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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PYONG 법무법인[유] 지평

법률정보|칼럼
[헌법 · 행정 · 규제대응]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되는 ‘부정한 행위’의 의미
2024.07.16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에는 부정당업자에 대해 입찰참가자격 제한 처분을 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국가계약은 경쟁입찰이 원칙입니다.  입찰참가자격을 제한받게 되면 영업활동에 큰 불이익을 입게 됩니다.  제재 처분이 적법한지 다툼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이유입니다.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에서는 9호에 걸쳐 처분 사유를 정했습니다.  제한 처분을 할 수 있는 요건이 충족되었는지 제1호부터 논란이 됩니다.  “계약을 이행할 때에 부실ㆍ조잡 또는 부당하게 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한 자”에 대해 2년 이내의 범위에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하는 조항입니다.  같은 법 시행령 제76조 제4항에서 기준이 더 구체화됩니다.  제한의 기간에 관한 사항은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각 호에 해당하는 행위별로 부실벌점, 하자비율, 부정행위 유형, 고의ㆍ과실 여부, 뇌물 액수 및 국가에 손해를 끼친 정도 등을 고려하여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위 조항의 위임을 받은 개별기준에서 내용이 다시 더 세분화됩니다.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1호 위반자 중 ‘부실시공 또는 부실설계ㆍ감리를 한 자’에 대하여는 부실벌점의 정도에 따라 2개월에서 2년의(제1호), ‘계약의 이행을 조잡하게 한 자’에 대하여는 보수비율에 따라 3개월에서 2년의 제재기간을 규정하고 있습니다(제2호).  ‘계약의 이행을 부당하게 하거나 계약을 이행할 때에 부정한 행위를 한 자’는 3개월에서 1년의 제재를 받게 되는데(제3호), 그중 규격서와 달리 구조물 내구성 연한의 단축, 안전도의 위해를 가져오는 등 부당한 제조를 한 자에 대하여는 1년[(가)목], 규격서상의 기준규격보다 낮은 다른 자재를 쓰는 등 부정한 제조를 한 자에 대하여는 6개월[(나)목], 부당하거나 부정한 제조에 대하여 감리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않은 자에 대하여는 3개월[(다)목]의 제재기간이 정해져 있습니다(제3호).  다만, “부정한 행위”의 의미에 대해서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는 않아 그 의미를 어떻게 해석할지 여전히 쟁점이 됩니다. 

최근 대법원은, 원심판결이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1호의 ‘부정한 행위’의 해석 및 행정처분의 적법성 증명책임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고 하여 파기했습니다(대법원 2024. 6. 27. 선고 2024두32393 판결).  입찰참가자격이 제한되는 “부정한 행위를 한 자”의 의미를 더 명확히 밝혔습니다.  

원고가 운동복 생산 업체인 사건입니다.  원고는 피고 방위사업청장과 육군 운동복을 제조ㆍ납품하는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납품계약을 맺은 원고는 운동복 원단이 구매요구서에서 정한 품질기준에 부합함을 확인한다는 공인기관의 시험성적서를 제출했습니다.  그런데 원고가 최종 납품한 운동복 완제품을 대상으로 원단을 시험한 결과 일부 항목에서 품질기준을 충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방위사업청장은 원고가 ‘부정한 제조를 한 자’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1호, 같은 법 시행령 제76조, 같은 법 시행규칙 제76조 [별표 2] ‘2. 개별기준 제3호 (나)목’에 따라 원고의 입찰참가자격을 6개월간 제한하는 처분을 했습니다.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은 원고에 대한 제재 처분이 적법하다고 보았습니다.  원고의 청구와 항소를기각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피고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원고가 ‘부정한 제조를 한 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하여 원심을 파기했습니다.  원단이 아닌 완제품에 대한 시험결과라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원고가 품질기준에 부합하는 원단을 사용하였더라도 제조공정을 거치면서 품질이 저하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므로, 완제품 시험결과만으로는 원고가 운동복을 제조할 때 기준규격보다 낮은 다른 원단을 사용하였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피고는, 설령 제작공정으로 원단의 품질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에게는 원단의 품질기준을 완제품 상태에서도 그대로 유지하여야 할 제작ㆍ관리상의 책임이 있으므로 완제품이 품질기준에 미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처분사유가 인정된다고 주장했습니다.  

