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07:56 산업단지 내의 한 공장에서 유해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하여 소방대, 군부대가 출동했습니다. 소방본부는 08:30 사고지점 반경 50m 거리까지 대피하라는 방송을 했습니다. 산업단지 관리사무소장은 재난지휘통제소에 문의한 다음 통제선 내에 있는 공장들에 대해 대피를 유도했습니다. 09:30 소방본부 측정 결과 반경 10m 이상 거리에는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09:30경 2차 누출사고가 있었고, 방제작업은 10:30 종료됐습니다. 그런데 10:36부터 사고업체 인근 공장에서도 환자가 발생해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통제선 밖에 있는 공장 직원들도 일부 포함). 소방본부는 18:35경 사고현장에서 철수했습니다.
한편, 사고지점에서 200m 떨어져 소방본부 통제선 밖에 있던 갑 회사 환경안전담당자는 08:10 재난지휘통제소를 찾았는데 ‘갑 회사가 대피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고 혹시 대피가 필요하면 연락주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에 08:40 경영진 및 기업별노조 대표자 등에게 보고했습니다. 기업별노조 노동안전국장은 30분간 공장을 둘러보았는데 조합원들에게 이상 징후는 없었습니다. 한편, 산별노조 지회장인 A도 회사 환경안전담당자와 여러 차례 통화하며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환경안전담당자는 A에게 ‘관계자로부터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계속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0:00경 노무이사, 기업별노조 위원장, A, 관할 근로감독관이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근로감독관은 대피를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기업별노조 위원장이 사고 현장 방문을 제안했는데, A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기업별노조 위원장과 환경안전담당자는 10:40 재난지휘통제소를 방문해 ‘현재 추가 위험사항 없어 대피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A는 10:21 소방본부에 전화를 걸어 누출 화학물질의 유해 정도를 질의한 다음 10:30 작업장을 이탈하면서 조합원 28명에게 대피를 지시했습니다. 회사 노무이사에게는 ‘대피를 지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10:46경 소방본부에 전화해 대피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 ‘이미 대피방송이 있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산별노조 조합원들은 11:30 이후 모두 회사를 이탈했습니다. A는 갑 회사, 대표이사, 환경안전담당자를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조치 의무 위반으로 고발했는데, 검찰은 무혐의처분했습니다. 갑 회사 직원 중에는 병원으로 후송된 사람이 없고 회사 보건실에 진료받으러 온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한 A에게 징계사유가 인정될까요?
2. A의 징계사유 : 제1, 2심 인정, 대법원 부정
제1심(대전지방법원 2018. 5. 16. 선고 2017가합101663 판결)과 제2심(대전고등법원 2018. 10. 31. 선고 2018나12405 판결)은 1) 객관적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2) A가 작업 중지 당시 인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며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했습니다. 제2심은 A가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그에 반해 대법원은, 1) 상당한 거리까지 유해물질이 퍼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공장에서도 오심, 구토,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하였던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던 갑 회사 작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2) A의 주관적 인식을 보면, 이미 대피명령을 하였다는 취지의 소방본부 설명과 대피를 권유하는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며, A의 행동은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대법원 2023. 11. 9. 선고 2018다288662 판결).
3.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주관적 인식에 기초한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 해당성 판단
1995년 개정 산업안전보건법1)은 “근로자는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때에는 지체없이 이를 직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직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제26조 제2항)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 “사업주는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때에는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 기타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제26조 제3항2))을 신설해 근로자의 권한 행사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위 규정이 근로자에게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인지, 급박한 위험의 판단 주체는 누구인지에 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제52조에 “근로자의 작업중지”를 표제로 한 조항을 신설합니다. 제1항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라고 해 근로자에게 작업중지 및 대피권이 있음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제4항은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에는 제1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여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근로자에 대한 보호장치를 유지하였습니다. 동시에,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의 판단 주체가 근로자임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제4항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부과에 대한 근거 규정은 없습니다.
