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는 1996년 12월경 부동산신탁회사인 피고에게 원고 소유의 대전 서구 소재 토지를 신탁하고, 피고는 위 토지에 근린생활시설 및 오피스텔을 건축하고 그 토지와 건물을 신탁재산으로 하여 이를 분양한 후 수익을 정산하기로 하는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이하, 이로 인한 토지개발사업을 '대전토지신탁사업'). 그리고 원고는 2000년 12월경 원고 소유의 용인시 토지에 관하여도 피고가 토지를 신탁받아 아파트를 건축하여 분양하는 분양형 토지신탁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이하, 이로 인한 토지개발사업을 '용인토지신탁사업')
용인토지신탁사업은 2007년 6월경 상당한 이익을 내면서 마무리되었습니다. 하지만 대전토지신탁사업은 IMF 외환위기로 공사에 차질을 빚게 되는 등 비용이 증가하고 분양도 원활하지 않아 미분양 물량을 공매로 처분하게 되면서 2005년경 결국 391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피고는 원고에게 대전토지신탁사업에서 발생한 손실액에 대한 비용상환청구를 하였으나 원고는 이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피고는 원고에게, 용인토지신탁사업에서 발생한 원고에 대한 수익금지급채무와 대전토지신탁사건에서의 발생한 원고에 대한 비용상환청구채권을 대등액에서 상계한다는 의사를 통지하였습니다.
원고는 피고를 상대로, 용인토지신탁사업에서의 수익금 지급을 구하는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2. 사건의 쟁점
관련된 구 신탁법(2011. 7. 25. 법률 제10924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규정은 다음과 같습니다.⑴
제42조(수탁자의 비용, 손해보상청구권)
① 수탁자는 신탁재산에 관하여 부담한 조세, 공과 기타의 비용과 이자 또는 신탁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자기에게 과실 없이 받은 손해의 보상을 받음에 있어서 신탁재산을 매각하여 다른 권리자에 우선하여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② 수탁자는 수익자에게 전항의 비용 또는 손해의 보상을 청구하거나 상당한 담보를 제공하게 할 수 있다. 단, 수익자가 특정되어 있지 아니하거나 존재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예외로 한다. ③ 전항의 규정은 수익자가 그 권리를 포기한 경우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제51조(수익자의 이익향수)
③ 수익자는 수익권을 포기할 수 있다. |
원고가 구 신탁법 제51조 제3항에 근거하여 대전토지신탁사업의 수익권을 포기할 경우, 피고는 구 신탁법 제42조 제3항, 제2항에 따라 대전토지신탁사업에서 신탁재산에 관하여 발생한 비용 및 과실 없이 받은 손해를 원고에게 청구할 수 없게 되는지가 사건의 핵심쟁점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에서 원고는 피고에 대한 위탁자이자 수익자의 지위에 있으므로('자익신탁'), 자익신탁에 있어서도 위탁자이자 수익자인 자가 수익권 포기로써 비용상환의무를 면할 수 있는지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3. 원심과 대법원의 판단
가. 원심(서울고등법원 2012. 2. 2. 선고 2010나83835 판결)의 판단
(1) 자익신탁에서도 수익권 포기 가능
원심은 현행법상 자익신탁의 경우 수익권 포기를 제한하는 취지의 규정이 없고, 자익신탁의 경우 수익권 포기를 금지한다면 수탁자의 위탁자에 대한 비용상환청구권을 규정하지 않은 신탁법의 취지에 반한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수익자는 당해 신탁계약이 자익신탁인지 타익신탁인지에 관계없이 수익자로서의 권리를 포기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2) 수익권 포기의 소급효 : 신의칙에 따라 제한 가능
다만 원심은 이 사건에서 원고가 피고의 최종수지계산서를 받은 후에도 수익권 포기의 의사표시를 하지 않다가 피고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패소하자 그제서야 수익권 포기를 한 것은 신의칙이나 금반언의 원칙에 반한다고 보이므로, 원고의 수익권 포기가 가능하더라도 수익권 포기의 소급효는 제한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3) 비용상환의 범위 : 신의칙과 손해분담의 관점에서 책임제한 가능