대법원은 이러한 피고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계약이행의 결과에 객관적 하자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는 원고가 계약을 이행할 때에 사회통념상 옳지 못한 행위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원고가 피복류 제작 과정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될 수 없는 이례적인 공정으로 운동복을 제작하는 등 다른 부정한 행위를 하였다고 볼 만한 사정에 대한 주장ㆍ증명도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대법원의 판시를 보면, 실제 사건에 적용되는 ‘부정한 행위’의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대법원의 입장에 따르면, 피고로서는 원고가 운동복을 제조하는 과정에서 공인기관의 시험을 통과한 원단이 아니라 품질기준에 미달되는 다른 원단을 사용하거나 이에 준하는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옳지 못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물품을 제조하였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어떻게 이런 해석을 이끌어 냈을까.  대법원은 다른 국가계약법령과의 조화되는 체계적 해석을 통해 ‘부정한 행위’의 의미를 밝혔습니다.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1호는 ‘계약을 이행할 때에 부실ㆍ조잡 또는 부당’하게 하거나 ‘부정한 행위를 한 자’로 전단과 후단을 나누어 규정합니다.  개별기준 역시 부실한 이행(제1호)과 조잡한 이행(제2호), 부당ㆍ부정한 행위(제3호)를 나누어 각 행위별로 제재기간을 달리 정합니다.  개별기준 제3호 (나)목은 ‘부정한 행위를 한 자’의 구체적인 예시로 ‘설계서상의 기준규격보다 낮은 자재를 쓰는 행위’를 들고 있습니다.

개별기준의 세부 내용을 보면, 제1, 2호는 하자의 정도에 따라 제재기간에 차등을 둡니다.  제조된 물품의 객관적 상태가 품질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등 계약 이행의 결과를 이유로 제재하려는 목적이 드러납니다.  반면 제3호는 시공방법이나 사용한 자재가 설계서와 다른 경우를 예시로 들고 있으므로 계약을 위반하는 행위 자체를 제재하고자 하는 취지로 해석됩니다.

또한 국가계약법령은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9호 (나)목, 같은 법 시행령 제76조 제2항 제2호 (가)목, 개별기준 제13호를 보면, 정당한 이유 없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거나 계약의 주요조건을 위반하여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염려가 있는 자를 제재할 수 있도록 합니다.  계약당사자가 소극적인 태도로 계약상 책임을 이행하지 않아 계약의 적정한 이행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대해서 제27조 제1항 제1호와는 다른 별도의 규정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한편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4호는 다른 유형으로 ‘사기, 그 밖의 부정한 행위로 입찰ㆍ낙찰 또는 계약의 체결ㆍ이행 과정에서 국가에 손해를 끼치는 경우’를 정합니다.  사기인지 그 밖의 부정한 행위인지를 구분하지 않습니다.  국가에 발생한 손해의 정도에 따라 제재기간에 차등을 두어(개별기준 제6호), ‘부정한 행위’를 사기에 준하는 행위로 규정했습니다. 

이러한 관련 법령의 체계와 내용을 종합해 대법원은,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1호, 같은 법 시행령 제76조 제4항의 위임에 따른 개별기준 제3호 (나)목의 ‘부정한 행위를 한 자’란 설계서상의 기준규격보다 낮은 다른 자재를 쓰거나 이와 같은 정도로 사회통념상 허용되지 않는 옳지 못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여 계약상 의무를 위반한 자를 말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이 사건으로 돌아와 보면, 완제품의 시험결과가 원단의 시험결과와 다르다는 사실만으로 처분사유가 충족된다고 볼 수 없게 됩니다.  피고로서는, 원고가 기준규격보다 낮은 다른 자재를 쓰거나 이에 준하여 옳지 못한 방법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사정을 밝혀야 합니다.  이 사건에서 제시한 대법원의 해석과 기준은 다른 사건에서도 국가계약법 제27조 제1항 제1호 사유를 충족했는지를 판단하는 데에 중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