한편, 위 내용은 국제노동기구(ILO) 제155호 협약(산업안전보건 및 작업환경에 관한 협약) 제13조3), 제19조 (f)항4)과 대동소이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가 명시하듯이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행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산업재해가 현실로 발생하였어야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고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은 누구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문제 되는데, 앞서 본 사건에서 대법원은 작업중지 당시의 객관적 사정에 더하여 근로자의 주관적 인식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를 고려해 판단한 것입니다.
4.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례
과거 작업중지권 행사로 인해 업무방해죄로 기소되었다가 무죄선고를 받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고의가 없어 무죄로 선고된 사례들이기는 하지만,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 사례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법원은 위 사고가 작업자의 안전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고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당시로서는 위 대의원을 비롯한 작업자들이 그와 같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와 같은 사고가 그 전날에도 발생하여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밝히지 못한 채 라인이 가동되었고 이후 또다시 사고가 일어난 것인 점 등을 들어, 작업중단의 목적을 ‘원인을 모르는 반복된 사고로 인하여 작업자가 신체에 위해를 입게 될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의도’로 평가하면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도14155 판결).
이 사건에서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근로자의 행동을 각 사고의 원인 및 대책에 대하여 의견을 모으고,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근로자들에게 알림으로써 계속하여 유사한 안전사고 발생을 방지하고 근로자들 주의 환기를 위한 목적의 행동으로 평가했기 때문입니다(수원지방법원 2011. 2. 17. 선고 2010노5562 판결).
5.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을 부정한 사례와 근로자의 책임
가. 징계책임
이 사안에서 법원은, 해당 대의원이 라인을 정지시킬 당시 근로자들이 즉시 대피하지 않으면 작업 중인 근로자들에게 중대한 재해가 발생할 만한 위험요소가 있었다고 할 만한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장비 가동 중에 보전(점검)작업을 실시하더라도 안전작업절차서를 준수하면 사고위험이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대의원의 라인정지행위가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에 해당하지 않아 징계사유가 되고 정직 2월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3. 4. 24. 선고 2012누32453 판결, 대법원 2013. 9. 12.자 2013두10823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 확정).5)
나. 형사책임
어느 날 06:55 근로자의 손가락 압착사고, 07:40 공장 내 차량과 사람의 충돌사고가 발생하여 라인이 중단되었습니다. 노조 대의원과 관리자는 약 1시간 현장 확인 후 09:00 생산라인을 가동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조 대표자가 노동안전분과위원회 협의 절차 미준수를 이유로 노조 자체 특별안전점검을 하기로 한 다음, 공장 전체의 비상정지 스위치를 눌러 09:00부터 2시간 반 동안 생산을 중단시킨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때 법원은 업무방해죄 성립을 긍정했습니다(울산지방법원 2014. 6. 27. 선고 2014노129 판결).
6. 마치며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에 관한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대법원이 근로자의 주관적 판단의 합리성을 고려해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을 판단하므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의 문턱은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권리행사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정당하게 행사되어 근로자의 재해예방 및 산업안전보건 확보에 활용되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월간 노동법률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1) 1995. 1. 5. 법률 제4916호로 개정된 것
2) 1996. 12. 31. 법률 제5248호로 개정된 것
3) 근로자가 자신의 생명이나 보건에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믿는 경우 이에 합리적인 정당성이 있어 작업환경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한 경우 국내여건과 국내관행에 따른 부당한 대우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4) 근로자가 자신의 생명이나 보건에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모든 상황을 자신의 직속감독자에게 보고하여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사용자는 구제조치를 취하기 전에 생명이나 보건에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계속되고 있는 작업상황으로 복귀할 것을 근로자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5) 다만 위 판결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때'란 '객관적으로 보아 산업재해의 위험이 곧 발생할 것으로 충분히 예견되어 즉시 대피하지 아니하면 작업 중인 근로자의 생명 · 신체에 중대한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하여 객관적인 사정만을 중시하였는데, 이 부분 판시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하에서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입니다.
