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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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비슷한 듯 다른 것이 많은 나라 중국.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 기업들의 활동과 개발사업이 왕성한 나라. 이것이 짧지 않은 기간 연수를 위해 찾아온 중국에 대한 첫인상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친해진 중국 친구들이 나와 같은 변호사직에 대해 가지고 있는 전혀 다른 인식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교양학을 강의하는 N교수는 자신의 자녀에게 변호사직을 선택하게 하는 것이 어떠냐는 권유에 흔쾌히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한국이나 서구 선진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현재 중국 변호사는 정치지위가 높지 못하고 사회이미지가 좋지 못하며 집단의식이 강하지 못하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지만 변호사의 법적 지위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2008.8. 최송자)."

한국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한 중국변호사의 언급입니다. 중국 사람들에게 변호사에 대한 인식은 왜 이리 부정적인 것일까요? 아마도 1949년 신 중국 성립 이후 거의 30년간 제대로 된 변호사제도가 존재하지 않았던 역사적 경험에 따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중국에서의 변호사제도에 대해 확인해보겠습니다.


1. 중국 변호사 제도의 변천

국민당의 중화민국 치세에서도 서구적인 3권분립 원칙에 따른 권력분립제도와 사법제도가 채택되었으므로 그에 따른 한 축으로서 변호사제도도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것이 1949년 신 중국이 성립하면서 서구 민주주의와는 전혀 다른 사회주의 헌법체제를 추구하면서 변호사제도에도 큰 변화가 오게 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서구식의 변호사제도는 인정되지 아니하였고, 단지 형사피고인을 위한 변호활동을 주된 업무로 하는 국가공무원으로서의 "공소변호인"이 인정되었습니다(1954년). 그리고 1969년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변호사는 반사회주의적인 자본주의 잔재의 하나로 인식되면서 그나마 제한적으로 역할이 인정되던 공소변호인 제도마저 폐지되어 중국에서 변호사는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10여년에 걸친 문화혁명의 소용돌이가 끝나고 1979년 개혁개방이 시작되고 그에 따라 새로이 국가의 체제를 정비하게 됩니다. 그 일환으로 형사소송법이 제정되고 여기에 다시 형사피고인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업무가 법에 규정되면서 이를 위한 변호사의 권리와 절차에 대하여 정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다시 종전의 공소변호인과 유사한 변호사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1980년 변호사법의 모태가 되는 "변호사임시조례"를 제정하여(1982. 1. 1.부터 시행) 변호사제도를 공식적으로 도입하였고, 1986년부터는 국가공무원으로 규정하였던 변호사의 신분제한을 해제하여 민간인으로서 변호사사무소의 개설을 허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다시 10년이 지난 1996년 변호사법을 제정하여 "변호사는 사회를 위하여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로 규정하여 다양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으로 인정하였다가 2007년에는 "관련법에 따라 변호사업종사자격을 취득한 후 의뢰인을 위하여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직업인"으로 개정하여 현대적 의미에서의 변호사제도를 인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처럼 신 중국에서의 변호사는 당초 형사피고인을 위한 변호업무를 행하는 국가공무원이라는 협소한 지위에서 시작하였다가 30년간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점차 그 업무범위와 신분적인 제한을 벗어나게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중국에서의 변호사 자격취득(변호사법 6, 7조)

중국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매년 9월 한번 실시되는 전국통일사법고시에 합격해야 합니다. 중국변호사자격을 얻기 위한 사법시험은 1986년부터 시행되었는데, 그 전에는 "변호사자격특별인가제도"를 통해 각 성급(省級) 사법부서가 심사를 통해 일정한 학력과 법률지식을 구비한 자에게 변호사자격을 부여하여 형사피고인에 대한 변호업무를 수행하게 하였습니다. 이처럼 시험을 거치지 않고 변호사자격을 얻은 사람의 수가 약 10,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그러다가 1986년 중국 사법부가 주관하는 전국적인 변호사자격시험이 처음으로 시행되었고, 1995년에는 이와 별도로 법관과 검찰관을 선발하는 시험이 신설되었습니다. 당시에는 변호사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과 법관 또는 검찰관시험의 응시자격이 서로 달랐고, 시험방식도 달랐습니다. 그러던 것이 2002년 법관과 검찰관선발을 위한 시험이 폐지되고 변호사법에 따라 전국통일사법고시로 통합되어 법조인의 자격시험이 통일되었습니다. 하지만 법관이나 검찰관이 되기 위에서는 여전히 사법고시를 통과한 후 별도의 시험을 거쳐야 합니다.

한편, 중국변호사법은 일반변호사가 취급하기 어려운 특수한 영역에서는 일정한 자격과 경험을 갖춘 자에게 변호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변호사개업특별허가제도(변호사법 제8조)"가 시행하여 변호사서비스 수요의 부족 부분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중국에서 변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단지 사법고시에 합격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 성급 사법부서의 심사를 거쳐 "변호사업종사자격"을 취득해야 합니다. 사법고시합격을 통해 변호사자격을 취득하는 것은 변호사로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적인 전제조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다시 심사를 거쳐 업무수행자격을 인정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사법고시에 합격한 사람에게는 변호사업에 종사할 수 있는 자격을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3. 중국의 사법고시

중국 변호사자격을 얻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전국통일사법고시"는 매년 9월 중에 2일에 걸쳐 객관식과 단문형 주관식으로 실시됩니다. 매년 전국적으로 약 35~40만 명이 응시하여 평균 60점 이상(600점 만점에 360점 이상)의 점수를 획득하면 합격하는데, 합격률은 처음 실시된 2002년 약 6.6%였다가 점차 높아져 2005년에는 약 14.4%에 달하였고, 그 후에는 평균 10% 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2009년에는 전국적으로 약 41만 여명이 등록하였다가 실제로는 35만 여명이 응시하여 그 중 3만 6,000여명이 합격하였다고 합니다.

