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기획위원회는 2025. 6. 17. ‘3대 정책목표’의 하나로 ‘공정과 상생의 시장경제 생태계 구축’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현과제로 불공정 거래 관행과 기술탈취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기술 보호를 위한 전담 부서나 인력을 갖추지 못하고, 기술 유출 발생 시에도 비용ᆞ시간ᆞ피해 입증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러 제도개혁을 예고했습니다.
1. 새 정부의 기술자료 규제 변화 전망 : K-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중소기업의 기술을 탈취하는 행위를 규제하는 대표적 법률로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
하도급법’)과 「대ㆍ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이하 ‘
상생협력법’)이 있습니다. 하도급법 제12조의3 제4항, 상생협력법 제25조 제3항은 기술자료를 자기 또는 제3자를 위하여 사용하는 행위,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를 ‘기술자료 유용’으로 규정하고 시정명령뿐만 아니라 과징금 및 형사처벌의 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이러한 제재 외에도 기술을 탈취당한 중소기업이 민사 손해배상소송을 통해 원활하게 손해를 보상받을 수 있도록 ‘한국형 증거조사제도(K-Discovery)’를 도입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디스커버리(Discovery)는 본안 소송 전 별도 증거개시절차를 통해 상대방이 소송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보유한 관련 증거와 정보를 빠짐없이 상호 공개하는 제도입니다. 우리나라도 기술자료 규제 외에 집단소송 등 여러 분야에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논의가 지속되어 왔습니다. 새 정부는 하도급법 기술자료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 제도를 도입ᆞ확대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K-디스커버리 제도는 구체적으로 ① 법원의 공정거래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에 대한 자료제출 명령권 신설, ② 불공정거래 피해구제기금 조성, ③ 중소기업을 위한 국선변호인, 전문가 지원 시스템 구축을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1) 법원의 자료제출 명령권(①)이 행사되면 공정거래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기술탈취 관련 민사 손해배상 재판에 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현행 하도급법도 이미 법원의 “소송 당사자”에 대한 자료제출 명령권을 부여해서(제35조의2) 원사업자(피고)가 정당한 이유 없이 자료제출 명령에 따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자료의 기재에 대한 수급사업자(원고)의 주장을 진실한 것으로 인정할 수 있습니다(제4항).
2) 다만, 현행법은 소송 당사자에 대해서만 자료제출을 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정거래위원회는 자료제출 명령의 대상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손해배상 소송에서 행정조사 자료가 현출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3) 이에 따라 원사업자가 아닌 공정거래위원회에게도 자료제출을 명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입니다.
2. 최근 기술자료 규제의 흐름 및 실무 동향
하도급법상의 기술자료 규제는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장 엄격히 집행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그동안 규제대상이 꾸준히 확대되고 제재수위 또한 높아졌습니다.
최근에는 10억 원 이상의 과징금이 부과되고 나아가 검찰 고발로 형사사건화 된 사례도 빈번해지고 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기술자료 규제 집행 동향]
기술자료 규제는 상생협력법에도 존재합니다. 2021. 8. 개정으로 비밀유지계약, 기술자료 유용행위 규제가 신설되었는데(상생협력법 제21조의2 및 제25조 제2항), 하도급법과 사실상 동일합니다. 하도급법과는 달리 위탁기업의 ‘업’과 위탁ᆞ수탁거래의 ‘업’ 관련성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하도급법 보다 적용대상이 넓어서 하도급법 적용대상이 아니라도 상생협력법에 따른 규제가 따를 수 있습니다.
3. 기술자료 규제의 특징 : 넓은 기술자료 인정 범위 + 전달만으로도 유용 성립
기술자료 규제의 특징은 규제대상 행위가 광범위해서, 문제가 되면 위법성을 부인하기가 어렵다는 점입니다.
