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칼럼에서 ‘행정소송법상 집행정지와 대응방안’에 관하여 소개해 드렸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부정당업자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의 가중사유’와 ‘집행정지 결정의 효력’ 간 관계에 대한 독특한 쟁점을 한 가지 소개하고자 합니다.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률」(이하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76조 제4항은 ‘입찰참가자격 제한의 기간에 관한 사항은 부정당업자의 행위별로 부실벌점, 하자비율, 부정행위 유형, 고의ㆍ과실 여부, 뇌물 액수 및 국가에 손해를 끼친 정도를 고려하여 기획재정부령으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시행령의 위임을 받아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및 [별표 2]는 부정당업자의 입찰참가자격 제한기준을 상세히 규정하고 있습니다. 위 [별표 2] 중 1항은 ‘일반기준’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데, 그 중 가목은 가중사유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별표 2] 부정당업자의 입찰참가자격 제한기준
1. 일반기준
가. 각 중앙관서의 장은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받은 자에게 그 처분일부터 입찰참가자격제한기간 종료 후 6개월이 경과하는 날까지의 기간 중 다시 부정당업자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위반행위의 동기ㆍ내용 및 횟수 등을 고려하여 제2호에 따른 해당 제재기간의 2분의 1의 범위에서 자격제한기간을 늘릴 수 있다. 이 경우 가중한 기간을 합산한 기간은 2년을 넘을 수 없다.
1. 일반기준
가. 각 중앙관서의 장은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받은 자에게 그 처분일부터 입찰참가자격제한기간 종료 후 6개월이 경과하는 날까지의 기간 중 다시 부정당업자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 위반행위의 동기ㆍ내용 및 횟수 등을 고려하여 제2호에 따른 해당 제재기간의 2분의 1의 범위에서 자격제한기간을 늘릴 수 있다. 이 경우 가중한 기간을 합산한 기간은 2년을 넘을 수 없다.
즉, 이미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받은 자에게 재차 부정당업자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면, 재차 부정당업자에 해당하는 사유에 대한 제재기간을 2분의 1 범위에서 늘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재차 부정당업자에 해당하는 사유는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받은 날(기산일)’로부터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기간 종료 후 6개월이 경과하는 날(종료일)’까지의 기간 중 발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대하여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다면 어떨까요? 이러한 경우에도 재차 부정당업자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하면 국가계약법령에 따라 입찰참가자격제한 기간을 가중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쟁점을 정면으로 다룬 문헌이나 대법원 판결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만, 대략 두 가지 견해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가중할 수 있다’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및 [별표 2] 1항 가목은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지 ‘유효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받은 자’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라는 해석을 전제로 합니다. 즉,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대하여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져 그 효력이 정지되었다고 하더라도,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받은 ‘사실’만 있다면 가중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가중할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이러한 견해는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및 [별표 2] 1항 가목 중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받은 자’는 ‘가중사유를 적용하여 처분을 하려는 시점에 유효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받은 자’이어야 한다.”라는 해석을 전제로 합니다.
