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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PYONG 법무법인[유] 지평

법률정보|칼럼
[노동] 최근 판례로 살펴본 직장 내 괴롭힘 · 성희롱 조사 시의 유의사항
2023.12.19
1. 들어가며

직장 내 성희롱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남녀고용평등법’)에 의하면, 사업주는 성희롱 신고를 접수하거나 그 발생사실을 알게 된 경우 지체없이 사실확인을 위한 조사를 해야 합니다(조사의무)(제14조 제2항).  또한 사업주는 조사기간 중 피해근로자 또는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근로자(이하 ‘피해근로자등’)에 대해 보호조치를 제공해야 하고, 직장 내 성희롱 발생사실이 확인된 경우 피해근로자에 대해서는 피해근로자가 요청하는 경우 적절한 보호조치를, 가해자에게는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하는데(적절한 조치의무), 가해자에게 징계 등의 조치를 하기 전에 반드시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의견청취의무)(제14조 제5항).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역시 사용자에 대하여 이와 유사한 의무를 부과하고 있습니다(근로기준법 제76조의3).

이와 같이 사업주 또는 사용자(이하 ‘사용자’)에게 부여된 의무는 법률상 의무로서, 사용자가 이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법률의 규정에 따라 형사처벌 또는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됨은 물론,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책임 부담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서 사용자가 피해근로자등에게 제공해야 하는 보호조치는 어느 정도인지, 가해자에 대한 조치 전에 피해근로자의 의견을 어떻게 청취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비교적 최근에 선고된 하급심 판결(서울중앙지방법원 2023. 8. 10. 선고 2022나45458 판결, 이하 ‘대상판결’)에서 직장 내 성희롱 신고 접수 후 사용자의 조치의무 위반 여부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판단한 사례가 있어, 그 판시내용을 중심으로 사용자가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 사건의 조사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2. 직장 내 괴롭힘ㆍ성희롱 사건 조사 과정에서 유의해야 할 사항 

가. 사안의 개요

원고가 소속된 회사의 팀장이었던 A는 휴가기간 중 업무를 핑계로 원고를 불러내어 강간을 시도하였습니다.  원고는 피고 회사에 피해 사실을 신고하였는데, 피고는 A가 강간미수와 관련된 사실관계를 일부 부인하면서 그 책임을 원고에게 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원고에게 알려주지 않은 채, 단지 ‘A에 대한 조사 및 징계절차를 진행하는 경우 그러한 절차가 공개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소문 등으로 인한 불이익이 초래될 것’이라면서 A의 권고사직 처리에 동의할 것을 유도하였습니다.  이에 원고는 A를 징계하지 않고 권고사직으로 처리하는 것에 동의하였는데, 이후 원고는 A가 조사과정에서 원고에게 책임을 돌리는 태도를 보였음을 알게 되자 피고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습니다.

나. 제1심의 판단

이에 대해 제1심은 A의 강간미수행위에 대한 피고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러나 피고의 남녀고용평등법상 적절한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해서는 ① A에 대한 사직처리가 결과의 면으로는 징계해고와 크게 다르지 않은 점, ② 원고가 사건에 관한 비밀유지 및 조기 종결을 요청하였고 사직처리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원고의 법률대리인을 통해 피고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기도 하였던 점, ③ 비록 A가 원고의 기억이나 생각과 다소 다르게 진술한 부분이 있으나 강간미수 자체는 시인하였던 점 등을 근거로, 피고의 조치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7. 21. 선고 2020가단5176116 판결).

다.  대상판결의 판단

그러나 제2심은 A의 사직처리 등에 관한 피고의 행위가 위법하다고 보아, 이 부분 불법행위를 이유로 원고에게 3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하였습니다.

1) 피고가 징계 등 필요한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였는지 : 부정

대상판결은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5항의 ‘징계 등 필요한 조치’가 반드시 징계처분으로 한정되는 것은 아니고, 비공식절차를 통한 분쟁해결도 가능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상판결은 비공식절차를 통한 분쟁해결의 경우에도, 사용자는 신고인(피해근로자)에게 직장 내 성희롱 사건 해결을 위한 다양한 제도와 절차에 대해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신고인이 처한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 해결 방식에 대한 선택지를 제공하여 신고인 스스로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처리할 것인지에 대해 가장 만족할 수 있는 방식을 생각하여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또한 공식적인 절차를 이용하게 될 경우 비공식절차에 비해 일정 정도 비밀유지에 어려움이 생길 수는 있으나, 사용자는 비밀유지를 위해 각별한 주의를 다하여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전제하에, 대상판결은 피고가 원고와의 면담 과정에서 공식적인 징계절차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거나 비밀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공식적인 징계절차에 회부될 경우 피해가 공개될 염려가 있다는 점만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면서 무징계 사직을 받아들일 것을 사실상 강권하였고, 이로써 원고가 다양한 선택지의 장단점을 충분히 검토하고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침해하였다고 보아 피고의 불법행위를 인정하였습니다.

