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승 변호사
지평 디지털혁신팀은 최근 ‘디지털자산 입법 동향 및 전망’, ‘토큰 증권과 가상자산’이라는 주제로 뉴스레터를 보내드린 바 있습니다. 이번 뉴스레터에서는 최근 선고된 가상자산 및 가상자산 거래소와 관련된 판결 중 주목할 만한 민사 하급심 판결들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 가상자산의 가치 평가 기준시기
[사례 1] 원상회복청구의 경우
- (사실관계) A는 30비트코인으로 B가 보유하는 H코인 45만 개를 구매하기로 계약하고 B에게 30비트코인을 지불했습니다. 그러나 B는 약정기일까지 H코인을 인도하지 않았습니다.
- (청구취지) A는 계약을 해제하고 B에게 지급한 30비트코인을 돌려주거나 비트코인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 금전으로 손해배상을 하라고 소를 제기했습니다.
- (판결 요지) “채권자가 본래적 급부청구에 이를 대신할 전보배상을 부가하여 대상청구를 병합하여 소구한 경우, 대상청구는 본래적 급부청구권이 현존함을 전제로 하여 이것이 판결확정 전에 이행불능되거나 또는 판결확정 후에 집행불능이 되는 경우에 대비하여 전보배상을 미리 청구하는 경우로서 양자의 병합은 현재 급부청구와 장래 급부청구의 단순병합에 속하는 것으로 허용되고, 이 경우의 대상금액은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의 본래적 급부의 가격을 기준으로 산정하여야 한다(대법원 1975. 7. 22. 선고 75다450 판결, 대법원 2011. 8. 18. 선고 2011다30666, 30673 판결 등 참조)”라고 판시하면서 사실심(고등법원) 변론종결일 무렵의 비트코인 국내 시가를 기준으로 돈을 지급하라고 판시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0. 8. 20. 선고 2019나2023747 판결).
- (시사점) 가상자산에 대한 원상회복의무가 이행불능인 경우에는 사실심 변론종결 당시 가상자산의 시가를 기준으로 손해배상을 하여야 합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의 시세는 급변할 수도 있으므로 관련 계약과 소송에서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사례 2]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
- (사실관계) 원고는 피고로부터 C라는 가상화폐 ICO에 참여하여 투자하라는 말을 듣고 2018. 1. 27. 피고에게 이더리움 120개를 보내주었는데, 피고가 원고로부터 받은 이더리움을 위 ICO에 투자하지 아니하고 임의로 사용하였습니다.
- (청구취지) 원고는 피고에게 금 17억 7천여만 원 및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하라는 손해배상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 (판결 요지) 불법행위로 인한 재산상 손해는 위법한 가해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재산상 불이익, 즉, 그 위법행위가 없었더라면 존재하였을 재산상태와 그 위법행위가 가해진 현재의 재산상태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고(대법원 1992. 6. 23. 선고 91다33070 전원합의체 판결 등), 그 손해액은 원칙적으로 불법행위 시를 기준으로 산정하여야 하며,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는 금전으로 배상함이 원칙이므로, 불법행위 시점인 2018. 1. 27. 당시의 이더리움 가액(1ETH=1,201,000원)을 기준으로 하여 144,120,000원(1,201,000원X120개) 및 이에 대한 지연손해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는 판결이 선고되었습니다[서울중앙지법 2019. 1. 11. 선고 2018가단5102259 판결(확정)].
- (시사점) 원상회복청구를 하는 경우와 달리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의 경우에는 사실심 변론종결 시의 가상자산 시가가 아니라 불법행위 당시의 가상자산 시가가 손해배상액의 산정 기준이 됩니다.
2. 가상자산 대여계약과 이자제한법 및 대부업법상 제한 최고 이자율 적용 여부
- (사실관계) 원고는 2020. 10. 13. 피고에게 가상자산 비트코인 30개를 대여하고, ‘위 차용금(비트코인)의 이자는 가상자산 대여 원금에 대하여 월 5%(나중에 변제기를 연장하면서 월 10%로 상향함)에 해당하는 1.5 비트코인을 이자로 매월 변제’하기로 하는 내용의 가상자산 대여 계약을 체결하고, 같은 날 피고에게 비트코인 30개를 지급하였습니다. 피고는 이 사건 계약의 변제기가 도래하였으나 비트코인을 갚지 못했습니다.
