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최근 前 엔터테인먼트 대표 A의 국내 활동 재개가 화제입니다. A는 2023년 다른 엔터테인먼트사에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국내에서 3년간 음반 프로듀싱을 하지 않는다”는 경업금지약정을 체결하였는데, 올해 2월 그 효력이 만료되었습니다.
A의 경우와 유사하게 “퇴직 후 특정 기간 동안 동일 지역의 동종업계로 이직하지 못한다”는 조항은 대기업 임원이나 엔터테인먼트ㆍ반도체ㆍ제약ㆍIT 분야의 핵심 인력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입니다. 기업 간 인재 쟁탈전이 치열해지면서 이른바
전직금지약정(또는 경업금지약정)을 활용하는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막상 전직금지약정을 위반한 근로자에 대하여 회사가 소송을 제기하면, 법원이 위 약정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서명만 했다고 해서 자동으로 유효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이 체결되었더라도 그것이
근로자의 헌법상 직업선택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하는 경우에는 민법 제103조에 따라 무효라고 판단합니다. 대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을 평가함에 있어서는 ①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 ② 근로자의 퇴직 전 지위, ③ 전직 제한의 기간ㆍ지역ㆍ직종,
④ 근로자에 대한 대가의 제공 유무, ⑤ 근로자의 퇴직 경위, ⑥ 기타 사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대법원 2010. 3. 11. 선고 2009다82244 판결 등).
위 6가지 기준 중에서도 최근 실무상 가장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것이 바로 ‘
④ 대가의 제공 유무’입니다. “그동안 고액 연봉을 지급하였으니 이미 대가를 제공한 것”이라는 회사 측 주장과 “그건 근로제공에 대한 대가일 뿐”이라는 근로자 측 주장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지점입니다.
2. ‘전직금지약정에 대한 대가’에 관한 판결
가. 판단의 기본 원칙
법원은 전직금지약정의 대가와 관련하여, 전직금지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전직금지약정을 무효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취해 왔습니다(대전고등법원 2018. 7. 19.자 2018라126 결정 등). 즉, ‘전직금지의 대가’라는 명목의 별도 수당이 없더라도 재직 중 받은 혜택이 실질적으로 전직금지에 대한 보상의 성격을 가진다면 대가로 인정될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하급심에서는 이 기준이 점차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단순한 고액 연봉이나 빠른 승진만으로는 부족하고, “전직금지의무로 인해 근로자가 입는 손해를 전보하기에 충분한 정도”의 대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래에서는 법원이 어떤 것을 전직금지약정에 대한 대가로 보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나. 대가로 인정된 사례
1) 임원 피선과 연동된 고액 연봉 [서울북부지방법원 2022. 12. 20. 선고 2021가단150818 판결]
이 사안에서 근로자는 식품 제조업 회사의 임원으로 승진하면서, 연봉 기본급 약 2억 9,287만 원에 퇴직금 약 3,221만 원을 합산한
약 3억 2,508만 원의 보수를 지급받기로 하는 연봉계약을 체결함과 동시에 전직금지약정을 체결하였습니다. 법원은 “위와 같은 급여에는 일정 기간 전직금지를 함에 대한 보상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여지가 있고, 명시적인 대가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전직금지약정의 효력이 곧바로 부인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임원 피선 시점에 전직금지약정이 체결되었고 연봉이 대폭 인상되었다는 점이 대가 인정의 핵심 근거가 되었습니다.
2) 전직금지의무 준수와 연계된 특별 인센티브 [서울고등법원 2019. 7. 8.자 2019라20390 결정]
반도체 회사의 기술혁신팀 파트장으로 근무하던 근로자가
15년간 합계 약 1억 6,600만 원의 특별 인센티브를 지급받은 사안입니다. 인센티브 약정서에는
지급 목적으로 “동종ㆍ유사업체 전직 방지”가 명시되어 있었고, 전직금지 의무 및 위약벌 조항이 함께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법원은 이를 단순한 장기근속 장려금이 아닌 전직 제약에 대한 전보적 성격의 대가로 인정하였습니다.
3) 자문역위촉 및 자문료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13. 11. 14.자 2013카합5001 결정]
전기통신기기 판매업체가 집행임원으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근로자와 전직금지기간(1년)과 동일한 기간의
비상임 자문역위촉계약을 체결하면서 자문료 1억 6,35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전직금지기간과 자문역 기간이 정확히 일치하는 점, 퇴임하는 모든 임원에게 자문역이 일률적으로 제공된 것은 아닌 점을 근거로 자문료의 대가 성격을 인정하였습니다.