07:56 산업단지 내의 한 공장에서 유해 화학물질 누출사고가 발생하여 소방대, 군부대가 출동했습니다. 소방본부는 08:30 사고지점 반경 50m 거리까지 대피하라는 방송을 했습니다. 산업단지 관리사무소장은 재난지휘통제소에 문의한 다음 통제선 내에 있는 공장들에 대해 대피를 유도했습니다. 09:30 소방본부 측정 결과 반경 10m 이상 거리에는 유해 화학물질이 검출되지 않았습니다. 09:30경 2차 누출사고가 있었고, 방제작업은 10:30 종료됐습니다. 그런데 10:36부터 사고업체 인근 공장에서도 환자가 발생해 병원으로 이송됐습니다(통제선 밖에 있는 공장 직원들도 일부 포함). 소방본부는 18:35경 사고현장에서 철수했습니다.
한편, 사고지점에서 200m 떨어져 소방본부 통제선 밖에 있던 갑 회사 환경안전담당자는 08:10 재난지휘통제소를 찾았는데 ‘갑 회사가 대피해야 하는 상황은 아니고 혹시 대피가 필요하면 연락주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이에 08:40 경영진 및 기업별노조 대표자 등에게 보고했습니다. 기업별노조 노동안전국장은 30분간 공장을 둘러보았는데 조합원들에게 이상 징후는 없었습니다. 한편, 산별노조 지회장인 A도 회사 환경안전담당자와 여러 차례 통화하며 상황을 파악했습니다. 환경안전담당자는 A에게 ‘관계자로부터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주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계속 상황을 지켜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10:00경 노무이사, 기업별노조 위원장, A, 관할 근로감독관이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근로감독관은 대피를 권유했습니다. 그러자 기업별노조 위원장이 사고 현장 방문을 제안했는데, A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기업별노조 위원장과 환경안전담당자는 10:40 재난지휘통제소를 방문해 ‘현재 추가 위험사항 없어 대피를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A는 10:21 소방본부에 전화를 걸어 누출 화학물질의 유해 정도를 질의한 다음 10:30 작업장을 이탈하면서 조합원 28명에게 대피를 지시했습니다. 회사 노무이사에게는 ‘대피를 지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리고 10:46경 소방본부에 전화해 대피명령이 내려지지 않는 이유를 물었는데 ‘이미 대피방송이 있었다’는 취지의 답변을 들었습니다. 산별노조 조합원들은 11:30 이후 모두 회사를 이탈했습니다. A는 갑 회사, 대표이사, 환경안전담당자를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중지조치 의무 위반으로 고발했는데, 검찰은 무혐의처분했습니다. 갑 회사 직원 중에는 병원으로 후송된 사람이 없고 회사 보건실에 진료받으러 온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행동을 한 A에게 징계사유가 인정될까요?
2. A의 징계사유 : 제1, 2심 인정, 대법원 부정
제1심(대전지방법원 2018. 5. 16. 선고 2017가합101663 판결)과 제2심(대전고등법원 2018. 10. 31. 선고 2018나12405 판결)은 1) 객관적으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2) A가 작업 중지 당시 인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더라도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며 정당한 징계사유로 인정했습니다. 제2심은 A가 쟁의행위의 일환으로 작업중지권을 행사했다고도 판단했습니다.
그에 반해 대법원은, 1) 상당한 거리까지 유해물질이 퍼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200m 이상 떨어진 공장에서도 오심, 구토, 두통을 호소하는 피해자들이 발생하였던 사정 등에 비추어 보면 누출사고 지점으로부터 반경 200m 정도의 거리에 있던 갑 회사 작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2) A의 주관적 인식을 보면, 이미 대피명령을 하였다는 취지의 소방본부 설명과 대피를 권유하는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며, A의 행동은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라는 취지로 파기환송했습니다(대법원 2023. 11. 9. 선고 2018다288662 판결).
