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헌가2 공익법인의설립·운영에관한법률 제14조 제2항 위헌제청사건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을 취소하는 근거조항인 공익법인의설립·운영에관한법률 제14조 제2항이 취소사유를 전적으로 대통령령에 백지위임한 것으로서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배되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김경일 재판관)는 2004년 7월 15일 재판관 8(위헌) : 1(합헌)의 의견으로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을 취소하는 근거조항인 공익법인의설립 운영에관한법률 제14조 제2항이 취소사유를 전적으로 대통령령에 백지위임하는 것으로서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배되어 헌법에 위반된다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1. 사건의 개요

재단법인 육영재단은 공익법인의설립 운영에관한법률(1997. 12. 13. 법률 제5453호로 개정된 것. 이하 “법”이라 한다)에 의해 설립된 법인인데, 서울특별시 성동교육청 교육장은 서울특별시 교육감으로부터 이송받은 민원의 처리를 위해 2001. 7. 23.부터 같은 해 8. 10.까지 육영재단의 실태를 조사한 결과 육영재단이 미승인 수익(임대)사업을 운영하는 등 6가지 사항에 대하여 법령과 정관을 위배하였다고 판단하고 같은 해 8. 27. 육영재단 이사장인 제청신청인에게 이를 시정할 것을 지시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동교육청 교육장은 2001. 11. 26.부터 위 지시사항의 이행여부를 확인 점검하였는바, 제청신청인이 위 6가지 시정사항 중 5가지를 시정하지 않았음을 이유로 법 제14조 제2항 및 같은 법 시행령 제26조에 의해 제청신청인에 대한 이사취임승인을 취소하였다.

이에 제청신청인은 2001. 12. 10. 서울행정법원 2001구49407호로 위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2002. 5. 1. 패소판결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서울고등법원에 당해사건으로 항소하면서 법 제14조 제2항(이하 “이 사건 법률조항”이라 한다)이 포괄위임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 조항에 대한 위헌법률제청신청을 하였고, 위 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위헌심판제청을 하였다.

2.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대상은 법 제14조 제2항의 위헌여부이고, 그 규정내용은 다음과 같다.

법 제14조(감독) ② 주무관청은 대통령령이 정하는 사유가 있는 때에는 이사의 취임승인을 취소할 수 있다.

3. 결정이유의 요지

입법권은 법률의 유보가 적용되는 범위 내에서 국회의 배타적인 권한이므로 행정권의 자의적인 법률의 해석과 집행을 방지하고 의회입법과 법치주의의 원칙을 달성하기 위하여 위임입법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보지 않으면 안된다. 이에 헌법 제75조는 “법률에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 위임받은 사항에 관하여 대통령령을 발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여 일반적인 위임입법의 근거와 아울러 그 범위 및 한계를 제시하고 있다. 위와 같은 헌법 제75조의 입법취지에 비추어 볼 때, ‘구체적으로 범위를 정하여’라 함은 법률에 대통령령 등 하위법규에 규정될 내용 및 범위의 기본 사항이 가능한 한 구체적이고도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어서 누구라도 당해 법률 그 자체로부터 대통령령 등에 규정될 내용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공익법인의 사업목적이 장학사업, 학술사업, 자선사업 등 다양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공익이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있는 것들이고, 또한 법에서 말하는 공익이라는 개념이 복잡하거나 급속하게 변화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리고 공익법인의 설립목적에 비추어 허용되는 사업의 범위가 일정하므로 업무집행기관인 이사의 업무제한 범위의 대강을 법률로 정하는 것이 입법기술상 어렵지 않고, 따라서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취소사유를 법률로 정하지 않고 별도로 행정부에 백지위임할 필요성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익법인 이사의 취임승인을 취소하는 근거조항으로서 직업수행의 자유를 제한하는 침해행정의 수권규정이므로 위임입법에서의 구체성 명확성의 요구가 강화되어 그 위임의 요건과 범위가 급부행정의 경우보다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취소사유에 관하여 아무런 기준을 제시하지 않았고, 전적으로 대통령령에 그 취소사유를 정하도록 맡겨 버려 이 사건 법률조항만으로는 어떠한 경우에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이 취소되는지를 예측할 수 없다.

