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지평지성 제5회 뉴스레터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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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대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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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최고법원과 대법원

대한민국의 법원조직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요? 대한민국은 1개의 대법원, 5개의 고등법원, 18개의 지방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서울가정법원을 두고 있습니다. 그 중 가장 정점에 있는 최고법원은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대법원입니다. 그러면 다른 나라들의 법원조직은 어떠할까요? 미국과 독일의 최고법원이 각 연방대법원이라는 사실은 아시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정치, 사법제도가 먼저 시작되고 발달된 영국(엄밀히 말하면 잉글랜드와 웨일즈임.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는 독립된 사법제도를 가지고 있음)은 어떨까요? 영국에는 현재 대법원이 있을까요?

영국은 2005년 헌정개혁법(The Constitutional Reform Act 2005)이 통과되면서 올해인 2009년 10월이 되어서야 의회권력과 구별되는 독립적인 대법원을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면 영국은 지금까지 대법원이 없었단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영국은 의회권력과 독립된 대법원을 따로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영국 최고법원의 역할은 상원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럼 영국은 현재까지 어떤 사법조직을 가지고 있었고, 왜 2005년에 이르러 헌정개혁법을 통해 사법조직의 개혁을 하려고 한 것일까요?

위 개혁법이 통과되기 전의 영국 최고법원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2009년 10월 “The Supreme Court”로 불리게 될 대법원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영국의 최고법원의 역할은 상원(또는 귀족원, “The House of Lords”)이 가지고 있습니다. 12명의 귀족법관(“Law Lords”)이 상원의 이름으로 항소법원을 거쳐 제기된 상소에 관하여 사법적인 최종결정권을 행사합니다. 영국법의 근간인 case law를 만들어 왔고, 만들고 있는 주요 사법조직이 의회의 한 기관인 상원이었던 셈입니다.

개혁을 요구받은 로드 챈서러의 권한

한편 위 헌정개혁법이 통과되면서 곧바로 권한이 축소된 직위가 로드 챈서러(“Lord Chancellor”)입니다. 로드 챈서러는 위 헌정개혁법이 만들어지게 된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직위입니다. 로드 챈서러는 최근까지 무려 1,400년 이상이나 지속된 직위로 영국의 법과 관련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기관이었습니다. 로드 챈서러의 권한은 입법, 사법, 집행부를 망라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집행부 또는 정치적 지위에 있어, 로드 챈서러는 영국 정부내각의 구성원으로, 우리나라 법무부에 해당하는 부서의 장관입니다. 그는 명목상으로는 영국의 여왕(또는 왕)에 의해 임명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수상에 의하여 지명되며 정부 내각의 다른 구성원처럼 선거에 패배하여 정권이 바뀌는 경우는 물론 수상이 교체되는 경우에도 자신을 지명한 수상과 그 운명을 같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법 영역에서의 역할을 살펴보면, 그는 모든 법원 조직의 수장으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지위에 바탕을 두고 그는 모든 법원 조직의 주요 법관들을 임명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최고법원이었던 상원의 귀족 법관 중 1명이었고, 추밀원(“Privy Council”)의 법관으로서의 지위도 가졌습니다. 나아가 입법 영역에서의 역할을 보면, 그는 상원의 구성원의 역할을 넘어서 상원의장의 지위를 가졌습니다. 로드 챈서러는 개혁법이 통과되기 전까지 법과 관련된 영역에서 실로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었던 직위라 하겠습니다.

국민의 자유를 보호하고 신장하기 위해서는 권력분립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는 프랑스 정치사상가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이 출간된 때가 1748년입니다. 위 책이 유럽에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은 물론 미국헌법의 초석이 된 것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18세기를 훌쩍 뛰어넘어 250년이 지난 지금까지 권력분립의 원칙과 양립하기 어려운 즉 입법, 사법, 집행권력을 두루 가지고 있는 위 직위의 권한이 정치제도가 발달하였다고 하는 영국에 최근까지 남아 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동안 많은 비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존치시켜 온 로드 챈서러의 막강한 권한은 21세기를 맞아 다시 거센 개혁의 비판대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모든 법관의 임명권을 가진 로드 챈서러가 정당을 위한 정치적 모금행위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중매체 등을 통해 알려지면서 - 법관 임명의 희망을 가지고 있는 법률가들로부터 상당한 기부를 받은 것도 포함하여 - 개혁에 대한 요구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이를 외면하기 어려워 헌정개혁법을 통해 로드 챈서러의 권한을 대폭 축소하고, 법원을 의회권력으로부터 분립시키며 최고법원으로서 대법원을 설립하는 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법원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법관 임명에 관한 기구와 절차에 관한 개혁도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 결과 로드 챈서러의 과거 권한 중 모든 법원의 수장이 되는 지위, 최고 법원의 법관이 되는 지위, 법관의 임명절차에 중심적으로 관여하게 되는 지위, 자동적으로 상원의 의장이 되는 권한은 폐지되었습니다. 그는 이제 집행부 내각의 구성원으로서 법무부에 해당하는 부서의 장관으로서의 지위만을 가질 뿐입니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진정한 보호를 위해서는 이렇게 바뀌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오히려 상당히 때가 늦은 개혁이라고 할 것입니다.

개혁과 전통

정치, 경제, 사법제도 등 많은 제도들은 그 나라가 경험해 온 역사와 그 사회의 결과물들입니다. 동일한 원칙에 기반을 두었다 하더라도 각 제도들이 구현되는 방법은 그 나라의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자유와 권리의 보호 및 그 신장을 꾀할 수 없어 수명을 다한 제도, 심지어 이제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누르는 제도는 마땅히 사라지고,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는 새 제도가 자라나야 건강한 사회일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한번 만들어졌던 제도들은 비록 그 수명을 다하였다고 하더라도 “기득권”이라는 완고한 자기방어벽을 함께 쌓아 올리면서 세월을 보낸 터라 “전통”이나 다른 명분 뒤에 숨어 자기생존을 계속 구가하려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개혁이 어려운가 봅니다.권력분립의 원칙에 의하면 도무지 장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영국의 “로드 챈서러”라는 직위가 21세기 초까지 그 막강한 권한을 내놓지 않은 것도 그 예라 할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참고하더라도 우리에겐 사라지거나 고쳐야 할 제도에 대한 개혁과 아름다운 전통으로 보호해야 할 제도를 지혜롭게 구별하는 혜안이 필요합니다.

어쨌든 상원을 대신하여 의회권력과 독립된 대법원이 만들어진다는 것은 영국 사법체계에 있어 1400년만의 대단한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곳 법률가들도 그 변화가 사법영역을 포함하여 사회 곳곳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지 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늦었다는 느낌을 지우긴 어렵지만 그래도 그들의 진일보한 전진에 박수를 보내며 그들의 변화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으려는 노력을 하는 것도 지구촌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도리일 것입니다.



※박용대 변호사는 현재 영국에 있는 'King's College London'에서 연수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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