3. 산업안전보건법 개정과 주관적 인식에 기초한 작업중지권 행사 요건 해당성 판단
1995년 개정 산업안전보건법1)은 “근로자는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으로 인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때에는 지체없이 이를 직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직상급자는 이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제26조 제2항)는 규정을 두었습니다. 그러다가 1996년 “사업주는 산업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근거가 있는 때에는 제2항의 규정에 의하여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이를 이유로 해고 기타 불리한 처우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라는 규정(제26조 제3항2))을 신설해 근로자의 권한 행사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위 규정이 근로자에게 작업중지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인지, 급박한 위험의 판단 주체는 누구인지에 관하여 논란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 전부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은 제52조에 “근로자의 작업중지”를 표제로 한 조항을 신설합니다. 제1항은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라고 해 근로자에게 작업중지 및 대피권이 있음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제4항은 “사업주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을 때에는 제1항에 따라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한 근로자에 대하여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하여 작업중지권을 행사한 근로자에 대한 보호장치를 유지하였습니다. 동시에, 산재 발생의 급박한 위험의 판단 주체가 근로자임을 명확히 하였습니다. 다만,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제4항을 위반한 사업주에 대한 형사처벌이나 과태료 부과에 대한 근거 규정은 없습니다.
한편, 위 내용은 국제노동기구(ILO) 제155호 협약(산업안전보건 및 작업환경에 관한 협약) 제13조3), 제19조 (f)항4)과 대동소이합니다.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가 명시하듯이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 행사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산업재해가 현실로 발생하였어야만 행사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고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으면 행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그리고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은 누구를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가 문제 되는데, 앞서 본 사건에서 대법원은 작업중지 당시의 객관적 사정에 더하여 근로자의 주관적 인식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를 고려해 판단한 것입니다.
4.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를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례
과거 작업중지권 행사로 인해 업무방해죄로 기소되었다가 무죄선고를 받은 사례들이 있습니다. 형법상 업무방해죄 구성 요건에 해당하지 않거나 고의가 없어 무죄로 선고된 사례들이기는 하지만,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 사례로 참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례1] 자동차 공장에서 연료탱크를 차체에 리프트로 장착하는 과정에서 차체 하부에 매달린 금속밴드가 휘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관리자가 그 원인을 찾지 못한 상태에서, 노조 반대에도 불구하고, 라인 재가동을 지시하자 노조 대의원이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아니한 상태에서는 작업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근로자들을 분임 토의장으로 모이게 해 1시간가량 작업을 중단하게 했습니다.
법원은 위 사고가 작업자의 안전에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고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당시로서는 위 대의원을 비롯한 작업자들이 그와 같이 생각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점, 이와 같은 사고가 그 전날에도 발생하여 원인을 파악하고자 하였으나 이를 밝히지 못한 채 라인이 가동되었고 이후 또다시 사고가 일어난 것인 점 등을 들어, 작업중단의 목적을 ‘원인을 모르는 반복된 사고로 인하여 작업자가 신체에 위해를 입게 될 안전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의도’로 평가하면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대법원 2011. 1. 27. 선고 2010도14155 판결).
[사례2] 도어 모듈 작업 중 근로자가 턱을 부딪쳐 약 2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안면부 열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하였으나 생산공정은 그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산업안전보건위원인 근로자가 이를 이유로 사고 13분 뒤에 비상스위치를 조작하여 생산공정을 중단시켰습니다. 그리고 근로자들을 분임토의장에 모이게 해 약 40분간 근로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로부터 6일 뒤에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차량 도어의 유리창이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같은 근로자는 이번에도 비상스위치를 작동시킨 다음 근로자들을 모이게 하여 1시간 동안 근로를 제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근로자의 행동을 각 사고의 원인 및 대책에 대하여 의견을 모으고, 사고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근로자들에게 알림으로써 계속하여 유사한 안전사고 발생을 방지하고 근로자들 주의 환기를 위한 목적의 행동으로 평가했기 때문입니다(수원지방법원 2011. 2. 17. 선고 2010노5562 판결).
5.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을 부정한 사례와 근로자의 책임
가. 징계책임
[사례1] 설비점검 업무를 하는 작업자가 20:30경 원인미상으로 중단된 자동화설비를 점검하다 손가락이 협착되는 안전사고가 발생했습니다. 해당 설비의 전원을 차단하지 않은 채 설비를 접촉한 것은 회사의 안전작업절차서를 준수하지 않은 행위였습니다. 회사는 곧바로 응급조치 후 봉합수술을 받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해당 기계에 대한 안전점검 후 21:10부터 공정을 재개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회식을 마치고 공장에 돌아온 노조 대의원이 21:40 해당 공정의 메인라인을 정지시켜 약 27분 동안 제품 생산을 중단시켰습니다.