- (청구취지) 원고는 피고에게 비트코인 30개 및 이에 대해 변제기 이후부터 완제일까지 연 10%의 비율로 계산한 비트코인을 인도하고, 강제집행이 불능일 경우 1비트코인당 26,548,000원의 비율로 환산한 돈을 지급하라고 가상자산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 (쟁점 및 판결요지) 피고는 원고에게 이 사건 계약에 따라 월 1.5개의 비트코인을 이자로 지급하였는데 이를 돈으로 환산해 보면 이자제한법 및 대부업법에 따른 최고이자율(현재 연 20%)을 초과한 것이므로, 비트코인으로 지급된 이자는 원본을 변제하거나 원본 채무와 상계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은 금전대차 및 금전의 대부에 관한 최고이자율을 제한하는 것인데, 이 사건 계약의 목적물은 금전이 아니라 가상자산 비트코인이므로,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라고 판시하며 피고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10. 6. 선고 2021가합538409 판결). - (시사점) 가상자산 대여계약에서 이자를 가상자산으로 받기로 한 경우 이자제한법과 대부업법에서 정한 최고이자율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가상자산 대여계약을 할 때는 이자지급 방식을 정함에 있어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3. 가상자산거래소와 이용자의 계약관계
- (사실관계) 원고는 2017. 10.경부터 피고가 운영하는 암호화폐 C거래소에 접속하여 암호화폐 거래를 하였는데, 2018. 6.경 해킹으로 인하여 C거래소를 통해 거래가 이루어지던 암호화폐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였습니다. 원고는 사고 당시 C거래소를 통해 0.22467686 비트코인을 보유 중이었으나 사고로 인하여 이 사건 비트코인이 유출되는 피해를 입었고, C거래소는 2020. 12. 원고를 비롯한 거래소 회원들에게 이 사건 사고에 대해 사과하면서 미복구 암호화폐에 대해서는 복구 완료 시까지 출금 및 거래가 불가능하나 서비스 운영을 통해 발생한 이익으로 암호화폐를 단계적으로 매입하여 갚아 나갈 예정임을 공지하였습니다만, 미복구 상태가 계속되었습니다.
- (청구취지) 원고는 피고에게 위 비트코인을 원고가 지정한 비트코인 입금주소로 인도하고, 강제집행이 불능일 경우 1비트코인당 5,030만 원의 비율로 환산한 돈을 지급하라는 암호화폐 인도청구의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 (쟁점 및 판결요지) 피고는 이 사건 사고발생에 아무런 귀책사유가 없으므로 약관에서 정한 손해배상책임이나 채무불이행에 기한 손해배상책임 등을 부담하지 않고,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보관하던 비트코인의 점유를 상실하였으므로 이 사건 비트코인의 인도의무는 이행불능에 이르러 소멸하였다고 주장하였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은 국가에 의해 통제받지 않고 블록체인 등 암호화된 분산원장에 의하여 부여된 경제적인 가치가 디지털로 표상된 정보로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할 뿐(대법원 2021. 12. 16. 선고 2020도9789 판결 참조), 유체물이나 물질성을 지닌 동력이 아니어서 현행법상 물건으로 볼 수는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원ㆍ피고 사이에 형성된 이 사건 비트코인의 보관과 관련한 법률관계는 물건의 보관을 전제로 한 민법상의 임치계약으로 볼 수는 없지만 이와 유사한 성질을 갖는 비전형계약에 해당한다 할 것이므로, 피고는 이 사건 비트코인의 반환을 요구하는 원고에게 이를 인도할 의무가 있”고, “비트코인은 경제적 가치를 지닌 디지털정보로서 재산상 이익에 해당할 뿐 그 자체에 고유한 값이나 번호가 부여되어 있지 않아 각각의 개성이 문제되지는 않는 점…(중략)… 등을 고려할 때, 이 사건 비트코인 인도의무의 이행은 원고가 이 사건 거래소에 보관하던 비트코인과 동종ㆍ동질ㆍ동량의 것을 반환하면 충분하므로, 피고가 이 사건 사고로 인하여 원고가 보관하던 비트코인에 대한 점유를 상실하였다고 하여 위 의무가 이행불능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다”라고 판단하면서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습니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4. 14. 선고 2021가단5068564 판결(확정)]. - (시사점) 가상자산은 민법상 물건으로 볼 수 없지만 경제적 가치가 있는 재산상 이익이므로 이를 위탁하고 보관하는 가상자산거래소와 이용자의 관계는 유상임치계약에 유사한 비전형계약으로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가상자산 거래소는 가상자산을 보관할 때 선량한 관리자의 의무(선관의무)를 다해야 하고, 만약 거래소의 귀책사유로 가상자산이 도난당하였다면 거래소는 계약상 임치물(가상자산)반환의무를 부담하며, 가상자산 반환채무는 특정물 반환채무가 아닌 종류물 반환채무이므로 동질, 동종, 동량의 가상자산을 반환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4. 가상자산 거래소의 해킹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
- (사실관계) 원고는 피고 거래소 계정에 약 5억 원 상당의 원화 포인트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해커로 추정되는 사람이 원고의 계정에 접속해 원고의 포인트로 이더리움을 사들인 다음 이더리움을 외부로 빼돌렸습니다. 해커는 원고의 아이디와 비밀번호, 4자리의 보안비밀번호를 정확히 입력하였고, 미리 등록된 원고의 휴대폰으로 인증번호까지 발급받아 출금 요청을 하였으며, 피고 직원은 업무규정대로 암호화폐가 출금될 출금주소가 과거 범죄 또는 비정상거래에 사용된 적이 없다는 것 등을 확인한 후에 수동으로 승인하는 절차도 거쳤습니다.