국가계약법령의 문언 해석 및 체계적 해석, 집행정지 결정의 형성력 및 기속력을 고려하면 두 번째 견해가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견해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점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① | 앞서 살펴보았듯이, 재차 부정당업자에 해당하는 사유는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받은 날(기산일)’로부터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기간 종료 후 6개월이 경과하는 날(종료일)’까지의 기간 중 발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위 기간 중 ‘종료일’은 ‘유효한’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결정으로 처분의 효력이 정지되었다면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따른 입찰참가자격제한 기간의 말일’을 특정할 수 없게 되고, 따라서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기간 종료 후 6개월이 경과하는 날(종료일)’도 특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
② | 대법원은 ‘침익적 행정처분의 경우,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는 엄격하게 해석ㆍ적용하여야 하고,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을 하여서는 안 된다’는 법리를 확립하고 있습니다(대법원 2008. 2. 28. 선고 2007두13791 판결, 대법원 2022. 1. 27. 선고 2020두39365 판결 등 참조). 만약 위 가중사유의 요건 중 ‘입찰참가자격의 제한을 받은 자’를 ‘유효하지 않은’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받은 자까지 포함한다고 해석한다면 침익적 행정처분의 근거가 되는 행정법규를 행정처분의 상대방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
③ | 국가계약법 시행규칙 제76조 및 [별표 2] 1항 가목이 규정하는 가중사유의 취지에 관하여 ‘형법상 누범 가중의 취지와 유사하다’는 설명이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대법원은 형법상 누범 가중의 요건과 관련하여 ‘전범(前犯)이 받은 형의 선고는 유효해야 한다’는 법리를 확립하고 있습니다(대법원 1970. 9. 22. 선고 70도1627 판결, 대법원 2002. 10. 22. 선고 2002감도39 판결 등 참조). 부정당업자에 대한 입찰참가자격제한의 가중사유도 달리 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④ |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은 처분의 효력을 잠정적으로 상실시키는 형성력을 갖고, 당사자인 행정청과 그 밖의 관계행정청을 기속하므로, 행정청은 같은 내용으로 새로운 처분을 하거나 그에 관련된 처분을 할 수 없습니다(행정소송법 제23조 제6항, 제30조 제1항). 대법원도 ‘법원이 집행정지 결정을 하였다면 행정청에 의하여 처분이 집행되거나 행정청ㆍ관계 행정청 또는 제3자에 의하여 처분의 실현을 위한 조치가 행하여 져서는 안 되고, 부수적 결과 역시 발생되지 않는다’거나(대법원 2003. 7. 11. 선고 2022다48023 판결),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처분을 사유로 삼아 다른 처분을 할 수는 없다’는 취지로 판시하여(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6두17543 판결), 집행정지 결정의 형성력 및 기속력을 선언하였습니다. 만약 ‘가중할 수 있다’고 해석한다면 집행정지 결정의 형성력 및 기속력은 형해화 됩니다. |
그런데 최근 ‘가중할 수 있다’는 견해를 취한 하급심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23. 3. 9. 선고 2022구합69629 판결 / 항소심에서 원고가 항소를 취하하여 종결됨). 이 사건은 ‘선행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에 대한 원고의 집행정지 신청이 기각되어 처분의 효력이 17일 동안 발생하였다가 항고심에서 집행정지 신청이 인용되어 뒤늦게 처분의 효력이 정지되었고, 이후(선행 처분의 효력이 정지된 상태에서) 행정청(피고)이 선행 처분과 다른 별개의 사유로 후행 입찰참가자격제한처분을 하면서 효력이 정지되어 있던 선행 처분을 가중사유로 삼은 사안’이었습니다. 법원은 ‘선행 처분의 효력이 17일 동안 발생하였다’는 점을 근거로 ‘후행 처분을 할 때 자격제한기간을 가중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아래와 같은 점에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첫째, 집행정지 결정의 형성력 및 기속력에 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으로 효력이 정지된 선행 처분을 후행 처분의 가중사유로 삼는 것은 ‘집행정지 결정을 받은 처분을 사유로 삼아 다른 처분을 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결에 반합니다.
둘째,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 시점에 따라 선행 처분을 후행 처분의 가중사유로 삼을 수도 있고, 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합리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재판부의 사정에 의해 심문기일이 늦게 잡혀 단 하루라도 제재기간이 개시된 이후에 집행정지 결정이 나온 경우’와 ‘그 전에 집행정지 결정이 나온 경우’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위 하급심 판결의 논리대로라면 ‘전자의 경우에는 선행 처분을 후행 처분의 가중사유로 삼을 수 있고, 후자의 경우에는 선행 처분을 후행 처분의 가중사유로 삼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는데, 이러한 결론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선행 처분에 대하여 법원의 집행정지 결정이 내려졌다면 ‘선행 처분의 효력이 잠시라도 발생한 사실이 있는지’와 무관하게 선행 처분을 후행 처분의 가중사유로 삼는 것은 자제해야 합니다. 이것이 국가계약법령의 문언 및 취지에 충실하고, 집행정지 결정의 형성력 및 기속력에 반하지 않는 행정청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