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하여 추진하는 부동산개발사업의 경우, 사업의 지연, 혹은 사업비 추가 조달을 위하여 리파이낸싱(Refinancing)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즉, 새로운 대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여 기존의 대출금을 상환하는 방식으로 대출기한을 연장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리파이낸싱이 일어나면 새로운 대주를 위하여 신탁계약을 다시 체결하거나 기존 신탁계약의 내용을 변경하게 되는데, 이때의 신탁계약이 사해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분쟁이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위와 같이 부동산개발사업 중에 새로운 자금이 조달되면서 담보제공을 위하여 신탁계약이 체결된 경우에 대하여 대법원은 사해성을 부정해 왔습니다. 즉, 채무자가 토지에 집합건물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을 추진하던 중 이미 일부가 분양되었는데도 공정률 45.8%의 상태에서 자금난으로 공사를 계속할 수 없게 되자 건축을 계속 추진하여 건물을 완공하는 것이 이미 분양받은 채권자들을 포함하여 채권자들의 피해를 줄이고 자신도 채무변제력을 회복하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사업을 계속하기 위한 방법으로 신탁업법상의 신탁회사와 사이에 신탁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자금난으로 공사를 계속할 수 없었던 채무자로서는 최대한의 변제력을 확보하는 최선의 방법이었고 또한 공사를 완공하기 위한 부득이한 조치였다고 판단되므로 사해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는 것입니다(대법원 2003. 12. 12. 선고 2001다57884판결).
위 판결 이후 신규 대출에 수반되어 발생하는 부동산 PF 관련 신탁의 사해성은 대부분 부정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이를 조금 달리 보는 듯한 판례가 나왔습니다. 자력 회복을 위한 부득이한 조치로서 신규 대출이 이루어진 경우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기존의 대출금을 상환하는데 전부 혹은 대부분 사용된 경우에는 사해성이 당연히 부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3다83428 판결).
자력회복을 위한 조치였다고 하더라도 신규자금의 융통 없이 단지 기존채무의 이행을 유예하기 위한하여 담보를 제공한 경우에는 사해성이 부정될 수 없다는 판례가 기존에도 있어 왔습니다. 즉, 채무자가 사업의 갱생이나 계속 추진의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신규자금의 융통 없이 단지 기존채무의 이행을 유예받기 위하여 채권자 중 한 사람에게 담보를 제공하는 것은 여전히 사해행위가 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8다29215 판결 등). 위와 같은 판단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대법원은 채무초과 상태에 빠진 채권자의 강제집행 내지 가압류 등 채권회수를 위한 집행보전조치로 발생하는 사업추진상의 어려움은 그러한 조치를 행하는 채권자의 채권액이나 변제기의 도래 여부에 관계없이 동일하게 발생할 수 있는 사정이며, 특정 채권자가 당시로서 채무자에 대하여 채권회수조치에 적극성을 보였다는 사정만으로 채권자들 사이에서 우선적 담보제공의 필요성에 관하여 차별적 평가를 하기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나아가 채무자가 사업활동에서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신규자금의 유입과 기존채무의 이행기의 연장 내지 채권회수조치의 유예는 사업의 갱생이나 계속적 추진을 위하여 가지는 경제적 의미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으므로, 채무자가 사업의 갱생이나 계속적 추진의 의도였다고 하더라도 신규자금의 융통 없이 단지 기존채무의 이행을 유예받기 위하여 자신의 채권자 중 한 사람에게 담보를 제공하는 행위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른 채권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사해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104564).
그런데 이번에 나온 대법원 판결을 보면, 대법원은 자력 회복을 위하여 신규자금이 유입된 경우에도 위와 같은 논리가 적용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판시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 채무초과 상태에 빠진 채무자 및 그의 일반채권자에 대한 관계에서 사업 활동에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신규자금의 유입과 기존채무의 이행기의 연장 내지 채권회수의 유예는 사업의 갱생이나 계속적 추진을 위하여 가지는 경제적 의미가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비록 사업의 갱생이나 계속 추진의 의도에서 이루어진 행위라 하더라도, 기존채무의 이행을 유예받기 위하여 채권자 중 한 사람에게 그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그 채권자를 수익자로 하는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신탁을 원인으로 소유권이전등기를 하는 행위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해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대법원 2009. 3. 12. 선고 2008다29215 판결, 대법원 2010. 4. 29. 선고 2009다104564 판결 등 참조). 이에 비추어 보면, 채무초과 상태인 채무자가 새로운 채권자에게 그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그를 수익자로 하는 신탁계약을 체결하고 자금을 빌려 그 자금의 전부 또는 대부분으로 기존 채무를 변제하는 경우에도, 그 실질은 신규자금의 유입 없이 단지 기존채무의 이행을 유예받기 위하여 특정채권자에게 담보를 제공하거나 담보 목적의 신탁계약을 체결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으므로, 이러한 사정을 참작하여 그 신탁행위의 사해성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3다83428 판결)"
