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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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판례 및 입법 소개

 

대법원이 곧 국내 최초의 존엄사 사건으로 소개된 사건에 대하여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전망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매체들이 이 사건을 존엄사 사건이라고 보도하는 것과 달리 하급심 재판부나 대리인들은 ‘존엄사'라는 용어 대신에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존엄사'라는 말 자체가 사망을 미화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는 말이 미국 오레곤주에서 1994년에 제정한 존엄사법(Death with Dignity Act)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혼동의 위험성도 있다. 즉 오레곤주의 존엄사법은 연명치료의 소극적 중단을 의미하기 보다는 환자가 치사용 약물처방 등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살하는 것(Physician-assisted suicide)을 허용하는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국내 형법상 자살방조죄로 처벌받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반면에 국내에서 문제가 된 사건은 회복가능성이 거의 없는 식물인간 상태의 70대 여성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이 적법한지가 쟁점이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표현은 좀 어색하지만 존엄사 보다는 연명치료 중단이라는 말이 더 적합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하여 비교적 많은 법적 분쟁이 있었던 미국의 판례와 입법을 통하여 이와 관련된 법적 쟁점을 살펴보고, 국내법에 관한 의견을 밝히기로 한다.


1. 퀸란 및 크루잔 케이스에 나타난 미국 법원의 판결 내용

미국에서는 Louis Kutner라는 일리노이주 변호사가 1969년에 Indiana Law Journal 에서 제안한 이래 의식불명 상태에 대비하여 평소에 자신에 대한 연명치료의 거절과 같은 치료방침을 정하는 내용의 의사를 표명하는 문서(Living Will, 이하 ‘생전 유언서'라고 함)가 작성되어 활용되곤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부 연명치료 중단 청구 사건은 위와 같은 생전 유언서가 적법하게 작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가 장기간 의식불명 상태가 되어 제기되었다. 이러한 경우 가족 등 보호자가 환자를 대신하여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 중단을 병원에 요청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먼저 1976년 1월에 뉴저지주 대법원은 퀸란 케이스[In re Quinlan, Supreme Court of New Jersey 355 A.2d 647 (1976)]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프라이버시권은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죽어가고 있는 환자에게 환자의 가족이 생명유지 수단을 제거함으로써 환자를 죽게 만드는 것을 허용할 정도로 포괄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이에 따라 환자 카렌 퀸란(Karen Quinlan)의 아버지 조셉 퀸란(Joseph Quinlan)을 후견인으로 임명하면서, 후견인의 의뢰를 받은 담당의사가 병원윤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환자에 대한 생명유지 장치를 제거하는 것에 대하여 민·형사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판시하였다.

그 후 20개 주에서 판단능력이 있는 환자가 생명유지 장치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였고, 뉴욕주와 미주리주를 제외한 나머지 18개 주에서 판단능력이 없는 환자에 대하여 대리인이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왔다.

이러한 가운데 1990년 6월에 크루잔(Nancy Cruzan) 사건[Cruzan v. Director, Missouri Department of Health, 497 U.S. 261(1990)]에서 죽어가는 환자의 권리를 명시적으로 인정한 최초의 연방대법원 판결이 선고되었다. 미주리주에 살던 24세 여자 환자 낸시 크루잔은 1983년 1월에 교통사고로 발생한 산소결핍 상태로 인하여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persistent vegetative state, PVS)가 되었다. 낸시의 부모는 카렌 퀸란 사건의 사례를 따라 생명유지장치인 급식관의 제거를 병원에 요구하였으나 병원은 법원의 허가가 없다는 이유로 수용하지 않았다. 미주리주의 하급심은 크루잔 부모의 청구를 인용하였으나 상급심인 미주리주 대법원의 판단에서는 낸시의 연명치료 거부에 관한 ‘생전 유언서(living will)'나 치료방침에 관한 ‘사전지시서(advance directives)'가 제출되지 않은 점을 중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낸시가 사고 전에 동거친구(housemate)에게 긴박한 사고시에는 무익한 생명연장은 의미가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하였다는 증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즉, 이러한 친지들의 진술은 연명치료 거부에 관한 낸시의 진정한 희망에 관한 “명백하고 확신할 만한 증거(clear and convincing evidence)”가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결국 삶의 질과 무관하게 시민의 생명 그 자체를 지켜야 하는 것이 주(state)의 정책이므로 주 법원으로서는 증거가 부족한 상태에서 원고의 청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낸시의 부모는 연방대법원에 최종 판단을 구하였다. 그 결과 연방대법원은 치료를 거부할 경우 죽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판단능력 있는 환자는 치료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국가는 영구적 혼수상태에 있는 환자의 생전 의사를 확인함에 있어서 생전 유언서와 같은 “명백하고 확신할 만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법을 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따라서 미주리주 대법원의 위와 같은 법원칙 적용은 미국 연방헌법에 부합하는 것으로 낸시 부모의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판시하였다.

