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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PYONG 법무법인[유] 지평

법률정보|칼럼
[건설 · 부동산] 건설부동산 법률자문의 어려움
2014.07.22
법률질의를 받으면 변호사는 먼저 판례를 찾습니다.  질의와 유사한 사실관계와 쟁점을 다루고 있는 판례를 찾으면 일단 안심이 됩니다.  하지만 실제 법률업무에서 치열하게 다투어지는 쟁점에 관해서는 판례의 도움을 기대하기 쉽지 않습니다.  건설부동산 업무에서는 특히 그렇습니다.
 
우선 쟁점의 성격이나 분쟁 당사자의 역학관계를 고려할 때 판례 자체가 만들어지기 힘든 사정이 많습니다.  건설부동산 분야, 특히 부동산개발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인ㆍ허가와 관련하여 발생하는데 이 문제에 관해 인ㆍ허가기관과 각을 세우며 대립하는 일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법률이나 논리에 의거할 때 사업자 쪽 의견이 합리적인데도 관할 관청이 비법률적인 사유(민원 등)로 인ㆍ허가를 거부해 버리면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 입장이 옳다고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에서 승소할 수는 있겠지만, 앞으로 후속 인ㆍ허가 문제를 협의해야 하는 관청을 어려운 처지로 몰아넣는 것은 사업자가 택할 수 있는 합리적 대응방안이 아닌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적당한 선에서 양보하고 타협해 사업을 이끌어 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때문에 실무상 상당히 중요한 쟁점인데도 판례 자체가 전혀 없는 쟁점들이 적지 않습니다.
 
다음으로 재판 절차의 속성상 최종 결론이 날 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판례가 현실적인 문제 해결의 지침으로 작용하지 못하는 한계도 있습니다.  특히 대법원 판례의 경우 현실에서는 이미 문제가 정리되거나 어떻게든 봉합된 시점에야 나오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정비구역이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추진위원회 승인이 이루어지고 이에 기초해 조합설립인가가 이루어졌을 때 조합설립인가에 하자가 있는지에 관해 2006년 무렵부터 상당한 다툼이 있었습니다.  당시 하급심에서는 추진위원회가 설립승인을 얻으려면 정비구역 내 토지등소유자 과반수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제13조 제2항), 아직 정비구역이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비구역 내 토지등소유자”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할 수 없으므로 추진위원회 설립승인은 법률상 무효이고, 이러한 무효의 하자는 후행처분인 조합설립인가처분에 승계된다는 판시가 잇따랐습니다.  이러한 판결은 시장에 상당한 혼란을 주었고 정비사업의 안정적 시행에 상당한 장애가 되었습니다.  서울만 하더라도 정비예정구역이 지정되면 추진위원회 설립승인을 해주는 것이 실무 입장이었기 때문입니다.  2009년 10월 대법원이 정비구역이 지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루어진 추진위원회 승인은 무효라고 판시하면서(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두12297 판결), 혼란은 가중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원주시에서 진행된 정비사업에 관한 것인데, 한 쪽에서는 이 판결로써 정비구역 지정 전의 추진위원회 승인은 모두 무효라는 결론이 내려졌다고 해석했고, 다른 쪽에서는 정비기본계획수립의무가 없는(그 때문에 정비예정구역이 지정되지 않는) 원주시에서 발생한 사안이므로 정비예정구역이 지정된 후 추진위원회 승인이 이루어지는 일반적 사안에는 적용될 수 없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했습니다.  이 논란은 거의 1년 후인 2010년 9월 대법원이 정비기본계획이 수립되고 예정구역과 정비구역의 차이가 없을 경우 설립승인 유효하다고 판시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었습니다(대법원 2010. 9. 30. 선고 2010두9358 판결).  그러나 이 판결이 모든 문제를 정리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정비구역이 지정될 때 예정구역과 차이가 어느 정도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여전히 추진위원회 설립승인이 적법한지가 계속 다투어진 것입니다.  실무상으로는 그 차이가 크지 않으면 하자가 없다는 쪽으로 정리되었지만 재정비촉진구역 지정으로 인해 기존 정비예정구역 또는 정비구역이 여러 개 통합될 때의 사안에 대해서는 명확한 지침을 줄 수 없었습니다.  이 문제는 작년 9월 대법원이 추진위원회 승인을 얻은 예정구역을 중심으로 재정비촉진구역지정에 따라 추가된 지역에 대하여 추진위원회 변경승인 절차를 밟으면 된다고 판시함으로써 비로소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대법원 2013. 9. 12. 선고 2011두31284 판결).  또한 대법원은 최근 추진위원회 설립승인의 하자가 존재하더라도 조합설립인가의 하자로 승계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판시함으로써(대법원 2013. 12. 26. 선고 2011두8291 판결 등), 추진위원회 단계의 하자 때문에 조합설립 이후까지 사업시행에 장애가 생기는 일을 최소화했습니다.  실제 문제가 발생한 다음 법원의 판결로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8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몇몇 사업장들은 갈등이 격화돼 사업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다가는 분쟁해결을 위한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건설부동산 자문에서는 중앙행정기관의 유권해석, 특히 법제처의 유권해석이 법원 판결보다 실제로는 더 큰 위력을 갖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권해석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막연한 내용이 많아 유효한 문제해결 지침을 제시하지 못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또한 법원 판결절차와 달리 이해관계인이 해석이 내려지는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해당 분야의 실천적 고민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설익은 해석이 나오는 일도 생깁니다.  따라서 우리 쪽 입장에 관해 치밀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섣불리 유권해석을 얻으려다가 오히려 발목을 잡히는 수도 있습니다.
 
결국 적절한 법률자문을 위해서는 유사한 문제 상황과 사실관계에 대해 과거 법원 등이 내린 판례 등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직 판결이나 확립된 유권해석이 부존재하는 사안에 대해 당사자에게 최선이 될 수 있는 법률상 조언을 해 주어야 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또한 당면한 문제해결을 위해 바로 그 문제 자체에 특유한 사실관계에 기초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려는 노력이 긴요합니다.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가 요구됩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다른 법조 직역보다 먼저 그리고 보다 문제에 접근해 실천해야 하는 것이 변호사의 소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