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최근 수년간 사무직, IT 업종을 중심으로 노동조합 설립이 활발해졌고, 과거 대기업 · 공공부문에 집중돼 있던 노사 분규도 중소 규모 사업장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조합으로부터 단체교섭 요구서를 받는 회사가 크게 늘었고,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단체교섭을 경험하는 곳도 적지 않습니다.
단체교섭 요구를 단순한 사내 민원이나 일정 협의로 쉽게 다뤄서는 안 됩니다. 사용자가 교섭요구를 받은 순간부터 교섭요구 사실 공고,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 교섭창구 단일화 등의 일련의 법정 절차가 시작되므로 그 시점부터 회사의 대응 하나하나가 법적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이하에서는 실무자가 단체교섭 요구를 받은 직후 우선적으로 확인해야 할 사항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이하 ‘노동조합법’)을 바탕으로 살펴봅니다.
2. 교섭요구서 접수와 기본 사항 확인
실무자가 노동조합으로부터 교섭요구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수령 일시와 방법을 명확히 기록해야 합니다. 교섭요구 사실 공고와 그 이후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는 모두 교섭요구를 받은 때로부터 기산하기 때문에 요구서가 언제 어떻게 전달됐는지 명확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아가 만일 요구서의 일부 기재사항에 누락이나 오류가 있더라도 교섭 자체를 거부하는 것은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섭요구서의 일부 기재 내용에 하자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교섭요구의 효력이 전면 부인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광주고등법원(전주) 2020. 11. 25. 선고 2020누1419 판결(확정) 등 참조].
3. 교섭요구 사실 공고
가. 단수 노동조합이라도 공고
사용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교섭요구를 받은 경우 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7일간 그 사실을 공고해 다른 노동조합이나 근로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노동조합법 시행령 제14조의3 제1항). 현장에서는 간혹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하나뿐이니 공고할 필요가 없다’거나 ‘이미 교섭할 예정이니 공고는 생략해도 된다’고 오인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급심에서 견해가 통일되지는 않았지만, 법원은 대체로 단수 노동조합 사업장에도 공고 의무를 인정하고 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5. 11. 14. 선고 2024누70434 판결(확정) 등 참조]. 노동조합법 시행령에서 공고 의무를 ‘복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사업장’으로 한정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 공고 제도는 ‘아직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은 근로자들’에게 노동조합 가입 또는 신규 노동조합 설립의 기회를 보장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수 노동조합 사업장에서도 공고를 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참고로, 사용자가 공고를 하지 않거나 법정 내용과 다르게 공고하면 노동조합은 노동위원회에 시정을 요청할 수 있고, 공고의 누락 · 지연 자체가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로 평가될 수도 있습니다.
나. 공고 기간의 계산
공고 기간의 계산에도 주의가 필요합니다. 노동조합법 시행령에 따르면 사용자가 교섭요구를 받은 날로부터 ‘7일 동안’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사항을 공고해야 합니다(노동조합법 시행령 제14조의3 제1항 참조). 여기서 7일의 기산점은 교섭요구를 받은 날의 ‘다음 날’이고(민법 제157조, 초일불산입 원칙), 만료일이 토요일 · 공휴일인 경우에는 민법 제161조에 따라 그다음 날로 만료일이 연장됩니다[서울고등법원 2025. 12. 17. 선고 2025누5758 판결(확정) 등 참조]. 공고 기간의 만료일을 잘못 기산할 경우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공고일, 과반수 노동조합 결정을 위한 조합원 수 산정 기준일까지 연쇄적으로 달라지고, 이러한 절차상 하자는 교섭대표 노동조합의 지위 확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무적으로는 교섭요구를 받은 즉시 수령 일시, 시각 등을 기록하고, 이후 공고를 한 다음 공고가 실제로 게시됐다는 것과 공고 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 사진이나 전산 기록을 남겨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4. 교섭 상대방의 확인
가. 노동조합의 적격성
