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습니다(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이사(임원)의 경우, 회사는 정당한 이유가 없더라도 '언제든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로써 이사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상법 제385조 제1항 본문). 다만, 상법은 회사가 임기가 정해져 있는 이사를 그 임기 만료 전에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하는 경우 그 해임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해(상법 제385조 제1항 단서), 주주의 회사에 대한 지배권 확보와 경영자 지위의 안정이라는 주주와 이사의 이익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법은 손해배상책임 유무를 좌우하는 '정당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정당한 이유는 결국 판례의 해석을 참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아래에서는 대법원 및 하급심의 판단 사례를 중심으로 정당한 이유의 의미 및 판단기준 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 '정당한 이유'의 의미 및 판단기준
가. 정당한 이유의 의미
회사가 이사의 해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대법원은 주주와 이사 사이에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했거나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된 경우 등과 같이 '당해 이사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로소 임기 전에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대법원 2004. 10. 15. 선고 2004다25611 판결 등 참조), 다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대법원 또는 하급심이 해임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반면, 대법원 또는 하급심은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해임의 정당한 이유를 부정하였습니다.
나. 정당한 이유의 판단 시기
1) 대법원은 이사의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이사 해임 당시(즉, 해임결의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 증명 책임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이사가 부담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다49570 판결).
2) 나아가 최근 대법원은 회사가 이사를 해임할 당시 인식하지 못했던 사정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이유'에 대한 판단에 참작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3다220639 판결).
구체적으로 보면, 을 회사는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해 갑이 고철 대금 관련 배임 및 횡령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갑 등을 이사직에서 해임했는데, 갑은 검찰에서 혐의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에 갑은 잔여임기 동안의 보수 상당액 등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알고 보니 갑은 이사직 해임 전에 을 회사와 동종영업을 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등으로 취임해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1, 2심 재판부는 갑에 대한 해임결의 당시 을 회사가 경업금지의무 위반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해 해임 사유로 삼지 않았으므로 이는 정당한 이유의 판단으로 고려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법 제385조 제1항에 따라 회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은 무과실 법정책임에 해당하므로, 이사의 해임 당시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해임결의 당시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사유'를 참작해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 반드시 회사가 그 사유를 사전에 인식해 그 사유를 주주총회에서 해임 사유로 삼아야 한다거나, 해임결의 시 참작한 사유에 한정해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해임결의 당시 갑 등의 경업금지의무 위반행위가 이미 발생해 그러한 해임 사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이상, 회사가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해 주주총회에서 해임 사유로 삼지 않았더라도 그 사유를 정당한 이유 판단에 참작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3다220639 판결).
다.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의미
상법 제385조 제1항에 기한 '해임으로 인한 손해'란 이사가 임기 만료 전에 해임됨으로써 입게 될 손해로서, 해임되지 않았더라면 재임기간 동안 지급받을 수 있는 보수 상당액을 의미합니다. 이에 법원은 이사가 어떠한 이유로 해임 당시 무보수로 근무 중이었다면 해당 이사는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발생이 없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대전고등법원 2015. 1. 30. 선고 2014나1155 판결).
3. 마치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회사는 이사가 그 업무의 실질 등에 의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라도 언제든지 그 이사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이사의 경영자로서의 업무 집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인 상황이 없는데도 이사를 해임했다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므로, 해임의 사유가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 상실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사가 어떤 비위행위를 저지른 경우라도 그 비위행위의 정도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만한 객관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는다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 글은 월간 노동법률 2024년 7월호에 게재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사용자는 정당한 이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습니다(근로기준법 제23조 제1항). 반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닌 이사(임원)의 경우, 회사는 정당한 이유가 없더라도 '언제든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로써 이사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상법 제385조 제1항 본문). 다만, 상법은 회사가 임기가 정해져 있는 이사를 그 임기 만료 전에 정당한 이유 없이 해임하는 경우 그 해임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도록 해(상법 제385조 제1항 단서), 주주의 회사에 대한 지배권 확보와 경영자 지위의 안정이라는 주주와 이사의 이익을 적절히 조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상법은 손해배상책임 유무를 좌우하는 '정당한 이유'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규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정당한 이유는 결국 판례의 해석을 참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아래에서는 대법원 및 하급심의 판단 사례를 중심으로 정당한 이유의 의미 및 판단기준 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2. '정당한 이유'의 의미 및 판단기준
가. 정당한 이유의 의미
회사가 이사의 해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지 않는 정당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해, 대법원은 주주와 이사 사이에 불화 등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사가 법령이나 정관에 위배된 행위를 했거나 정신적ㆍ육체적으로 경영자로서의 직무를 감당하기 현저하게 곤란한 경우,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된 경우 등과 같이 '당해 이사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경우'에 비로소 임기 전에 해임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아(대법원 2004. 10. 15. 선고 2004다25611 판결 등 참조), 다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법리에 따라 대법원 또는 하급심이 해임의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본 사례는 다음과 같습니다.