특히 대상판결은 제1심과 달리 원고가 면담 과정에서 일부 A의 임의사직 처리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거나, 사직처리 이후 법률대리인을 통해 감사를 표하였다 하더라도 피고의 잘못을 치유할 수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2) 의견청취 및 피해근로자 보호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였는지 : 부정

대상판결은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제5항에서 정한 의견청취의무와 관련하여, 원고가 조사과정에서 A 진술의 구체적 양상이 어떠했는지를 피고로부터 구체적으로 전달받고 형사고소 여부 등 대응방안을 정리할 기회를 얻을 권리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피고가 이러한 원고의 권리를 존중하지 않은 채 단순히 A가 권고사직을 받아들였다는 점만을 전달하였으므로, 의견청취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아가 대상판결은 피고가 원고의 요청에 따라 A를 권고사직 처리했다고 입장문을 발표한 것도 적절한 조치라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A의 권고사직 이후 익명게시판에 원고를 공격하는 게시물이 올라왔고, 원고가 성폭력에 따른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데도 원고에 대해 지속적인 상담이나 인사상 배려 등 필요한 피해회복 지원조치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면서, 피고의 보호조치의무 위반도 인정하였습니다.

라. 시사점

직장 내 괴롭힘, 특히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서 피해근로자가 2차피해 등을 우려하여 징계절차를 비밀리에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경우 사용자가 분쟁을 조기에 해결하기 위하여 손쉽게 택하는 방안 중의 하나가 정식 징계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가해근로자를 권고사직 처리하는 것입니다.

대상판결은 이와 같이 피해근로자가 비밀유지를 강하게 요청하는 상황에서 사용자가 가해근로자에 대한 권고사직을 진행하는 경우 사용자가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상판결의 결론이 상고심에서 유지될지는 지켜보아야 할 것이나, 대상판결은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조사 및 처리 과정에서 사용자가 유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한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보입니다.

또한 대상판결에서는 직장 내 성희롱에 따른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여부가 문제되었으나, 직장 내 괴롭힘 금지를 규정한 근로기준법 역시 이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으므로 대상판결은 직장 내 괴롭힘 신고 후의 사용자의 조치의무에 관하여도 일응의 기준이 될 수 있겠습니다.

마.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 사건의 조사 및 조치 과정에서 사용자가 유의해야 할 사항

사용자는 직장 내 괴롭힘 또는 성희롱의 신고를 받게 되면, 지체없이 그 사실관계 확인을 위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조사를 시행해야 합니다.

또한 사용자는 징계절차 또는 비공식 분쟁해결절차로 나아가기 전에 피해근로자에게 조사의 진행 상황 및 피해근로자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해결방식의 종류와 그 장단점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피해근로자가 가장 만족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합니다.  이때 사용자가 피해자에게 정식 징계절차를 선택하는 경우 권고사직 등 비공식절차와 달리 비밀유지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객관적으로 설명함으로써 피해근로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2차 가해의 위험 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등으로 권고사직과 같은 비공식 절차를 통한 해결을 종용하는 태도는 지양해야 합니다.

특히 피해근로자가 가해자에 대한 처리와 관련하여 실질적으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자는 (제3자의 명예훼손 등 추가적인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한) 조사 과정에서 파악된 가해자의 진술 내용이나 태도 등을 피해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전달함으로써, 피해근로자로 하여금 향후 대응방안을 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나아가, 피해근로자가 공식 징계절차를 선택하더라도 최소한의 인사위원 등만이 참여하는 비공개 징계절차를 진행하거나 피해근로자 및 가해자의 신원을 비공개하는 등의 조치를 통해 비밀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한편, 사용자는 공식 절차를 거치는 경우에도 이러한 비밀유지 방안이 있다는 점 역시 사전에 피해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근로자가 가해행위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경우에는 피해근로자와 지속적으로 상담하면서 피해회복 방안을 모색하거나, 휴직, 배치전환 등의 인사조치를 하는 등 가능한 범위 내에서 피해회복을 위한 지원조치를 충분히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향후 분쟁 발생의 위험성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이와 같은 일련의 조치가 있었음을 증명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도 확보해둘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