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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PYONG 법무법인[유] 지평

법률정보|칼럼
[노동]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의 구분과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확보의무
2024.12.23
1. 들어가며

산업안전보건법 제2절(도급인의 안전조치 및 보건조치)은 도급인의 관계수급인에 대한 안전보건조치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산업안전보건법 제62조 내지 제66조).  다만,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는 건설공사의 시공을 주도하여 총괄ㆍ관리하지 않는 자(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10호)로서 도급인에서 제외(산업안전보건법 제2조 제7호 단서)되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의 안전보건조치 의무를 부담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건설공사현장에서 협력업체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인지, 도급인인지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상 책임주체가 달라지므로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의 구분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은 2024. 11. 14. 선고 2023도14674 판결(이하 ‘대상판결’)을 통해,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을 구별하는 기준을 제시하였습니다.

아래에서는 대상판결과 기타 하급심 판결을 중심으로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도급인의 판단기준을 살피고, 건설공사발주자의 중대재해처벌법상 ‘실질적인 지배ㆍ운영ㆍ관리책임’의 범위를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2.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도급인 구분기준에 관하여

가. 대상판결의 사실관계 및 쟁점

A공기업은 B회사에 갑문 정기보수공사를 약 22억 원에 도급주었고, B회사 소속 피해자가 갑문 상부에서 윈치를 이용하여 18m 아래 갑문 하부 바닥으로 H빔 등을 내리는 작업을 진행하던 중 윈치프레임이 전도되면서 갑문 아래로 추락하자 윈치프레임의 컨트롤러 및 H빔에 연결된 가이드 줄을 잡고 있던 피해자도 갑문 바닥으로 추락하여 사망하였습니다.  A공기업과 B회사는 추락할 위험이 있는 2m 이상의 장소임에도 안전대를 걸어 사용할 수 있는 안전대 부착설비를 설치하지 아니하였고(안전보건규칙 제44조), 중량물을 취급하는 작업임에도 추락 등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 안전대책을 포함한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습니다(안전보건규칙 제38조 제1항 제11호).

위와 같은 사실관계 하에서, A공기업이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인인 경우 도급인의 사업장에서 진행되는 위 공사에 관해 안전보건규칙에서 정한 안전보건조치(안전대 부착설비 설치 및 작업계획서 작성)에 대한 의무를 부담하게 되는바 A공기업이 건설공사발주자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도급인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었습니다.  

나. 대상판결과 하급심 판결

대상판결의 1심 판결은 A공기업이 항만관리, 운영에 관한 사업 등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점, 그렇다면 갑문 정기보수공사는 A공기업의 본질적인 사업에 해당하는 점, 갑문 보수공사와 관련하여 발생하는 재해를 처리하는 부서가 존재하는 점, A공기업의 인력, 자산, 시설 등에 비추어 보더라도 B회사에 비해 월등히 우월한 지위에 있는 점 등을 바탕으로 A공기업을 도급인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반면 2심 판결은 A공기업이 갑문 유지보수공사에 필요한 건설업자격(철강구조물공사업)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 갑문 보수공사를 직접 시공할 수 있을 정도의 인력이나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A공기업을 건설공사발주자로 판단하였습니다.

대법원은, 먼저 도급인의 범위와 의무를 대폭 확대ㆍ강화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의 입법취지를 설명하면서 “도급 사업주가 자신의 사업장에서 시행하는 건설공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산업재해 예방과 관련된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해당 건설공사에 대하여 행사한 실질적 영향력의 정도, 도급 사업주의 해당 공사에 대한 전문성, 시공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규범적인 관점에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러한 법리 하에, 갑문의 유지 및 관리는 A공기업의 주된 설립 목적인 점, A공기업이 설계ㆍ시공ㆍ감리 등 준공까지의 전 과정을 기획하고 설계도면도 직접 작성했으며, 공정률에 따라 설계도면을 직접 변경하기도 한 점, 갑문 운영ㆍ관리 및 갑문시설물의 유지보수를 주 업무로 하는 전담부서를 두고 있는 점, A회사는 거대 공기업인 반면, B회사는 상시 근로자수 약 10명에 해당하는 소규모 기업인 점 등, 제1심 판결과 유사한 근거를 제시하며 A공기업을 도급인으로 판단하였습니다.

