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헌마496 공정거래위원회의 무혐의처분취소 사건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 이상경 재판관)는 2004년 6월 24일 재판관 전원 일치의 의견으로 현대오일뱅크 주식회사가 인천정유 주식회사와의 석유류제품 판매대리점계약의 갱신을 거절한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한 공정거래위원회의 무혐의처분을 취소하는 결정을 선고하였다.

[판시사항]

1. 사건의 개요

(1) 현대오일뱅크 주식회사는 동사가 대주주로 있던 인천정유 주식회사(종전 한화에너지 주식회사에서 상호가 변경됨)와의 석유류제품 판매대리점계약에 따라 인천정유로부터 그 생산의 석유제품을 구매하여 이를 동사에 합병된 구 한화에너지플라자 주식회사 산하의 주유소들에게 재판매하여 왔다.(종전에 한화에너지와 한화에너지플라자 사이에 체결되었던 계약이 승계된 것이다)
(2) 그러던 중 인천정유에 대하여 2001. 9. 회사정리절차가 개시되자 현대오일뱅크는 예정된 계약기간 만료일인 2002. 6. 30.로부터 위 판매대리점계약에서 정한 사전통지기간 90일 이전인 2002. 3. 27. 위 판매대리점계약의 갱신을 거절하였다.
(3) 이에 대하여 인천정유는 위와 같은 계약갱신거절이 독점규제및공정거래에관한법률(이하 '공정거래법'이라고만 한다) 제23조 제1항 제1호가 금지하고 있는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2002. 5. 22. 피청구인(공정거래위원회)에게 이를 신고하였으나, 피청구인은 위 신고사건(2002경촉0724)에 대한 조사를 마친 후인 2002. 7. 20. 현대오일뱅크의 계약갱신거절행위가 불공정거래행위로서의 거래거절에 해당하지 아니한다는 취지로 무혐의결정을 하고 이를 청구인에게 통지하였다. 그러자 청구인은 위 무혐의결정이 조사미진 및 자의적인 증거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하며 2002. 7. 25. 그 취소를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2. 심판의 대상

이 사건 심판의 대상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한 위 2002. 7. 20.자 무혐의결정의 위헌 여부이다.

3. 결정이유의 요지

가. 공동의 거래거절 해당 여부

청구인은, 이 사건 거래거절이 곧 현대오일뱅크가 관리하는 구 한화에너지플라자 소속의 자영주유소 사업자들로 하여금 공동으로 신고인인 인천정유와의 거래관계를 단절하게 하는 실질을 갖는 공동의 거래거절에 해당하므로 현대오일뱅크가 특별한 정당화사유를 입증하지 못하는 한 위법한 불공정거래행위로서 규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나, 인천정유와 현대오일뱅크 사이에 체결된 석유류제품 판매대리점계약의 당사자는 엄연히 인천정유와 현대오일뱅크로서, 현대오일뱅크 산하의 자영주유소들이 직접 인천정유와 석유류제품을 구매하는 거래관계를 맺은 바 없을 뿐 아니라 현대오일뱅크와 위 주유소들이 경쟁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므로, 어느 모로 보나 이 사건 거래거절을 두고 공동의 거래거절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