4) 꾸준한 승진, 고액 급여, 상여금, 인센티브 [수원지방법원 2022. 5. 4.자 2021카합10309 결정]
반도체 회사에서 약 19년간 근무한 임원에 관한 사안으로, 회사가
장기성과 인센티브 3억 6,820만 원을 제안하였다가 거절당하였고 퇴직 후 1억 8,400만 원만을 실제 지급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19년간의 승진, 고액 급여, 상여금 등과 퇴직 후 실제 지급된 장기성과 인센티브를 종합하여, 전직금지를 직접적인 원인으로 한 보상이 없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약정을 무효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다. 대가로 인정되지 않은 사례
1) 약정 체결 이전에 제공된 혜택 [수원고등법원 2023. 4. 18.자 2022라329 결정]
회사가 근로자에게 외부교육 기회 및 승진 등의 혜택을 제공하였더라도 그것이
전직금지약정 체결 이전의 일이라면 해당 약정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사안입니다. 법원은 ‘재직 기간 중의 각종 혜택들이 모두 전직금지 대가에 해당한다’는 회사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정당한 대가가 있었는지는 전직금지약정 체결 시점을 기준으로 판단된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2) 승진, 연수 프로그램 참여, 특별 인센티브 [서울고등법원 2020. 11. 12.자 2020라20732 결정]
통신판매중개업체에서 빠른 승진, 고액 급여, 글로벌 리더십 프로그램 참여에 더해 Retention Award 등 특별 인센티브를 지급받은 근로자에 관한 사안입니다. 앞서 언급한
[서울고등법원 2019. 7. 8.자 2019라20390 결정]에서의 특별 인센티브와 달리,
이 사건 인센티브는 특정 근속기간을 채우지 못하면 포기해야 하는 구조로, 퇴직 후 전직금지의무와 명시적으로 연계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이에 따라 위 특별 인센티브가 전직금지약정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3) 장기근속 주식 인센티브, 국가핵심기술수당 [수원지방법원 2023. 7. 27.자 2022카합10487 결정]
반도체 회사에서 근무하던 기술직 근로자들에 관한 사안으로, 앞서 언급한
[수원지방법원 2022. 5. 4.자 2021카합10309 결정]과 유사하게 장기근속 주식 인센티브 및 국가핵심기술수당을 지급받은 경우입니다. 그러나 위 판결과 다르게 법원은,
장기근속 주식 인센티브는 퇴직 시 일부만 취득하는 구조여서 장기근속 장려를 위한 성격에 불과한 점, 국가핵심기술수당은 광범위한 임직원에게 일률 지급되었던 점 등을 근거로 이를 전직금지에 대한 충분한 대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4) 소액의 특별인센티브 [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12. 29.자 2023카합10185 결정]
복수의 근로자들이 각 1,500만 원의 특별인센티브를 지급받고 2년간 전직금지약정서를 작성한 후 이직한 사안입니다.
[서울고등법원 2019. 7. 8.자 2019라20390 결정]과 동일하게 ‘특별 인센티브’라는 명목으로 지급되었지만 그
금액이 1,500만 원에 불과하고 퇴직 1~2년 전에 지급되었으며 퇴직 시 일부가 반환되어 그 실질이 장기근속 장려금에 가까웠습니다. 법원은 금액의 불충분성과 지급 구조를 이유로 2년간 전직금지에 대한 손해를 전보하기에 충분한 대가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라. 주요 판결의 비교
이상의 판례들을 대가의 형태와 인정 여부를 기준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대가성 |
사건 |
대가 형태 |
결론 |
주요 판단 근거 |
| 긍정 |
서울고등법원
2019. 7. 8.
2019라20390 |
특별 인센티브
(약 1억 6,600만 원) |
인정 |
전직금지약정상 ‘전직금지 목적의 인센티브’라는 점이 명시됨 |
| 긍정 |
서울북부지방법원 2022. 12. 20.
2021가단150818 |
임원 승진 동시 연봉 대폭 인상
(약 3억 2,508만 원) |
인정 |
임원 피선, 전직금지약정 체결,
연봉 인상이 동시에 이루어짐 |
| 긍정 |
수원지방법원
2022. 5. 4.
