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ㆍ바이오ㆍ의료】제약회사에 대한 의약품 하자에 따른 손해배상청구 입증책임 완화

 신민 변호사서준희 변호사

   
   
 

1. 사실관계

피고 주식회사 녹십자홀딩스는 1990년 초반 무렵부터 B형 혈우병 치료제인 훽나인(Facnyne, 이하 '이 사건 혈액제제'라 합니다)을 제조하여 유통하였는데, 그 무렵 우리나라의 B형 혈우병 환자들에게서 집단적으로 HIV 감염이 확인되었습니다. 원고들은 이 사건 혈액제제에 의하여 HIV 감염이 되었음을 주장하면서 이 사건 소를 제기하였습니다.


2. 쟁점

가. 이 사건 혈액제제의 결함과 원고들의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 존부
나. 소멸시효의 기산점 및 완성 여부


3. 판시사항

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환자가 제약회사를 상대로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제제를 통하여 감염되었다는 것을 손해배상책임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경우, 혈액제제 결함 또는 제약회사 과실과 피해자 감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에 관한 증명책임의 정도 및 판단기준

의약품의 제조물책임에서 손해배상책임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약품의 결함 또는 제약회사의 과실과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의약품 제조과정은 대개 제약회사 내부자만이 알 수 있을 뿐이고, 의약품 제조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로서 일반인들이 의약품의 결함이나 제약회사의 과실을 완벽하게 입증하는 것은 극히 어렵습니다. 따라서 환자인 피해자가 제약회사를 상대로 바이러스에 오염된 혈액제제를 통하여 감염되었다는 것을 손해배상책임의 원인으로 주장하는 경우, 제약회사가 제조한 혈액제제를 투여받기 전에는 감염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없었고, 혈액제제를 투여받은 후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었으며, 혈액제제가 바이러스에 오염되었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증명하면, 제약회사가 제조한 혈액제제 결함 또는 제약회사 과실과 피해자 감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증명책임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ㆍ타당한 부담을 지도 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부합합니다. 여기서 바이러스에 오염되었을 상당한 가능성은, 자연과학적으로 명확한 증명이 없더라도 혈액제제의 사용과 감염의 시간적 근접성, 통계적 관련성, 혈액제제의 제조공정, 해당 바이러스 감염의 의학적 특성, 원료 혈액에 대한 바이러스 진단방법의 정확성 정도 등 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한편 제약회사는 자신이 제조한 혈액제제에 아무런 결함이 없다는 등 피해자의 감염원인이 자신이 제조한 혈액제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여 추정을 번복시킬 수 있으나, 단순히 피해자가 감염추정기간 동안 다른 회사가 제조한 혈액제제를 투여 받았거나 수혈을 받은 사정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추정이 번복되지 않습니다.

나. 혈우병 환자인 甲 등이 乙 주식회사가 제조ㆍ공급한 혈액제제로 인하여 HIV에 감염되었는지가 문제된 사안에서, 乙 회사가 제조한 혈액제제 결함 또는 乙 회사 과실과 甲 등의 HIV 감염 사이에 인과관계가 추정된다고 한 사례

혈우병 환자인 甲 등이 乙 주식회사가 제조ㆍ공급한 혈액제제로 인하여 HIV(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 Human Immunodeficiency Virus)에 감염되었는지가 문제된 사안에서, 甲 등이 乙 회사가 제조한 혈액제제를 투여받기 전에는 감염을 의심할 만한 증상이 없었고, 乙 회사가 제조한 혈액제제를 투여받은 후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되었으며, 혈액제제가 HIV에 오염되었거나 오염되었을 상당한 가능성이 있으므로, 乙 회사가 제조한 혈액제제의 결함 또는 乙 회사의 과실과 甲 등의 HIV 감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추정되고, 감염혈액을 제공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보유한 HIV의 유전자 정보와 등이 보유한 HIV의 유전자 정보가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다거나, 일부 환자들이 HIV 오염 여부를 알 수 없는 외국산 혈액제제 또는 수혈을 받은 사정만으로 위 추정이 번복된다고 할 수 없다고 한 사례입니다.

다. 감염의 잠복기가 길거나 감염 당시에는 장차 병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 기산점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채권에 있어서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이란 가해행위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손해의 결과가 발생한 날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감염의 잠복기가 길거나, 감염 당시에는 장차 병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 손해가 현실화된 시점을 일률적으로 감염일로 보게 되면, 피해자는 감염일 당시에는 장래의 손해 발생 여부가 불확실하여 청구하지 못하고 장래 손해가 발생한 시점에서는 소멸시효가 완성되어 청구하지 못하게 되는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위와 같은 경우에는 감염 자체로 인한 손해 외에 증상의 발현 또는 병의 진행으로 인한 손해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손해는 증상이 발현되거나 병이 진행된 시점에 현실적으로 발생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4. 해설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의 경우 피해자인 청구권자가 손해발생 및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책임을 부담함이 원칙이나, 대법원은 제조물책임 소송, 의료소송, 환경소송과 같은 특수한 영역에 대한 피해자의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있습니다. 본 판결은 의약품으로 인해 발생한 피해에 관하여 제약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건에 있어서도 "공평ㆍ형평의 원칙에 입각한 인과관계의 추정 및 입증책임의 완화"라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됩니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민법 제766조 제2항에 의한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되는 '불법행위를 한 날'의 의미에 관하여 가해행위가 있었던 날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손해의 결과가 발생한 날을 의미한다고 해석해 왔는데, 본 판결에서는 감염의 잠복기가 길거나, 감염 당시에는 장차 병이 어느 단계까지 진행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 감염 자체로 인한 손해 이외에 그 증상의 발현 또는 병의 진행으로 인한 손해에 관하여는 증상이 발현되거나 병이 진행된 시점에 현실적으로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하여, 감염이라는 하나의 가해행위로 인하여 발생하는 손해에 관하여 각기 소멸시효가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해석됩니다.


5. 다운로드 : 대법원 2011. 9. 29. 선고 2008다16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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