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평 5주년 기념글

◇무제 - 박현주 미국변호사◇

강은 쓸쓸히 비를 맞는다.
비는 철없이
강 위에 수없이 동그라미를 그리고
까마득히 뛰어내리는 즐거움에, 비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이들인 빗물을 받아내며
강은 생각한다.
이제 너희들은 흐르기만
할것이다. 하늘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아느냐,
나는
돌아갈수 없는 너희들의
눈물이다.

그러나 하늘은 안다.
강, 저가 눈을 부릅뜨고
차오르는 눈물을
어루고 있는 동안에도
강의 숨결은 하늘로, 하늘로 오르고 있는 것을.
아이보다 가벼운
자욱없는 솜바람으로
하늘에 다시 품기 고 있는 것을.

지평에서 일을 시작 하기 전 어느 가을 오후 집 앞에 있는 강변으로 뛰러 나갔습니다. 비가 오기 시작하고 비 때문인지 여름내 무성 히 자란 잡초 사이로 난 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 뛰다가 숨을 고르러 강을 향해 섰습니다. 그날따라 비를 맞으며 묵묵히 흐르는 강이 왠지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이 시는 그날 강을 위로하려고 쓴 시 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첫 아들의 이름은 '게르솜' 이였다고 합니다. 게르솜 이라는 말은 "그곳의 이방인" 라는 뜻을 지녔다는 것을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첫아이를 품고, 사람의 삶 이란 '그곳' 인 세상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정의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 봅니다. 그 마음은 아마도 그 가을의 오후 비를 품던 강의 마음이며, 제 안에서도 가끔 흐르는 마음이 아닌가 합니다.

그러나 제가 좋아하는 것은 모세의 둘째 아이의 이름입니다. 그 이름은 "엘리에셀" 이였는데 그 의미는 "나의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 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정처없는 이방인의 마음이, 시간과 경험이 쌓이며 절망이 아니라 오히려 살아가는 동안 무상으로 주워지는 은혜의 섭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뀐 것 입니다.

'지평' 이라는 모험이 시작한지 만 5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빗방울이 강에 합류하듯 각자 다른 처지에서, 다른 기대를 가지고 이 모험을 시작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5년후, 10년후 우리는 어디에 있을지 모르지만 저는 바랍니다. 우리 모두에게 지평이란 우리를 더 큰 열림의 자리로 나가게 하는 귀한 곳이 되기를. 서로를 감사하며 이웃을 향해 열려 있는곳이 되기를. 혼자 서러워 흘러가는 강이 있다면 그 강을 향해 팔을 벌린 하늘의 마음을 알아가는 자리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