크루잔 판결의 의의는 퀸란 판결 이후 완화되었던 환자의 치료중단 의사 추정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여 생명보호를 강조하였다는 점이다. 즉, 생전 유언서의 대체증거를 너무 쉽게 인정할 경우 이러한 법원리를 남용하여 연명치료 중단에 의한 사망이 초래되어 오히려 인간존엄성을 해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연명치료를 받는 환자의 대리인으로 언제나 사랑으로 가득한 가족만 있는 것은 아니므로 국가는 대리권의 남용을 방지할 임무가 있다고 보았다. 또한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증명을 엄격하게 제한해서 생기는 오판의 위험은 그 결과가 현상유지적인 것에 불과하나(사망시기의 지연) 증명을 너무 쉽게 인정할 경우 오판으로 인한 결과는 사망을 초래하므로(즉각적인 사망) 회복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엄격한 입증의 사유로 제시하였다.


2.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미국의 입법 내용

뉴저지주 대법원의 퀸란 사건 판결 이후 죽음의 시간, 장소 및 방법을 개인이 결정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미국의 많은 주에서 생전 유언서(living will) 규정을 포함하는 자연사법(natural death act)을 제정하기 시작하였다. 자연사에 관한 입법은 환자가 말기 상황에 있고, 더 이상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된다면 생명연장 시술을 보류하거나 중단하도록 담당 의사에게 지시하는 문서로서 사망 전에(living) 효력이 발생하는 유언서(will)의 효력을 인정하는 법률을 말한다. 대부분의 주는 생전 유언서 외에 의료진에 대한 사전지시서(advanced directives)에 관한 법률을 가지고 있다. 자연사법으로 통칭되기도 하는 생전 유언서에 관한 법률의 내용은 주에 따라 다양하다. 많은 주에서는 승인받은 양식의 서면으로 작성된 형태만을 허용하는 반면 일부 주에서는 구술 진술로도 가능한 것으로 규정한다. 일부 주에서는 증인이 환자와 혈연관계나 혼인관계를 가지고 있거나 유산상속이나 기타 재산상 이해관계가 있는 경우 배제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고, 의료진이나 그 관계인 역시 증인이 될 수 없다고 규정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환자의 조기 사망에 따라 상속 등을 통하여 재산상 이익을 얻거나 치료의 의무 부담을 회피할 수 있으므로 공정한 증인이 되기 어려운 사정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나 기타 의료관계인은 적법한 유언서에 기초하여 환자로부터 연명치료를 보류하거나 중단하는데 선의로 참여한 경우 다른 과실이 없는 한 민형사적 책임이나 직업적 제재로부터 면제된다. 대부분의 주 법률에 의하면 사전지시서 내지 생전 유언서에 관한 규정을 준수하여 한 의료진의 행위는 자살방조나 살인의 책임을 부담하지 않는다. 나아가 이러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진 죽음을 자살로 간주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의료진이 고의나 과실로 자연적인 죽음의 과정 이외의 방법으로 생명을 종료시키는 행위는 금지되어 처벌의 대상이 된다.

위와 같은 자연사법에 뒤이어 오레곤주에서는 존엄사법을 제정하여 의사가 환자의 요청에 따라 죽음을 초래할 수 있는 약물을 처방하고 환자가 이를 투여하여 자살에 이르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는 점은 앞에서 소개하였다.


3.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국내법에 관한 의견

회복가능성이 없는 지속적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에 대하여 환자 “본인의 명시적 의사”에 기초하여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국내법의 해석상으로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의사라고 하더라도 환자의 명시적 치료거부 의사가 있을 경우에는 환자에 대한 연명치료의 개시나 유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환자는 치료 여부나 방법을 선택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규정에는 존엄하게 살 권리와 더불어 존엄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고 해석된다. 위와 같은 치료중단 의사는 환자 본인이 평소 치료방침에 관한 의사를 일기, 편지 등에 명시적으로 표시한 경우에는 그러한 명시적 의사에 기초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환자가 의사능력이 있었을 당시에 명시적 의사를 남기지 않았을 경우에는 환자가 평소 가족이나 주위의 친구에게 말한 내용, 환자의 가치관이나 종교적 성향, 타인의 치료에 대하여 보인 반응 등을 토대로 문제가 되는 상황에서 예상되는 환자의 의사를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환자의 과거 언행에 관한 증거 판단 면에서 보자면 진료비 부담과 상속관계 등으로 복잡한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는 가족들보다는 환자의 연명에 대한 재산상, 심리상 부담이 작은 중립적 증인의 증언이 적합할 수 있다.

미국의 크루잔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위와 비슷한 취지에서 연명치료 중단에 관한 환자의 의사표시가 명시된 서면이 없고 가족이나 룸메이트의 진술만이 확인된 경우에는 생명유지를 중단할 수 없다는 판결을 선고하였던 점에 주의해야 한다. 아울러 연명치료 중단의 무분별한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미국의 자연사법 등 외국의 입법례를 참고하여 관련 법률을 제정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의 중요성을 고려하여 신속한 입법보다는 개별적 사안에 대한 면밀한 의학적, 법적 검토를 축적해 가면서 개별적 사례에 적합한 문제해결의 원리들을 발전시켜 나가면서 일반적인 원칙을 담은 입법 작업을 준비해 나가는 것이 더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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