다만, 해커는 원고가 평소 사용하는 아이피 주소가 아닌 다른 아이피 주소로 2회에 걸쳐 원고 계정에 로그인을 하였고, 피고 거래소는 이 사건이 있기 전에 해킹사고로 인해 약 5천 개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적이 있었으나 원고의 개인정보가 유출되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청구취지) 원고는 탈취당한 원화 포인트를 원상회복하거나(주위적 청구), 채무불이행 또는 전자금융거래법 규정에 기해 그에 해당하는 약 5억 원의 손해를 배상하라(예비적 청구)는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 (판결 요지) 이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주위적 청구에 대하여, 해커에 대한 피고가 해커의 이더리움 출금을 승인한 행위가 선의(준점유자에게 변제수령권한이 있다고 적극적으로 믿는 것), 무과실(그렇게 믿은 데에 과실이 없는 것)인 사실이 인정되므로 민법 제470조 소정의 ‘채권의 준점유자에 대한 변제’의 효력이 인정되고, 따라서 피고의 원고에 대한 원화포인트 현금 전환 및 출금의무는 소멸하였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리고 예비적 청구 중 1)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는, 암호화폐 또는 원화포인트 보관과 관련된 피고의 선관주의의무위반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거나, 그러한 의무위반과 이 사건 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단정하기 어렵고, 2) 전자금융거래법 규정을 근거로 한 손해배상청구에 대해서는, 전자금융거래법에서 정한 사고(접근매체 위변조로 발생한 사고, 거래지시의 전자적 전송이나 처리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등)가 발생하여 이용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는 원칙적으로 과실이 없어도 이용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면책사유가 있음을 입증해야 책임을 면할 수 있는데(전자금융거래법 제9조 제1항, 제2항), 가상자산을 위 법상 전자화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고 피고를 금융회사나 전자금융업자로 볼 수 없는 점 등을 근거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서울고등법원 2020. 9. 10. 선고 2019나2004142 판결(확정)]. - (시사점) 이 판결은 앞선 서울중앙지방법원 2022. 4. 14. 선고 2021가단5068564 판결(확정)과 달리 거래소 시스템 자체에 대한 해킹이 아닌 원고(거래소 이용자)의 아이디 등 이용자의 관리영역에서 발생한 해킹으로 인한 손해에 관한 사건으로서 사실관계가 다릅니다. 가상자산 거래소가 이용자의 관리영역에서 발생한 해킹에 대해 책임이 있거나(이 사건 이전에 개인정보유출사건이 있었지만 원고의 정보가 유출되었다는 증거가 없으므로 이 사건 해킹에 책임이 없다고 보았습니다), 접속자의 인적사항 확인에 있어 과실이 있지 않는 한(본 사안에서 해커가 원고가 주로 사용하는 아이피 주소가 아닌 주소로 접속한 사실이 인정되지만, 스마트폰 등은 접속 위치나 시간에 따라 아이피 주소가 변경될 수 있는 것이 현실이므로 피고가 이런 접속을 막지 않았다고 해 선관주의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보았습니다) 거래소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이 판결에서는 또한 가상자산 거래소에 전자금융거래법상 전자금융업자 등에게 적용되는 무과실 손해배상책임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았으나, 이와 반대로 위 규정을 유추적용할 수 있다는 하급심 판결도 있어 추후 대법원 판결이 주목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