사용자는 사용종속관계에 있는 근로자들이 조직한 노동조합에 대해 단체교섭 의무를 부담할 뿐(대법원 1995. 12. 22. 선고 95누3565 판결, 대법원 1997. 9. 5. 선고 97누3644 판결 등 참조), 노동조합법상 노동조합에 해당하지 않는 단체, 조직의 교섭요구에는 응할 의무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주의할 점은, 노동조합에 해당하는지에 관해 일응의 판단이 가능하지만 ‘아직 확정된 판결이 없어 법적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사정만으로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을 거부 · 해태할 정당한 이유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체교섭 거부의 정당한 이유는 사용자의 주관적인 인식이 아니라 사용자에게 단체교섭의무 이행을 기대하기 어려운 객관적 사정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때문입니다(대법원 1998. 5. 22. 선고 97누8076 판결, 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7두11542 판결 등 참조). 따라서 설령, 사용자가 ‘교섭 거부가 정당하다’고 믿었더라도 객관적으로 정당한 이유가 없다면 부당노동행위가 성립할 수 있으므로, 노동조합의 법적 지위가 불분명할 경우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구하고 이의를 유보한 채 일단 교섭에 응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나. 계약 외 사용자(원청)의 교섭 의무
개정 노동조합법(노란봉투법)은 근로계약을 직접 체결한 계약상 사용자뿐만 아니라, 근로계약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해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 · 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그 범위에서 사용자로 봅니다(노동조합법 제2조 제2호). 원청이나 발주자도 협력업체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 · 결정하는 범위에서는 협력업체 노동조합의 교섭 상대방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청 등이 협력업체 근로자에 관한 모든 사항에 대해 사용자가 되는 것이 아니므로, 계약 외 사용자의 사용자성은 개별 근로조건에 따라 달리 판단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협력업체 노동조합으로부터 교섭요구를 받은 원청은 이론적으로 ①원청이 실질적 · 구체적으로 지배 · 결정할 수 있는 근로조건이 무엇인지, ②교섭요구가 법령상 절차에 맞게 이루어졌는지 등을 교섭 의제별로 구분해 확인해야 합니다.
계약 외 사용자성에 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판단 기준이나 사례가 충분히 집적되지 않아 실무상 불확실성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원청으로서는 교섭요구 사실 공고에 대한 시정 신청 등 법령이 정한 절차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다툴 수 있을 뿐입니다. 결국 이 부분은 입법적 보완과 판례의 축적을 통해 정리될 필요가 있습니다.
5. 단수 노동조합과 교섭창구 단일화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노동조합이 2개 이상 존재하는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 노동조합을 정해야 합니다(노동조합법 제29조의2). 반면,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노동조합은 설령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형식적으로 거쳤더라도 법률상 교섭대표 노동조합의 지위를 취득할 수 없습니다(대법원 2017. 10. 31. 선고 2016두36956 판결 등 참조). 교섭대표 노동조합의 지위와 그 유지기간을 주장하려면 복수 노동조합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그 지위를 취득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를 ‘단수 노동조합과는 교섭할 수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단수 노동조합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가 보장하는 법적 보호, 권리를 향유할 수 없다는 취지이지, 단체교섭권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6. 교섭단위 분리신청
하나의 사업 또는 사업장 안에서 현격한 근로조건의 차이, 고용형태, 교섭 관행 등을 고려해 교섭단위를 분리하거나 분리된 교섭단위를 통합할 필요가 있는 경우 노동위원회가 교섭단위 분리 · 통합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노동조합법 제29조의3 제2항, 같은 법 시행령 제14조의11 제3항). 교섭단위 분리 · 통합 신청은 그 신청 시기도 반드시 준수돼야 합니다. 사용자는 ‘교섭요구 사실을 공고하기 전’이나 ‘교섭대표 노동조합이 결정된 날’ 이후에만 신청을 할 수 있고, 교섭요구 사실 공고 이후부터 교섭대표 노동조합 결정 시까지는 신청할 수 없습니다(노동조합법 시행령 제14조의11 제1항). 또한 교섭단위 분리 결정은 이후 노동위원회의 통합 결정이 없는 한 그 효력이 유지되므로, 한 번의 분리 결정은 장기간의 교섭 구조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교섭단위 분리를 검토하는 회사는 교섭요구를 받은 즉시 현재의 관련 절차 진행 상황을 확인해야 하고, 분리 대상 근로자와 그 외 근로자 사이에 현격한 근로조건 차이가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합니다. 다만 분리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교섭요구 사실 공고를 지연하거나 교섭 자체를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분리 신청의 적법성과 절차 진행과 교섭 의무의 존부는 별개로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7. 마치며
노동조합으로부터 단체교섭 요구를 받았을 경우 실무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교섭요구서의 접수 시점과 형식을 확인하고, 교섭요구 사실을 적법하게 공고하며, 교섭 상대방의 법적 지위 등을 구체적으로 확인하는 것입니다. 단체교섭 요구에 대한 초기 대응은 이후의 교섭대표 노동조합 결정, 단체협약의 효력, 부당노동행위 성립 여부와 민 · 형사상 책임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실무자는 교섭요구를 받고 절차를 진행하면서 관련 자료를 보존하고, 법정 절차와 실체적 쟁점을 구분해 대응해야 합니다.
✻ 이 글은 월간 노동법률 2026년 9월호에 게재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