나. 개별적 거래거절로서의 위법 여부

(1) 현대오일뱅크에 의한 판매대리점계약의 갱신거절행위는 곧 공정거래법 제23조 제1항 제1호가 규정하는 개별적 거래거절이라는 행위유형에 포섭되는데, 특히 개별적 거래거절이 위법한 것으로 인정되는 세 가지 사례 가운데 '경쟁관계에 있는 특정사업자의 거래기회를 배제하여 그 사업활동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지 여부가 문제되는 사안이다.
(2) 기록에서 알 수 있는 여러 가지 사정, 특히 현대오일뱅크가 과당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국내 석유류제품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4.3%로서 업계 전체에서 3위에 해당하는 유력사업자라는 점, 인천정유는 그 내수판매량의 약 55%에 상당하는 물량을 현대오일뱅크에게 판매하는 등 의존관계가 컸던 점, 정유회사와 주유소간의 폴사인제나 자금지원계약 등으로 국내 석유류 판매시장의 유통구조는 고도로 경직되어 있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가 어려운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인천정유로서는 현대오일뱅크와의 거래가 단절되면 새로운 대체거래처를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 내지는 현저히 곤란에 빠져 결국 사업활동의 계속이 곤란하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처럼 현대오일뱅크에 의한 판매대리점계약 갱신거절행위는 명백한 경쟁 제약 또는 배제의 효과를 가져오게 되므로, 일응 이 사건 거래거절은 경쟁질서에 악영향을 끼쳐 시장의 공정한 거래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부당한 행위로서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3) 그런데 피청구인은 현대오일뱅크가 유동성 악화 등 심각한 경영위기를 극복하고 기업의 회생을 도모하기 위한 자구조치를 도모한다는 '사업경영상의 필요 내지 합리적 이유'에 기하여 이 사건 거래거절에 이른 것이라는 현대오일뱅크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이 사건 거래거절이 정당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하는 목적은 공정하고도 자유로운 거래질서를 확립하는 데 있으므로, 행위의 공정거래저해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원칙적으로 이러한 공정한 거래질서 유지의 관점에서 파악하여야 한다. 따라서 거래거절의 위법성을 평가함에 있어 사업경영상의 필요성을 다른 위법요소들과 대등하게 제3의 독립요소로 취급할 것은 아니므로, 거래거절에 이른 사업경영상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는 사정만으로 곧 당해 거래거절의 위법성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 가지 위법요소들을 종합적으로 참작하여 개별적 거래거절의 공정거래저해성 유무를 심사한다고 할 때 거래거절의 원인이 된 사업경영상의 필요성은 행위의 객관적·주관적 측면을 이루는 여러 위법요소들 중 하나에 해당하는 참작사유로서, 혹은 적어도 위법성을 부인하기 위한 근거로 내세워지는 '행위의 의도·목적'을 추단케 하는 간접사실로서 위법성 판단과정에 적지 않은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개별적 거래거절이 상대방의 사업활동에 미치는 영향의 정도를 단계별로 구분한다고 할 때, 당해 거래거절이 상대방의 사업활동의 수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정도에 머무는 때에는 일정한 정도 이상의 사업경영상 필요성만으로도 그와 같은 경쟁제한적 효과를 상쇄할 여지가 있을 것이나, 그것이 상대방의 사업활동의 계속을 곤란하게 할 정도로 경쟁제한적 효과가 강한 경우에는 당해 거래거절을 하지 않으면 행위자가 곧 도산할 것이 확실하다는 등의 사업경영상의 긴절한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 한 그 거래거절의 위법성을 부인할 수 없다고 볼 것이다. 돌이켜 이 사건에 관하여 보면, 이 사건 거래거절 당시 현대오일뱅크는 2000년과 2001년의 2년간에 걸쳐 계속된 대규모 적자국면과 유동성위기를 타개하고 경영상태를 호전시키기 위하여 내수시장의 점유율을 확대함으로써 영업이익을 증대시킬 필요성에 당면해 있었다고 보이기는 하지만 나아가 인천정유와의 거래관계를 당장 종료하지 않으면 곧 도산에 이를 것임이 확실하게 예측되는 등의 긴절한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고, 그렇다면 그와 같은 정도의 사업경영상의 필요성을 가지고 이 사건 거래거절이 가져오는 고도의 경쟁제한적 효과를 상쇄할 수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이 사건 거래거절은 위법한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므로, 피청구인이 그와 같은 공정거래저해성을 부인하고 내린 이 사건 무혐의결정은 자의적 처분으로서 취소되어야 한다.

4. 결정의 의의

이 사건 결정은 경영상태의 개선 등 사업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음을 이유로 계약당사자의 어느 일방이 상당기간 유지되어 온 계속적 공급계약을 일방적으로 종료한 경우 그와 같은 거래거절이 공정거래질서를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불공정거래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구조를 뚜렷이 제시하면서, 특히 공정거래저해성 유무의 판단에 있어 이른바 '사업경영상의 필요성'을 참작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결정으로서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