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칼럼

◇국제형사재판소규정의 이행입법안에 관한 소고◇

인류의 양심에 깊은 충격을 주는 중대한 범죄를 범한 자들이 처벌받지 않는 상태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1998년 7월 UN로마외교회의에서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Rome Statute of the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이하 ‘로마규정’)이 채택되어 2002년 7월 60개국의 비준으로 발효되었다. 로마규정의 제정과정부터 참여해 온 우리나라는 2002년 3월 로마규정에 서명하고 2002년 11월 비준을 받았다. 국제형사재판소는 18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에는 우리나라의 법학교수 출신 1명이 포함되어 있다. 로마규정의 당사국은 로마규정이 정한 범죄의 처벌을 위해 설립된 국제형사재판소의 수사, 기소, 재판 및 형집행절차에 협력할 의무가 있고 이러한 협력을 위해 이용 가능한 절차가 당사국의 국내법에 포함되도록 하여야 한다(제88조). 이에 따라 영국, 캐나다, 호주, 독일, 스위스 등 다수의 국가가 로마규정의 이행입법을 완료하였으며, 우리 정부도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정부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현재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부안은 총칙(제1조~제7조),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의 처벌(제8조~제18조), 국제형사재판소와의 협력(제19조~제20조)의 3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총칙규정은 법의 적용범위와 형법총칙에 대한 몇 가지 특례규정을 정하고 있으며, 처벌조항은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한 죄, 전쟁범죄 등 로마규정에서 처벌대상으로 하는 범죄의 구성요건을 정하고 있고, 협력조항은 범죄인의 인도에 관하여는 『범죄인인도법』을, 국제형사재판소와의 공조에 관하여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준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대한민국영역 외에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범죄를 범한 외국인도 처벌대상으로 하는 보편적 관할권(국내에 소재할 것을 조건으로 하므로, 보다 정확히 하자면 조건부 보편적 관할권)조항을 두고 있으며, 공소시효와 형의 시효를 배제함으로써 로마규정의 입법목적인 ‘불처벌 상태의 종식’을 반영하고 있다. 다만, 그간 시민운동단체에서 요구해 온 ‘국가기관에 의한 반인권적 범죄’에 대한 시효배제조항은 이행입법의 범위를 벗어난다는 이유로 배제하고 있다. ‘사법살인’으로 국제사회에서조차 비난 받았던 인혁당 사건의 유족들에게 국가배상책임을 인정한 최근의 판결에서 보듯이 국가기관의 조직적인 반인권적 범죄에 대해서는 시효를 배제함이 마땅하므로 다른 기회를 통해서라도 입법화되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지난 7월 19일 사단법인 유엔인권정책선터 주최로 정부안을 토론하는 모임에 토론자로 참석하였는데, 정부안의 내용 중에서도 협력조항, 구체적으로는 『범죄인인도법』과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을 단순히 준용하도록 한 조항에 대하여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우리나라가 로마규정을 비준한 이상 헌법에 따라 별도의 입법조치 없이도 로마규정은 국내법과 동일한 법적 효력을 가지므로 범죄의 처벌에 관한 실체법적 규정은 사실 이행입법이 없더라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행입법의 필요성은 협력조항을 구체적으로 마련함으로써 국제형사재판소가 관할범죄를 실효적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도 2007년 4월 실체법에 관한 언급 없이 국제형사재판소에 대한 협력을 중심으로 하는 이행입법을 전격 통과시켰다고 한다. 『범죄인인도법』이나 『국제형사사법공조법』은 대등한 주권국가관계를 전제로 한 것으로서 상대국가의 사법시스템에 대한 무지(좀 더 심하게 말하면 불신)를 염두에 두고 인도거절사유를 광범위하게 규정하고 외교적 통로를 통한 공조절차를 규정하여 신속하고 전면적인 공조가 여의치 않게 되어 있다. 이로 인해 정부안의 내용대로 이행입법이 이루어질 경우, 예를 들어 인도범죄가 정치적인 성격을 지니거나 범죄인이 인도범죄를 행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없는 경우 등을 절대적 인도거절사유로 규정하고 있는데 『범죄인인도법』에 따라 국제형사재판소가 요청한 범죄인의 인도요청이 거부될 우려가 있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국내법을 전면적으로 준용하는 대신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목적이나 특성을 고려하여 구체적인 협력의 내용을 마련하는 방안으로 이행입법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황승화 변호사(법무법인 지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