한편, 원심은 수탁자가 부동산신탁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로서 보수를 지급받기로 한 후 전문지식에 기초한 재량을 갖고 신탁사업을 수행하다가 당사자들이 예측하지 못한 경제상황의 변화로 신탁사업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신탁계약이 중도에 종료되고 이로 인하여 위탁자는 막대한 신탁비용채무를 부담하는 손실을 입게 된 사정이 인정된다면, 수탁자의 과실과 함께 이러한 사정까지도 고려하여 신의칙과 손해의 분담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한도로 수탁자의 비용상환청구권의 행사를 제한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나. 대법원의 판단
원고의 비용상환의무를 인정하는 결론은 대법원의 판단도 원심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대법원은 원심과 달리, 신의칙이나 형평의 원칙을 거론하지 않고 자익신탁의 경우 위탁자가 수익권을 포기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비용상환의무를 면할 수 없다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은 수익권 포기를 인정하는 취지에 비추어, 자익신탁의 위탁자에게는 수익권 포기를 통해 비용상환의무를 면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 부분 판시를 그대로 옮기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 신탁법(2011. 7. 25. 법률 제10924호로 전부 개정되기 전의 것, 이하 같다) 제51조 제3항이 수익권의 포기를 인정하는 취지는, 수익자는 구 신탁법 제42조 제2항에 따라 비용상환의무를 지게 되므로 수익자가 자기의 의사에 반하여 수익권을 취득할 것을 강제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데에 있다. 따라서 신탁계약상 위탁자가 스스로 수익자가 되는 이른바 자익신탁의 경우, 위탁자 겸 수익자는 스스로 신탁관계를 형성하고 신탁설정 단계에서 스스로를 수익자로 지정함으로써 그로부터 이익을 수취하려는 자이므로, 신탁의 결과 발생하는 이익뿐만 아니라 손실도 부담하도록 해야 하고, 수익권 포기를 통해 비용상환의무를 면하도록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자익신탁에서 위탁자 겸 수익자는 수익권을 포기하더라도 이미 발생한 비용상환의무를 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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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심의 법리에 따르면 신의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면 자익신탁의 위탁자가 수익권 포기로서 비용상환의무를 면할 수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으나, 대법원의 법리는 별다른 예외를 인정하고 있지 않다는 데 차이가 있습니다.
한편 대법원도 신의칙과 손해분담의 관점에서 수탁자의 비용상환청구권 행사의 범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하여는 원심과 견해를 같이하였습니다.
4. 시사점
위탁자가 토지를 신탁하고, 수탁자가 스스로의 비용으로 신탁된 토지 위에 건물을 지어 분양하는 부동산개발신탁은 신탁원본을 초과하는 손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고수익형 사업입니다. 위 판결은 위와 같은 사업에서 손실이 발생하였을 때 그 최종적인 손실부담의 주체를 수탁자가 아니라, 위탁자 겸 수익자로 판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 대법원이 위와 같이 판단하는 만큼, 위탁자 겸 수익자가 부동산개발신탁의 손실부담책임을 일부나마 면하기 위해서는 수탁자의 사업진행과정에서의 과실을 밝혀내는 것이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위탁자 겸 수익자로서는 부동산을 신탁하였다 하여 수탁자에게만 개발사업을 그대로 맡겨 둘 것이 아니라, 사업의 진행경과 및 수탁자의 사업상 판단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5. 다운로드 : 대법원 2016. 3. 10. 선고 2012다25616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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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신탁법 제42조 제2, 3항은 개정 신탁법 제26조 제4항으로, 구 신탁법 제51조 제3항은 개정 신탁법 제57조로 실질적인 내용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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