우선 ‘기술자료’ 인정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기술자료’는 ① 경제적으로 유용하고, ② 비밀로 관리되어야 하는데, 실무상 기술자료 해당성이 부정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① 경제적 유용성의 경우 ‘동종업계에서 단순한 참고가 되거나 자료를 통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기만 하더라도’ 인정됩니다. ② 비밀관리성 역시 명시적으로 비밀유지의무를 부담하기로 약정한 경우뿐만 아니라 양자 간 신뢰관계의 특성에 비추어 ‘신의칙상 또는 묵시적으로 그러한 의무를 부담하는 경우’도 인정됩니다.
4) 실무상 ‘경제적 유용성’이 인정되더라도 ‘비밀관리성’이 부인되는 경우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정당하게 기술자료를 제공받았더라도 제3자에 제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유용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하도급법 제12조의3 제4항 제2호 및 상생협력법 제25조 제2항 제2호). 과거 하도급법에는 ‘기술자료를 제3자에게 유출하는 행위’에 대해 별도 규정이 없었는데, 2018. 4. 17. 법률을 개정하여 ‘제3자 제공행위’ 또한 유용행위에 포함시켰습니다. 실무상 제3자 제공행위가 수급사업자와의 명시적인 합의에 의한 것이고 별도의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등 아주 예외적인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 한, 제3자 제공행위는 기술자료 유용으로 제재됩니다.
서울고등법원은 “수급사업자에게 손해를 입힐 목적이 없고, 수급사업자도 기술자료 제3자 제공을 예견할 수 있었다면 기술자료 제공행위가 부당하지 않다”는 취지로 판단한 바 있습니다만,
5) 공정거래위원회는 여전히 기존의 엄격한 법 집행 기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①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할 당시 해외 법인에 전달할 것을 미리 예고하였고, ② 수급사업자의 현지 출장이 어려워 해외 법인에 기술자료를 제공해야 할 부득이한 사정이 있음에도 “명시적으로 수급사업자의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제3자 제공행위는 부당하다”고 제재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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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떻게 할 것인가
새 정부의 정책기조를 고려하면, 기술자료 규제 관련 공정거래위원회의 엄격한 법 집행은 계속 유지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이를 위하여 다음의 사항을 유념하고 관련 프로세스 등을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력업체의 기술자료를 제공받는 것이 당초 거래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가 많습니다. 제조업의 경우만 하더라도 스펙(Spec) 확인, 중간산출물 점검, 공동개발 등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기술자료를 확인하지 않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이와 같은 정상적인 거래 과정에서, 협력업체의 기술을 탈취할 의도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규제내용을 사전에 인지하지 못해 법 위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절차적 의무를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당한 사유로 기술자료를 요구했다고 하더라도 기술자료제공요구서를 발급하고 비밀유지계약을 체결하는 등 법에서 요구하는 절차의무를 준수하지 않으면 제재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하도급법 제12조의3 및 상생협력법 제21조의2).
만약 단순 참고용이 아니라 제공받은 기술자료를 직접 사용해야 하는 경우, ‘사전 고지’, ‘명확한 계약조항’, ‘정당한 대가 지급’ 등을 통해 당해 기술자료에 관한 소유권이나 사용할 권리를 취득해야 할 것입니다. 이 같은 방법으로 권리를 취득하지 않은 채 기술자료를 스스로를 위해 사용하거나 제3자에 제공하게 될 경우 곧바로 ‘기술자료 유용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새 정부가 예고한 K-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제재절차 이후에 민사 손해배상 소송이 제기되고, 막대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습니다. 2024년 하도급법 및 상생협력법 개정으로 기술자료 유용행위에 대해서는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합니다(하도급법 제35조 제2항 제2호 및 상생협력법 제40조의2 제2항 제2호). 기술자료 제공요구, 보관 및 폐기 관련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점검하고, 회사 내 구매ᆞ생산ᆞ기술 등 협력업체와 협업하는 각 부서의 업무 기준을 정비할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