대상판결은 결국 1) 갑문 보수공사가 A공기업 사업의 주목적을 수행하는데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2) A공기업에 갑문 유지보수에 관한 전담부서를 두고 있고, 예산, 시설, 인력 등의 규모를 고려하였을 때 A공기업이 산업재해예방을 위한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을 가지고 수급인에게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였다는 점을 들어 A공기업을 도급인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다. 기타 하급심 법원의 판단

이와 관련해, 하급심 법원은 제조업 회사가 공장동 지붕 및 벽체 일부 보수공사를 도급한 사안(울산지방법원 2021노1261 판결), 제조업 회사가 빗물받이 지붕판넬 교체 및 물받이 보수공사를 도급한 사안(수원지방법원 2022노6306 판결), 제조업 회사가 천막의 제작ㆍ설치ㆍ보수공사를 도급한 사안(인천지방법원 2022노1366 판결)에서는 원도급인을 발주자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반면 모 에너지 공기업이 발전소 공사 일부를 도급한 사안(대전지방법원 2022노2555 판결), 전자전기통신 관련 공사업을 목적으로 하는 회사가 배터리 유지보수 작업을 도급한 사안(의정부지방법원 2023노44 판결), 제지 제조 및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상장회사가 영세 건설공사 업체에 대정비작업의 일부인 스팀배관 공사를 도급한 사안(수원지방법원 2023노1420 판결)에서 원청이 도급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대상판결 직후 선고된 하급심 역시 농업기반시설을 관리하는 공기업이 취수탑 보수 공사를 도급한 사안(대구지방법원 2023노1081 판결)에서 해당 공기업이 도급인에 해당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위 사안들을 종합해 보면, 수급인에게 도급 준 작업들이 원청 회사 사업을 영위하는데 필수적일수록, 도급 준 회사 규모가 도급받은 회사에 비해 클수록, 해당 공사에 대한 주도권이 도급인에게 있을수록 도급인으로 평가하여 안전보건조치의무를 부담하게 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입니다. 


3. 중대재해처벌법상 ‘실질적인 지배ㆍ운영ㆍ관리’에 관하여

대상판결은 건설공사발주자와 도급인을 구분하는데 있어서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즉 건설공사발주자는 일반적으로 공사 과정 전반의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 제5조는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하여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책임이 있는 경우 제3자 종사자에 대한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이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설공사의 유해ㆍ위험요소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ㆍ관리 권한이 없어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로 인정되는 경우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확보의무를 부담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는지가 문제됩니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는 유권해석을 통해, “건설공사발주자는 해당 공사를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며, 이 경우 그 발주자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에 해당하지 않고, 건설공사를 발주받아 해당 공사를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는 시공사가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 대상”이라고 하였습니다(중대산업재해감독과-2051, 2022. 5. 31. 등).  즉, 유권해석에 따르면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는 일반적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대상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 내지 도급인의 구분은 공사 전반의 유해위험요소에 대한 실질적 지배ㆍ관리 여부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반면, 중대재해처벌법의 안전보건확보의무는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한 ‘실질적인 지배ㆍ운영ㆍ관리’가 인정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어, 개념적으로는 구별됩니다.  따라서 건설공사발주자가 특정 시설, 장비, 장소를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였고, 해당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내재된 유해ㆍ위험요인으로 사고가 발생하였다면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라고 평가되더라도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건설공사발주자가 특정 시설, 장비, 장소 등에 대해 실질적으로 지배ㆍ운영ㆍ관리하면서도 시공사가 파악하거나 개선하기 어려운 특정 유해ㆍ위험요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거나 유해ㆍ위험요인을 개선하지 않아서 사고가 발생한 경우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도 중대재해처벌법의 적용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4. 마치며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건설공사발주자를 판단함에 있어 책임을 부여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규범적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건설공사발주자인지 도급인인지를 사전에 명확하게 예측하기는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업에 필수적인 사항에 관해 공사를 발주하고, 그 공사가 사내에서 이루어지며, 전문성의 관점에서 수급인보다 열위에 있다고 단언할 수 없는 회사들이라면, 도급인으로 평가될 수 있고, 시설, 장비, 장소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이 있다는 전제에서 중대재해처벌법상 안전보건확보의무도 이행하는 것이 리스크 방지 관점에서 타당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