한편 변호사가 상대적으로 적은 지방 중소도시 및 농촌지역의 응시자의 경우, 변호사자격취득을 좀더 쉽게 하기 위해 335점 이상 획득하면 합격한 것으로 인정하여 법률서비스가 취약한 지방의 사정을 배려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처럼 특혜를 입어 합격한 변호사는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지역이 제한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소수민족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비교적 규모가 큰 소수민족은 자신의 언어로도 사법고시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2003년 사법고시의 경우 장족, 몽골족, 그리고 조선족언어(한글) 등 일부 소수민족 문자로 시험문제가 번역되어 출제되었고, 또한 이들 소수민족의 문자로 답안작성도 가능하였습니다. 그런데 2006년부터는 조선족언어(한글)가 제외되었고 대신 장족, 몽골족, 위구르족, 카자흐족 등 4개 소수민족 언어로만 시험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우리 조선족동포들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인식이 변화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운 부분입니다.

중국 변호사가 되기 위해서는 중국 국적이 있어야 합니다. 사법고시를 보기 위한 첫째 조건이 바로 중국국적을 가진 중국인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1국가 2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 정부는 2004년부터 홍콩과 마카오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사법고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실제 홍콩국적(?)을 가진 사람들 일부가 사법고시에 통과하여 중국변호사로서 활동하고 있기도 합니다. 중국 국무원은 2008. 4. 15. 대만인들도 중국 사법고시에 응시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 대만정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4. 중국 변호사 현황

1979년 변호사임시조례가 제정되었을 당시 변호사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불과 수백 명에 불과했고, 변호사는 국가기관의 일종인 "법률고문처"에 소속된 공무원이었습니다. 이후 변호사법이 제정되어 변호사의 신분이 민간인으로 해방(?)되면서 1992년 최초의 민간변호사사무소가 개설되었고, 북경과 상해 등 개방된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점차 합작변호사사무소 또는 공동법률사무소가 늘어났습니다.

2006년 현재 전중국에 약 15만여 명의 변호사가 배출되어 평균적으로 중국 인구 1만 명당 한 명의 변호사가 있을 정도로 그 수가 확장되었고, 변호사사무소도 전국적으로 13,000여 개가 넘습니다. 변호사들이 많이 있는 북경(1,300명당 1명)과 상해(1,800명당 1명)에는 거의 서구 선진국 수준의 변호사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변호사의 숫자가 대도시와 중소도시에 따라 편차가 큰 것처럼, 변호사들의 소득 역시 편차가 커서 북경이나 상해소재 사무소에 근무하는 변호사들의 경우, 1년 수입이 25~30만 위안에 달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지방 중소도시 또는 농촌지역의 경우 연간 수입이 1만 위안이 안 되는 곳도 있다고 합니다.

5. 변호사 업무의 현황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중국에서 변호사의 업무는 주로 형사피고인을 위한 변호업무를 담당하였다가 점차 민사 및 상사업무로 확대된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개혁개방정책에 따라 사기업들의 경제활동이 왕성하게 되고 외국기업들의 투자가 활성화되면서 기업자문 및 금융, M&A 등과 관련한 업무가 크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2006년 통계자료에 의하면, 소송업무보다 법률자문 및 소송과 관련이 없는 업무의 양이 훨씬 많은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소송 180여 만건, 자문 520여 만건).

중국의 법률서비스가 주로 외국기업의 투자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현재 중국에 진출한 외국법률사무소의 수효를 보면 분명해집니다. 2007년 8월말 현재 전세계 19개 국가 또는 지역의 168개 법률사무소가 중국에 진출하여 중국 각지에 215개의 대표처를 설립해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특히 홍콩과 마카오는 중국 법률서비스시장에 우선권을 가지고 있어 2004년부터 사법고시 응시자격이 부여되어 지금까지 24명의 홍콩인이 중국 변호사자격증을 취득하였고 그 중 4명은 실제로 중국 변호사사무소에서 변호사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또 5개의 홍콩 변호사사무소가 중국 본토의 변호사사무소와 연합경영계약을 체결하여 공동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면서

중국에서의 변호사제도의 변천을 살펴보면 우리나라의 변호사제도의 추세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는 형사피고인에 대한 변호업무와 민사소송 등이 변호사들의 주된 업무였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경제개방이 가속화되어 외국기업의 국내투자가 활성화되면서 금융, 회사, M&A 등과 관련한 법률서비스수요가 크게 늘어나 법원이나 검찰에 진출하지 않고 곧바로 특정영역의 전문지식을 갖추고 업무를 수행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늘어나면서 변호사와 그 업무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우리기업들의 해외진출이 확대되면서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에서의 변호사들의 역할 또한 이와 비슷하게 변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아직은 대형화, 전문화되지 못한 개인변호사사무소 또는 합동법률사무소에서의 업무로 인하여 사회적인 인식이나 대우가 좋지 못한 것이 사실이겠지만,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세계 제1의 수출강국으로서의 중국의 위상을 고려하면, 중국은 변호사들에게도 새로이 열리는 블루오션인 셈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변호사의 역할과 중요성 또한 커질 것이 분명합니다. 이처럼 변호사 역할이 증대되고 사회적 공헌이 인정되면 변호사제도에 대한 중국 사람들의 인식도 지금과는 전혀 다르게 변할 것입니다.

그러면 N교수도 자녀에게 변호사가 되도록 권유해 보라는 까닭을 알게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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