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종 변호사
NFT 작품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미술창작자의 추급권(재판매보상청구권; Droit de Suite) 도입에 관한 논의가 다시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이미 EU를 비롯한 전 세계 80여 개국이 인정하고 있는 권리이기도 합니다. 2021. 7. 14.에 발의된 저작권법 전면개정안과 미술진흥법 제정안 에도 이 추급권 관련 조항이 포함되었습니다. 이하에서는, 추급권 도입에 관한 찬성과 반대측 주장이 어떠한지 설명 드리고, NFT 거래를 기화로 한 미술계의 추급권 관련 논의가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NFT 작품 거래와 ‘추급권’ 논란의 재점화
‘추급권’이란 미술 작품이 매매될 때마다 원저작자가 매매가의 일정 부분을 로열티 명목으로 수령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재판매권, 재판매보상청구권, 매매차액배당청구권 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이 ‘추급권’은 국내 저작권법상 인정되지 않는 권리지만, EU를 중심으로 전 세계 약 80여 개국이 법률상 권리로서 인정하고 있기도 합니다. 국내에서도 ‘추급권’ 제도를 도입할 것인지 여부와 관련하여 찬반 논란이 많았으나, 결국 입법화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NFT 작품 거래가 활성화되면서, 미술계에서 ‘추급권(Droit de Suite)’에 관한 논의가 재점화되고 있습니다. NFT 거래의 경우 NFT 민팅(Minting) 과정에서 NFT 작품 재판매 시 원판매자(최초 발행자)에게 지급하는 로열티를 설정할 수 있고, 이러한 설정을 통해 최초 발행자는 재판매 행위에 따른 일정한 수익을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재판매수익 구조가 ‘추급권’과 유사하다며, 미술계 전반으로 관련 논의를 확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 2021. 7. 14. 도종환 의원이 대표발의를 한 “저작권법” 전부개정법률안 및 “미술진흥법” 제정안에도 ‘추급권’ 조항이 포함된 바 있습니다.
2. ‘추급권’ 도입에 관한 찬반론
사실 ‘추급권’은 NFT 작품 거래와는 무관하게 출발된 논의입니다. 찬성론은 주로 형평성에 무게를 두었습니다. 주된 논거는 “1) 미술품은 통상 무명의 작가가 염가에 작품을 판매하는 데서 출발하는데, 해당 작가와 작품이 유명해져 재판매가 이루어지더라도, 정작 창작자가 재판매수익을 전혀 향유하지 못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 2) 음악, 문학, 영상 등은 복제본의 유통을 통한 지속적 수익창출이 가능하나 미술품의 경우 원작의 최초 판매 후 지속적 수익창출이 가능하지 않아 추급권마저 인정하지 않을 경우 매체간 형평에 맞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면 반대론은 거래추적의 곤란 및 거래위축을 그 이유로 들고 있습니다. 추급권을 인정하게 될 경우 “1) 중간 유통 비용이 증가하고, 추급권 행사를 위한 재판매가격 공개 시 거래 익명성을 중시하는 미술품 거래시장의 특성에 비추어 거래가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그 결과 창작의 유인이 감소하게 된다), 2) 익명성이 중시되는 거래기록을 일일이 추적하는 것도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반대론의 주된 논거입니다.
3. NFT 거래 활성화가 ‘추급권’의 도입을 이끌 것인지?
NFT 거래 활성화는 ‘추급권’의 일상적 실현이 기술적으로도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습니다. NFT 마켓플레이스 공간에서 원권리자(최초 발행자)는 ‘추급권’을 행사하고 있고, 거래자들도 이를 자연스러운 거래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추급권’ 논의에 있어서 만큼은 화합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창작의욕 고취’와 ‘거래 활성화’라는 두 가지 가치가 양립 가능할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유의미한 사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장의 흐름이 ‘추급권’의 입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추급권’ 입법론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NFT 작품’과 ‘실물 작품’이 공존할 경우 추급권 행사권자를 누구로 정할 것이며, 그 권리행사 범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 이론을 정립하기 쉽지 않다는 점에 있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익명성을 중시하는 ‘실물 작품’ 거래시장에서, 그 거래이력을 완전히 기록하고 추적할 수 있을지도 여전히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NFT 작품’에 한하여 ‘추급권’을 인정하자니, ‘추급권’ 도입론에 있어 가장 1차적 배려의 대상으로 거론된 ‘실물 작품’ 창작자의 법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더 열악해지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NFT 작품’은 그 디지털 작품 본연의 속성상 복제 내지 2차적저작물 작성을 통한 추가적인 수익창출 기회가 열려 있는데, 굳이 ‘추급권’까지 인정해서 보호해 줄 필요가 있느냐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실물 작품’에 대해서만 ‘추급권’을 입법화하는 것은, 지금의 시장 현실과 너무 동떨어집니다.
‘NFT 작품 거래’라는 새로운 시장 환경이 ‘추급권’ 도입에 관한 입법론을 재차 부각시켰지만, 여전히 해소해야 할 법적 논란과 실무적 과제들이 산재해 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지금의 시장 환경이 미술 창작자들에게도 음악ㆍ영상ㆍ문학 저작권자 못지 않게 디지털 복제를 통한 수익 창출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판매수익’이라는 형태의 새로운 창작유인을 태동시킨 부분도 고무적입니다. ‘추급권’을 계약상 권리에서 법률상의 권리로까지 격상시킬 필요가 있을지는 입법자들이 깊이 고민해야 할 문제지만, 지금의 NFT 시장이 미술계의 긍정적 지각 변동을 예고하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