이 사건 법률조항 이외에 관련 법조항 전체를 유기적, 체계적으로 보더라도 법인설립목적(학자금, 장학금 또는 연구비의 보조나 지급, 학술 자선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함)에 어긋나는 행위와 관련하여 주무관청의 감독권이 행사되리라는 점을 예측할 수는 있다고 하더라도 이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 어떠한 행위에 대하여 주무관청이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을 취소할 것인지를 명확하지 않다. 예컨대 공익법인이라 하더라도 그 설립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불가피하거나 부수적으로 수반되는 수익사업을 운영하거나 또는 수혜자에 대한 의무부담행위, 반대급부행위 등을 요구할 수도 있는데 이사가 위와 같은 업무에 관여한 경우에도 행정부의 자의적인 법규제정에 따라 직업수행의 자유가 침해될 수 있고, 이사가 공익법인의 설립, 운영 목적과 관련 없는 다른 행위로 인한 일정한 형 이상의 확정판결, 징계처분을 받았을 경우, 기타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경우 등도 취임승인취소사유로 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록 공익법인의 이사가 금치산자, 파산자, 금고 이상의 형을 받고 집행이 종료되거나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된 후 3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자 등에 해당할 경우에는 결격자로서 당연히 이사의 지위를 박탈당하기는 하지만(법 제5조 제6항), 위와 같은 자격의 제한이 반드시 수범자인 이사들이 당해 공익법인의 사업목적과 운영에 관한 전문가들로만 임명될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므로 취임승인취소사유를 하위법령에 위임함에 있어서 구체성 명확성의 요건을 대폭 완화시킬 수 없다.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취소로 인하여 침해당하는 직업수행의 자유가 직업결정의 자유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침해의 범위가 작고, 공공복리 등 공익상의 목적에 의하여 비교적 넓은 규제가 가능하다고 하다라도 이 사건 법률조항과 같이 포괄적으로 취임승인취소사유를 백지위임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

* 재판관 宋寅準의 합헌의견

포괄위임금지원칙 내지 본질적 사항의 위임 여부가 문제되는 경우 기본적으로 중요한 사항이나 본질적 내용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서 법률로 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본적 입장에서 살펴보아도 이 사건 법률조항이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위배된다는 다수의견에 찬동할 수 없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공익법인은 그 종류가 장학사업에서 자선사업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고, 숫자도 많을 뿐만 아니라 추구하는 목표도 전체적으로는 공익이라는 범주에 포함될 수 있지만 세부적으로는 학비보조와 같은 단순한 장학사업에서 학술사업, 자선사업, 구호사업 등 목표가 서로 다르고, 주무관청도 공익법인의 종류에 따라 여러 곳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복잡하고 급속히 변화하는 현실에 맞추어 공익법인의 사업목적을 지속적으로 달성하기 위해서는 당해 법인의 이사의 다양한 업무에 관하여 전문적, 기술적 지식이 없는 국회로 하여금 법률에 의하여 제한되는 이사의 업무내용 전부를 입법사항으로 정하도록 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이 사건 법률조항에 의한 위임입법에 있어서의 구체성 명확성의 요구 정도는 완화되어야 한다.

둘째, 이 법에서 규정하고 제반 규정을 유기적 체계적으로 종합하여 살펴보면,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임에 의하여 장차 규정될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취소사유에 관한 대통령령의 내용과 범위의 대강은, 법률이나 정관에서 정한 규정을 위반하거나 공익법인의 설립목적을 벗어나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없게 될 우려를 생기게 하는 경우 등이 될 것이라고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다.

셋째, 이 사건 법률조항의 수범자는 일반국민이 아니라 공익법인의 이사이고, 주무관청의 이사취임승인절차를 거친 이사의 경우 통상 당해 공익법인의 사업목적이나 업무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과 경륜을 폭넓게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굳이 법률에 이사취임승인취소사유를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더라도 당해 공익법인의 이사는 그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제한되거나 금지되는 업무의 대강을 쉽사리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봄이 상당하다.

넷째, 그간 우리 헌법재판소가 포괄위임금지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결정한 사례 중 수범자가 특수한 지위에 있거나, 관련 법률조항의 유기적, 체계적 해석을 통하여 위임에 의하여 장차 규정될 대통령령의 내용과 범위의 대강을 예측할 수 있다고 한 사례들은 적지 않고, 이들 대부분은 이 사건 법률조항의 위임형식과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이 사건 법률조항이 공익법인의 이사의 취임승인취소사유에 관하여 다소 광범위하게 하위법령에 위임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더라도 이를 위임입법의 한계를 일탈한 위헌인 법률조항이라고 할 수 없다.

4. 결정의 의의

이 결정은 침해적 행정행위에 대한 위임입법의 한계를 다시 한 번 확인함과 동시에 사립학교법, 사회복지사업법 등 특수한 공익법인의 이사들의 경우 법률에서 임원의 취임승인취소사유를 정하고 있음에 반하여 일반 공익법인의 이사들에 대하여는 그 취소사유를 대통령령에 백지위임하여 행정부의 자의적인 법규제정으로 일반 공익법인 이사들의 직업수행의 자유가 현저하게 침해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해당 법률조항을 위헌으로 선언함으로써 자의적 행정입법에 의한 기본권침해를 구제한 데 그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