가) 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2다98720 판결
A가 B회사의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B회사의 매출실적이 40% 정도 감소하는 등 영업실적이 현저히 악화됐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감안하더라도 B회사를 제외한 같은 그룹 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회사들의 영업실적과 비교해 보면 B회사의 영업이 상당히 부진했던 사안에서, A의 경영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상실돼 A가 B회사의 이사로서 직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고 해임의 정당한 이유를 인정했습니다.
나) 서울고등법원 2023. 1. 26. 선고 2022나2030974 판결
전남 동부지역을 시청권역으로 하는 지역 방송사에서 대표이사 직위에 있던 A가 5ㆍ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는 등 논란을 일으켜 그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파장이 있었고, 이로 인해 노조와의 갈등이 심화됐습니다. 노조가 A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함에 따라 장기간 회사의 방송이 파행되자, 회사가 장기간 방송 파행의 책임 등 조직통할능력의 부족, 경영 능력의 부재, 회사의 명예와 국민 신뢰 실추를 이유로 A를 해임했던 사안에서, 재판부는 A의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 대구고등법원 2022. 10. 25. 선고 2022나22167 판결
대표이사 A가 다수인이 참여하는 주간 회의에서 여러 차례 하급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모욕했고, 경영계획 대비 부진한 성과를 냈으며, 소속 직원이 업무와 관련한 범죄행위를 저질러 회사 역시 양벌규정에 따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던 사안에서, 재판부는 A가 법령에 위배된 행위를 했거나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됐다고 보고 A의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A가 B회사의 대표이사로 재임하는 동안 B회사의 매출실적이 40% 정도 감소하는 등 영업실적이 현저히 악화됐고,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감안하더라도 B회사를 제외한 같은 그룹 내 아시아ㆍ태평양 지역 회사들의 영업실적과 비교해 보면 B회사의 영업이 상당히 부진했던 사안에서, A의 경영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상실돼 A가 B회사의 이사로서 직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인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고 해임의 정당한 이유를 인정했습니다.
나) 서울고등법원 2023. 1. 26. 선고 2022나2030974 판결
전남 동부지역을 시청권역으로 하는 지역 방송사에서 대표이사 직위에 있던 A가 5ㆍ18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발언을 하는 등 논란을 일으켜 그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는 등 파장이 있었고, 이로 인해 노조와의 갈등이 심화됐습니다. 노조가 A의 퇴진을 요구하면서 총파업을 함에 따라 장기간 회사의 방송이 파행되자, 회사가 장기간 방송 파행의 책임 등 조직통할능력의 부족, 경영 능력의 부재, 회사의 명예와 국민 신뢰 실추를 이유로 A를 해임했던 사안에서, 재판부는 A의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다) 대구고등법원 2022. 10. 25. 선고 2022나22167 판결
대표이사 A가 다수인이 참여하는 주간 회의에서 여러 차례 하급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모욕했고, 경영계획 대비 부진한 성과를 냈으며, 소속 직원이 업무와 관련한 범죄행위를 저질러 회사 역시 양벌규정에 따라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던 사안에서, 재판부는 A가 법령에 위배된 행위를 했거나 회사의 중요한 사업계획 수립이나 그 추진에 실패함으로써 경영 능력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 관계가 상실됐다고 보고 A의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반면, 대법원 또는 하급심은 다음과 같은 사례에서 해임의 정당한 이유를 부정하였습니다.