2021카합10309 |
승진, 상여금, 부가금 및 장기성과 인센티브 제안 |
인정 |
고액의 장기성과 인센티브 제안 및 퇴직 후 일부 실제 지급,
꾸준한 승진 |
| 긍정 |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2013. 11. 14.
2013카합5001 |
자문역위촉계약
(자문료 1억 6,350만 원) |
인정 |
전직금지 기간과 자문역
기간이 같음 |
| 부정 |
서울고등법원
2020. 11. 12.
2020라20732 |
승진, 고액 급여, 글로벌 연수,
Retention Award 등 |
불인정 |
개인 역량에 따라 부여받는 혜택,
장기근속 장려 취지의 인센티브에 불과함 |
| 부정 |
수원고등법원
2023. 4. 18.
2022라329 |
교육, 승진 등 각종 혜택 |
불인정 |
전직금지약정 체결 전에 이미
제공된 혜택에 불과함 |
| 부정 |
수원지방법원
2023. 7. 27.
2022카합10487 |
장기근속 주식 인센티브,
국가핵심기술수당 |
불인정 |
장기근속 장려 취지의 인센티브,
일률적으로 지급된 수당에 불과함 |
| 부정 |
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12. 29.
2023카합10185 |
특별인센티브
(1,500만 원) |
불인정 |
금액 불충분, 장기근속 장려 취지의 인센티브에 불과함 |
3. ‘전직금지약정에 대한 대가’의 설계 방안
위 판결들을 종합하면, 법원이 전직금지약정의 대가를 인정하기 위해 요구하는 기준이 점차
구체화ㆍ엄격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간 충분히 대우해줬잖아”는 더 이상 충분한 주장이 되지 않습니다. 실무상 전직금지약정을 설계할 때는 그 대가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들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첫째, 대가의 목적과 전직금지와의 연관성을 계약서에 명시하여야 합니다. 고액 연봉이나 인센티브 등이 대가로 인정된 사례들의 공통점은, 해당 금원의 지급이 전직금지의무 준수와 구체적으로 연계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인센티브 지급 규정이나 약정서에 ‘경업금지의무 준수에 대한 대가’ 또는 ‘전직금지 기간 동안의 보상’이라는 점을 명시해 두면, 사후 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습니다. 반면 연봉 인상의 근거가 단순히 ‘성과 보상’이나 ‘임원 승진에 따른 처우’로만 기재되어 있다면 대가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대가성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 않은 경우, 적어도 해당 금원이 전직금지 기간과 동일한 기간 동안 정기적으로 지급된다는 등 간접적으로라도 대가성이 표명되어야 합니다.
둘째, 대가의 금액은 근로자가 전직금지로 인해 실질적으로 입는 기회비용을 전보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합니다. 법원이 “손해를 전보하기에 충분한 정도”를 반복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퇴직 전 1~2년에 걸쳐 지급된 1,500만 원의 인센티브는 전직금지 대가로는 불충분하다고 본 사례(서울동부지방법원 2023. 12. 29.자 2023카합10185 결정)를 감안하면, 전직금지 기간과 해당 근로자의 직급 및 연봉 수준을 고려한 합리적인 보상 수준이 구체적으로 설계되어야 합니다.
셋째, 전직금지약정은 퇴직 이전에, 그 대가에 관한 약정과 함께 체결되어야 합니다. 위에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법원은, 재직 중 성과급 등이 지급되었다고 하더라도 전직금지약정 자체가 퇴직 당일에 체결되었다면 이는 “대가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회사의 이익만을 위한” 약정이라는 이유에서 위 성과급 등의 대가성을 부정한 바 있습니다(수원지방법원 2025. 7. 31.자 2025카합10176 결정). 전직금지약정과 그에 상응하는 대가는 근로관계가 존속하는 동안 미리 논의하고 설계해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물론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었다는 사정만으로 전직금지약정의 유효성이 결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보호할 가치 있는 사용자의 이익이 구체적으로 존재하는지, 근로자의 퇴직 경위가 어떠한지, 전직금지 기간이 합리적인지(통상 1년 내외) 등 다른 요소들과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최근 판례의 흐름을 보면, 적정 대가의 존재 여부가 전직금지약정의
‘생사’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임직원의 전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기업이라면, 전직금지약정 체결 단계에서부터 그에 대한 대가의 명목ㆍ금액ㆍ지급 구조를 치밀하게 설계해 두는 것이 분쟁 예방의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