이 사안에서 법원은, 해당 대의원이 라인을 정지시킬 당시 근로자들이 즉시 대피하지 않으면 작업 중인 근로자들에게 중대한 재해가 발생할 만한 위험요소가 있었다고 할 만한 자료가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장비 가동 중에 보전(점검)작업을 실시하더라도 안전작업절차서를 준수하면 사고위험이 높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재해발생의 급박한 위험'이 있는 때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대의원의 라인정지행위가 정당한 작업중지권 행사에 해당하지 않아 징계사유가 되고 정직 2월의 징계가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3. 4. 24. 선고 2012누32453 판결, 대법원 2013. 9. 12.자 2013두10823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 확정).5)
[사례2] 언론사 기자였던 사람이 내근직 디지털뉴스편집팀으로 발령을 받자 전보의 부당성을 설명하고 재고를 요청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공정보도를 심히 훼손하는 작업환경의 급박한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작업중지권을 행사한다’고 통보한 사례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법원은 해당 근로자가 전보와 관련한 업무상 사유로 사망 또는 부상하거나 질병에 걸리는 등의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에 처해 불가피하게 회사 승인 없이 결근할 수밖에 없었다거나, 해당 근로자로서는 그와 같이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정직의 징계가 산업안전보건법 제52조 제4항을 위반한 것'이라는 근로자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3. 3. 31. 선고 2022구합67388 판결, 서울고등법원 2024. 1. 26. 선고 2023누39528 판결).
나. 형사책임
어느 날 06:55 근로자의 손가락 압착사고, 07:40 공장 내 차량과 사람의 충돌사고가 발생하여 라인이 중단되었습니다. 노조 대의원과 관리자는 약 1시간 현장 확인 후 09:00 생산라인을 가동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그런데 노조 대표자가 노동안전분과위원회 협의 절차 미준수를 이유로 노조 자체 특별안전점검을 하기로 한 다음, 공장 전체의 비상정지 스위치를 눌러 09:00부터 2시간 반 동안 생산을 중단시킨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때 법원은 업무방해죄 성립을 긍정했습니다(울산지방법원 2014. 6. 27. 선고 2014노129 판결).
6. 마치며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에 관한 사례들을 살펴보았습니다. 대법원이 근로자의 주관적 판단의 합리성을 고려해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의 정당성을 판단하므로 근로자의 작업중지권 행사의 문턱은 낮아졌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을 기초로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믿을만한 합리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는 권리행사는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근로자의 작업중지권이 정당하게 행사되어 근로자의 재해예방 및 산업안전보건 확보에 활용되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월간 노동법률 2024년 2월호에 게재된 글을 수정한 것입니다.
1) 1995. 1. 5. 법률 제4916호로 개정된 것
2) 1996. 12. 31. 법률 제5248호로 개정된 것
3) 근로자가 자신의 생명이나 보건에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믿는 경우 이에 합리적인 정당성이 있어 작업환경으로부터 스스로 이탈한 경우 국내여건과 국내관행에 따른 부당한 대우로부터 보호받아야 합니다.
4) 근로자가 자신의 생명이나 보건에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존재한다고 합리적으로 판단한 모든 상황을 자신의 직속감독자에게 보고하여야 합니다. 필요한 경우 사용자는 구제조치를 취하기 전에 생명이나 보건에 급박하고 중대한 위험이 계속되고 있는 작업상황으로 복귀할 것을 근로자에게 요구할 수 없습니다.
5) 다만 위 판결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때'란 '객관적으로 보아 산업재해의 위험이 곧 발생할 것으로 충분히 예견되어 즉시 대피하지 아니하면 작업 중인 근로자의 생명 · 신체에 중대한 위험이 가해질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하여 객관적인 사정만을 중시하였는데, 이 부분 판시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하에서는 유지되기 어려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