가) 대법원 2013. 9. 26. 선고 2011다42348 판결
회사가 임기 3년의 감사 A를 감사정보비 등을 부적절하고 과다하게 집행한 점, 법인카드를 일부 부정하게 사용한 점, 회사의 계약 체결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한 점, 직원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등 감사업무 수행 방식이 부적절한 점 등을 이유로 해임한 사안에서, 원심(서울고등법원 2011. 4. 29. 선고 2010나46123 판결)은 A가 일부 비용을 부적절하게 집행했으나 개인적 목적으로 감사정보비 등을 사용해 회사에 실질적으로 손해를 입혔음이 분명하지 않은 점, A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일부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용도가 불분명한 비용은 총 200만 원을 넘지 않으며, 회사 역시 부당 사용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 달리 A가 감사업무를 소홀히 했거나 감사업무의 잘못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정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해 A에게 일부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들만으로는 감사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만한 객관적 상황을 인정할 정도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어 정당한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했습니다.
나) 대법원 2016. 6. 10. 선고 2016다201715 판결
대표이사 A가 대주주 D의 주식 양도를 위법하게 방해했다는 이유로 A를 임기 만료 전에 해임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A가 D의 주식 양도 자체를 반대하면서 거래를 파탄에 이르게 하려 했거나 다른 임직원들에게 D의 주식 양도를 기필코 저지하자고 선동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A가 대표이사로서 의견을 표명한 것을 넘어 D의 주식 처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침해할 정도의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으며, 이러한 사유는 D가 주관적으로 A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원인이 될 수 있을 뿐 회사의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보고 정당한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다) 서울고등법원 2022. 3. 31. 선고 2021나2025180 판결
갑 그룹의 계열사 직원들 사이에 성희롱 사건이 발생해 갑 그룹의 회장은 가해자 A가 소속된 을 회사의 B 대표이사에 대해 그룹 차원의 인사위원회(이른바 가족사 인사위원회)를 통해 A의 징계 심의를 하도록 지시했는데, B가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 절차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자 B를 해임한 사안에서, 재판부는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 관행의 존재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각 별개의 회사에 소속돼 법률에서 말하는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점, B는 을 회사의 규정에 따라 A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으므로 을 회사의 규정에 따라 징계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 B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정당한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회사가 임기 3년의 감사 A를 감사정보비 등을 부적절하고 과다하게 집행한 점, 법인카드를 일부 부정하게 사용한 점, 회사의 계약 체결 과정에 부당하게 관여한 점, 직원들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사용하는 등 감사업무 수행 방식이 부적절한 점 등을 이유로 해임한 사안에서, 원심(서울고등법원 2011. 4. 29. 선고 2010나46123 판결)은 A가 일부 비용을 부적절하게 집행했으나 개인적 목적으로 감사정보비 등을 사용해 회사에 실질적으로 손해를 입혔음이 분명하지 않은 점, A의 법인카드 부정 사용 사실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았고, 일부 개인적 목적으로 사용하거나 용도가 불분명한 비용은 총 200만 원을 넘지 않으며, 회사 역시 부당 사용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점, 달리 A가 감사업무를 소홀히 했거나 감사업무의 잘못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는 사정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해 A에게 일부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사유들만으로는 감사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만한 객관적 상황을 인정할 정도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어 정당한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대법원 역시 이러한 원심의 판단을 수긍했습니다.
