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부동산경기하락으로 새롭게 제기되는 문제들◇

어느 정도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미국 서브프라임 부실로 촉발된 세계금융시장의 혼란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얼마나 불안정한 기초를 갖고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아파트 시장도 아파트 미분양 대란으로 올 9월까지만 40개가 넘는 주택업체가 부도를 냈고, 그 결과 70조원 규모의 국내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의 부실 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를 겪은 후 장기간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부동산 불패’ 신화도 조금은 타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변호사로서 법을 다루다 보면 법 역시 일반적인 세상의 흐름에 따라 법리가 발전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계약의 해제에 관한 우리 판례는 부동산 가격은 항상 오른다는 믿음에 근거해 발달하였습니다.

사실 계약의 해제라는 것은 원론적으로 볼 때 해제권자에게 별다른 이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해제의 법률상 효과는 원상회복으로서 말 그대로 계약 체결 이전 상태로 복귀시키는 것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비교적 단기간에 부동산 가격이 앙등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에 부동산을 매매한 후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면 매도인이 큰 이익을 얻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법률시장에는 부동산 매매계약 해제에 관한 수요가 컸고, 계약의 해제가 비교적 쉽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이행제공’의 정도를 완화하거나 ‘이행거절’로 분류할 수 있는 사안들에 대하여 해제가 인정되는 방향으로 판례의 흐름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과 마찬가지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기부채납 부관이 사업시행자의 이익을 침해한다는 것이 있습니다. 행정청은 주택건설사업계획 등에 대해 승인을 내주면서 사업자에게 각종의 부관을 부과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각종 기반시설 등을 행정청에 증여하도록 하는 기부채납 부관입니다(개발사업의 근거 법령에는 사업시행자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설치한 공공시설은 그 시설을 관리할 행정청에 무상으로 귀속되는 이른바 무상귀속 제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기부채납 부관은 사업의 수익성을 크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므로, 기부채납 부관이 행정청의 재량권의 범위를 벗어나 위법하다는 방향의 판례가 축적되어있고, 연구도 비교적 많이 이루어진 편입니다.

하지만 제가 올해 검토한 사안은 이러한 상식과 배치되는 것이었습니다. 당초 행정청은 산업단지개발사업 시행자에게 산업단지내 오폐수를 처리하기 위한 시설을 건설하여 기부채납하도록 하였는데, 방침을 바꾸어 기부채납을 받지 않기로 했고, 사업시행자는 당초 부관대로 행정청이 오폐수처리장을 인수하기를 원한 사안이었습니다. 지방산업단지 중 일부는 미분양상태가 심각한 편인데, 이러한 산업단지에서 행정청이 오폐수처리장을 인수하면 자체 예산으로 운영비를 조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기 때문에 행정청은 기부채납 부관을 철회하려고 한 것입니다. 형식 논리로만 보면 기부채납 부관은 사업시행자의 이익을 빼앗는 처분이므로, 행정청이 이를 스스로 철회하는 것은 사업시행자에게 이익이 되는 처분으로 볼 수 있어서 이를 제한하는 법리를 기존의 연구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재개발이나 재건축 시장에도 기존과는 다른 문제들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과거 재건축은 안전진단만 통과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이 수익성이 큰 사업으로 인식되었습니다. 재개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결과 조합원 지위 또는 분양대상자격을 확인받는 쪽의 법리가 발달해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사업에서는 조합원들이 아파트 대신 현금으로 청산을 받겠다고 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재건축이나 재개발조합의 정관은 위와 같은 상황을 상정하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속시원한 분쟁해결의 지침이 되고 있지 못한 실정입니다.

경제연구소들은 전세계적인 자산거품이 조만간 붕괴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습니다. 제가 요즘 검토하게 되는 사안들을 보더라도 건설부동산 시장에 국한하여 볼 때 과거의 흐름과는 분명 구별되는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마음 속으로는 항상 최선의 결과를 바라되, 일의 추진은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놓으라는 경구는 법률검토를 할 때에도 명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정원 변호사(법무법인 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