입법을 과거 사건에 적용할지, 어디까지 적용할지는 본래 입법자의 재량입니다. 대법원은 그 원칙을 인정하면서도 한 가지 예외를 분명히 했습니다. 헌법불합치결정의 취지와 구체적 규범통제의 실효성을 고려할 때, 적어도 결정을 이끌어 낸 당해 사건과 결정 당시 위헌 여부가 쟁점이 되어 법원에 계속 중이던 사건에는 소급효가 미친다는 결론입니다. 부칙에 경과조치가 없더라도 그러한 사건에는 위헌성이 제거된 현행법을 적용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11. 9. 29. 선고 2008두18885 판결, 대법원 2021. 5. 27. 선고 2018도13458 판결 등 참조).
라. 처분은 유효한 지급보류 근거에 따라 이루어졌으므로 취소되지 않습니다.
원고는 따로 위헌제청신청을 하지 않았으나, 헌법불합치결정 당시 구법 조항이 재판의 전제가 되어 사건이 법원에 계속 중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사건은 병행사건에 해당하고 결정의 소급효가 미칩니다.
대법원은 소급효가 미치는 범위를 정밀하게 구분했습니다. 소급효는 구법 조항 가운데 적용이 중지되어 있던 부분, 곧 취소와 보상에 관한 공백에 한정됩니다. 위반 사실이 확인되어 지급을 보류할 수 있도록 한 근거는 여전히 계속 적용됩니다. 목포시장은 잠정 적용 시한 안에서 수사결과로 위반이 확인되었다는 이유로 보류처분을 하였습니다. 그 처분에는 계속 적용을 명한 부분의 효력이 미치므로 구 의료급여법 제11조의5 제1항이 그대로 적용됩니다. 처분 자체를 위법하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취소 사유에 관한 부분이 적용 중지 상태였고 그 부분에 소급효가 미친다 하더라도 결론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소 변경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법원이 개정 제11조의5 제4항을 근거로 이 사건 처분을 위법하다고 보아 취소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처분의 적법성을 다투는 취소소송과 사후에 신설된 취소ㆍ이자지급 규정은 서로 별개의 문제입니다.
대법원은 운영자들에 대한 무죄가 확정된 이상 목포시장이 개정법 제11조의5 제4항에 따라 처분을 취소하고 보류된 비용에 이자를 더하여 지급하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법원이 소송에서 처분을 취소하지는 않더라도, 행정청이 스스로 처분을 거두어야 할 의무는 분명히 남습니다.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광주고등법원에 환송했습니다.
5. 시사점
가. 법원의 위헌 판단은 제청을 통하여야 합니다.
이 판결은 구체적 규범통제의 구조를 다시 확인합니다. 법원이 어느 조항을 위헌이라 확신하더라도, 그 판단을 재판에 반영하는 방법은 헌법재판소에 대한 제청입니다. 위헌의 의심은 제청으로 표현하고, 위헌의 선언은 헌법재판소가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항소심처럼 그 단계를 생략하면 설령 결론의 방향이 옳더라도 권한 배분의 한계를 벗어나게 됩니다. 위헌의 의심이 강할수록 제청 절차의 중요성은 더욱 커집니다.
나. 한 조항 안에서도 계속 적용 부분과 적용 중지 부분이 나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시사점은 효력 범위의 정밀한 확정입니다. 헌법불합치결정에 계속 적용 명령이 붙으면 그 조항 전체가 유효하게 적용된다고 쉽게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 판결은 그러한 단순화를 경계합니다. 위헌성이 조항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에 따라, 계속 적용되는 부분과 적용이 중지된 부분이 하나의 조문 안에서도 구분될 수 있습니다. 결정의 주문만으로는 부족하고, 위헌이라 본 이유의 핵심을 확인하여 효력의 경계를 확정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기준은 앞으로 다른 헌법불합치결정을 해석할 때에도 지침이 됩니다.
다. 처분이 적법하더라도 행정청은 개정법에 따라 처분을 취소하고 이자를 지급해야 합니다.
세 번째 시사점은 행정 실무에서 중요합니다. 원고는 헌법불합치결정의 소급효만을 이유로 곧바로 취소판결을 받을 수는 없었습니다. 대법원은 지급보류의 근거가 되는 부분은 계속 적용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원고가 아무런 구제를 받지 못하는 결말은 아닙니다. 무죄가 확정된 이상 행정청은 개정법에 따라 처분을 취소하고 이자를 더하여 반환하여야 합니다. 권리구제의 실질을 소송의 승패가 아니라 행정청의 의무 이행에서 확보되는 구조입니다. 처분 시점에는 정당했던 조치라도 사정이 변경되면 행정청이 스스로 그 처분을 취소하여야 한다는 행정법의 원칙이 다시 확인되었습니다.
6. 나오며
이 판결은 세 가지 구분을 분명히 했습니다. 법률에 대한 위헌을 의심하는 법원과 위헌을 선언하는 헌법재판소 사이의 권한 구분, 하나의 조항 안에서 계속 적용과 적용 중지를 나누는 효력 구분, 처분의 적법성과 행정청의 사후 의무를 나누는 책임 구분입니다.
원고가 곧바로 처분취소판결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에서는 보류되었던 비용이 이자와 함께 원고에게 반환됩니다. 법원의 판단이 곧바로 권리를 회복시키지 않더라도, 회복의 근거와 방법을 명확히 제시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이 마지막에 덧붙인 지적이 그러한 역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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