나) 대법원 2016. 6. 10. 선고 2016다201715 판결
대표이사 A가 대주주 D의 주식 양도를 위법하게 방해했다는 이유로 A를 임기 만료 전에 해임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A가 D의 주식 양도 자체를 반대하면서 거래를 파탄에 이르게 하려 했거나 다른 임직원들에게 D의 주식 양도를 기필코 저지하자고 선동했다고 보기는 부족하고, A가 대표이사로서 의견을 표명한 것을 넘어 D의 주식 처분의 자유를 실질적으로 침해할 정도의 행위를 했다고 볼 수 없으며, 이러한 사유는 D가 주관적으로 A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 원인이 될 수 있을 뿐 회사의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보고 정당한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다) 서울고등법원 2022. 3. 31. 선고 2021나2025180 판결
갑 그룹의 계열사 직원들 사이에 성희롱 사건이 발생해 갑 그룹의 회장은 가해자 A가 소속된 을 회사의 B 대표이사에 대해 그룹 차원의 인사위원회(이른바 가족사 인사위원회)를 통해 A의 징계 심의를 하도록 지시했는데, B가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 절차에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하자 B를 해임한 사안에서, 재판부는 징계위원회를 통한 징계 관행의 존재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 점, 가해자와 피해자가 각각 별개의 회사에 소속돼 법률에서 말하는 직장 내 성희롱에 해당하는지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점, B는 을 회사의 규정에 따라 A의 절차적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으므로 을 회사의 규정에 따라 징계 절차를 진행하고자 한 B의 행동이 부적절하다고 보기도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정당한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나. 정당한 이유의 판단 시기
1) 대법원은 이사의 해임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지 여부는 '이사 해임 당시(즉, 해임결의 당시)'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고, 그 증명 책임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이사가 부담한다고 보았습니다(대법원 2006. 11. 23. 선고 2004다49570 판결).
2) 나아가 최근 대법원은 회사가 이사를 해임할 당시 인식하지 못했던 사정이라 하더라도 '정당한 이유'에 대한 판단에 참작할 수 있다고 판시하였습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3다220639 판결).
구체적으로 보면, 을 회사는 임시주주총회를 개최해 갑이 고철 대금 관련 배임 및 횡령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갑 등을 이사직에서 해임했는데, 갑은 검찰에서 혐의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받았습니다. 이에 갑은 잔여임기 동안의 보수 상당액 등 손해배상을 청구했는데, 알고 보니 갑은 이사직 해임 전에 을 회사와 동종영업을 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 등으로 취임해 경업금지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이에 대해 1, 2심 재판부는 갑에 대한 해임결의 당시 을 회사가 경업금지의무 위반 사실을 인지하지도 못해 해임 사유로 삼지 않았으므로 이는 정당한 이유의 판단으로 고려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상법 제385조 제1항에 따라 회사가 부담하는 손해배상책임은 무과실 법정책임에 해당하므로, 이사의 해임 당시 정당한 이유가 있었는지는 '해임결의 당시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사유'를 참작해 판단할 수 있는 것이고, 반드시 회사가 그 사유를 사전에 인식해 그 사유를 주주총회에서 해임 사유로 삼아야 한다거나, 해임결의 시 참작한 사유에 한정해 판단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즉, 대법원은 해임결의 당시 갑 등의 경업금지의무 위반행위가 이미 발생해 그러한 해임 사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했던 이상, 회사가 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해 주주총회에서 해임 사유로 삼지 않았더라도 그 사유를 정당한 이유 판단에 참작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대법원 2023. 8. 31. 선고 2023다220639 판결).
다.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의미
상법 제385조 제1항에 기한 '해임으로 인한 손해'란 이사가 임기 만료 전에 해임됨으로써 입게 될 손해로서, 해임되지 않았더라면 재임기간 동안 지급받을 수 있는 보수 상당액을 의미합니다. 이에 법원은 이사가 어떠한 이유로 해임 당시 무보수로 근무 중이었다면 해당 이사는 해임으로 인한 손해의 발생이 없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대전고등법원 2015. 1. 30. 선고 2014나1155 판결).
3. 마치며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회사는 이사가 그 업무의 실질 등에 의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 한 정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라도 언제든지 그 이사를 해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회사가 이사의 경영자로서의 업무 집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인 상황이 없는데도 이사를 해임했다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 있으므로, 해임의 사유가 단순히 주관적인 신뢰 상실에 그치는 것은 아닌지 면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이사가 어떤 비위행위를 저지른 경우라도 그 비위행위의 정도가 경영자로서 업무를 집행하는 데 장해가 될 만한 객관적인 상황에 이르지 않는다면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할 수도 있음을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 이 글은 월간 노동법률 2024년 7월호에 게재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