대법원은 형식적으로는 신규자금이 유입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가 결국 기존채무의 이행을 유예받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경우라면, 사해성을 함부로 부정할 수 없다고 판단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판결의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대법원은 신규 자금이 기존채무의 변제에 대부분 사용된 경우 사해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이러한 경우 사해성 판단기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OO개발이 이 사건 신탁계약 당시 채무초과 상태였고, 위 이사회 결의와 같이 위 신규대출 자금의 전부 또는 대부분을 기존채무의 변제에 사용하였다면, 설령 우리개발이 위 골프장 조성사업의 갱생이나 계속적 추진을 위한 의도에서 신규자금을 대출받았다 하더라도, 위 골프장의 조성사업을 위하여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자금이 새로 유입되었다 할 수 없고 실질적으로 이는 위 변제액 상당의 기존채무에 관하여 담보를 제공하고 기한의 유예를 받은 것과 마찬가지에 불과하여, 별다른 사정이 없는 한 이 사건 신탁계약이 원고들을 비롯한 다른 일반 채권자들에 대한 관계에서 공동담보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함을 쉽게 부정할 수 없으므로, (1) 이러한 사정에 불구하고 이 사건 신탁계약의 사해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보기 위해서는, 이 사건 신탁계약 당시 OO개발의 채무초과 여부 및 정도, 기존채무의 내용 및 위 신규자금의 사용처, 기존채무 변제에 의한 기한의 유예가 골프장 조성사업의 갱생이나 계속적 추진에 대하여 기여한 내용 및 실질적인 효과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이러한 사정들을 종합하여 볼 때에 이 사건 신탁계약에 의한 위 신규 대출이 객관적으로 다른 일반 채권자들에 대한 채무 변제력을 높이거나 유지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었다고 인정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와 달리 원심은 위와 같은 사정들에 관하여 충분히 살펴보지 아니한 채, OO개발이 골프장 사업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서는 기존 대출금을 변제함으로써 골프장 사업부지인 이 사건 토지 등에 대한 강제집행을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에 필요한 자금을 한국저축은행 등으로부터 융통하기 위해서는 담보제공 방법으로서 신탁계약을 체결할 필요가 있었다는 사정만을 주된 이유로 들어, 이 사건 신탁계약이 원고들에 대한 관계에서 사해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단정하고 말았다(대법원 2015. 12. 23. 선고 2013다83428 판결)"
위와 같은 사정까지 살핀 경우에만 사해성을 부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후 대법원의 취지에 따라 사건을 다시 심리한 위 사건의 파기환송심은 해당 신탁의 사해성을 또다시 부정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16. 6. 23. 선고 2016나976 판결). 위 사건의 시행사는 사업 추진을 위하여 자금을 조달하면서 이미 기존 대주에게 사업부지의 가치를 초과하는 선순위 담보권(시행사 명의의 수익권에 대한 근질권)을 설정해 준 상태였는데, 기존 대출금을 상환할 신규 대출을 일으키면서 기존의 담보권을 해제하고 새로운 대주에게 우선수익권을 설정해 주었는데,1) 기존 담보권의 피담보채권은 신탁부동산의 가치를 초과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위 사건의 파기 환송심은 위와 같은 사정에 주목하였습니다. 채무자가 처분한 목적물에 담보권이 설정되어 있고, 해당 담보권의 피담보채권액이 목적물의 가격을 초과하고 있을 때에는 해당 목적물의 처분이 사해행위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사해행위의 기본 법리이자 판례의 입장(대법원 2008. 4. 10. 선고 2007다78234판결)입니다. 따라서 위 사건의 경우 다른 사정을 살펴볼 필요도 없이 위와 같은 사정만으로도 사해성은 부정된다는 것입니다.
신규자금이 들어온 경우라고 하더라도 해당 자금이 기존채무의 변제에 대부분 사용된 경우에는 자력 회복을 위한 조치였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히 사해행위가 부정될 수 없다는 최근 대법원의 판결은, 향후 부동산 PF 관련 신탁의 사해성 논란을 더욱 가중시킬 것으로 보입니다. 부동산 개발사업 진행 중에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리파이낸싱은 기존 대출금을 상환하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향후 부동산개발사업 관련 리파이낸싱을 추진할 때에는 위 판례가 언급한 판단기준도 고려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다만, 위 판례는 리파이낸싱이 기존 대출금 상환에 대부분 사용된 경우 사해성이 바로 인정된다고 본 것이 아니라 사해성 판단이 좀 더 면밀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면서 그 기준을 제시하고 있으며, 그러한 판단 요소 중 파기환송심에서 사해성 부정의 근거로 삼은 사정은 즉, 신탁부동산(사업부지)에 설정되어 있던 우선수익권자의 피담보채권액(기존 대출금)이 신탁부동산의 가치를 초과하고 있다는 사정은 대부분의 부동산 PF를 동일하게 갖고 있는 특징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위 판결에도 불구하고 전형적인 부동산 PF 구조에서 발생한 리파이낸싱에 수반하는 신탁의 사해성이 부정되는 사례는 흔치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