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제의 판결

 
 
 


2002. 12. 30. 제정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하 '도시정비법')은 도시기능의 회복이라는 유사한 기능을 하는 사업임에도 개별 법규로 규제되던 주택재개발사업, 주택재건축사업 및 주거환경개선사업 및 도시환경정비사업을 정비사업의 개념에 포괄하여 규제하고 있습니다.

도시정비법 제정 이전에 주택건설촉진법(이하 '주촉법'),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집합건물법')에 의하여 진행되던 주택재건축사업은 조합설립인가시와 사업계획승인시에만 행정처분으로 공법적 통제를 받았다는 점에서 주택재건축사업을 시행하는 조합이 유리한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토지소유권 확보의 어려움이나 법률관계의 불안정 등은 약점으로 작용하였습니다.1) 그러나 도시정비법의 제정으로 조합설립인가와 사업계획승인이라는 공법적 통제만 받았던 주택재건축사업도 조합이 시행하는 다른 정비사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비구역의 지정', '추진위원회 승인', '조합설립인가',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이전고시', '청산금부과처분'의 행정처분으로 공법적인 통제를 받게 되었습니다.

     
 


주택재건축사업은 전형적인 공법으로 규제되던 주택재개발사업과는 달리 재건축결의, 권리배분에 관한 규율을 사법인 집합건물법과 일반 사법의 원리에 따라 해결하여 왔습니다. 도시정비법 시행 이전에 선고된 법원의 판례는 재건축결의라는 집단적 의사결정절차에서 1명의 개인이라도 결의사항을 불충분하게 고지받았다면 전체 재건축결의를 무효시킬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고, 최근 대법원 판결에 의하여 조합설립인가처분의 성격이 설권적 처분으로 규정되기 전까지 아무런 수정 없이 대표적인 판시내용를 반복해서 원용하고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판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집합건물의소유및관리에관한법률 제47조 제2항에 의하면 재건축의 결의는 구분소유자 및 의결권의 각 5분의 4 이상의 다수에 의한 결의에 의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같은 조 제3항, 제4항에 의하면 재건축의 결의를 할 때에는 건물의 철거 및 신건물의 건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과 신건물의 구분소유권의 귀속에 관한 사항을 정하여야 하고, 위와 같은 사항은 각 구분소유자 간의 형평이 유지되도록 정하지 아니하면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위 재건축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은 구분소유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재건축에 참가할 것인지, 아니면 시가에 의하여 구분소유권 등을 매도하고 재건축에 참가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고, 재건축 결의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으로서, 재건축의 실행단계에서 다시 비용 분담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분담액 또는 산출기준을 정하여야 하고 이를 정하지 아니한 재건축 결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이다(대법원 1998. 6. 26. 선고 98다15996판결, 대법원 2002. 3. 15. 선고 2001다77819 판결 등, 이상 집합건물법상 재건축결의사항 중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2005. 3. 18. 법률 제739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6조 제2항 및 같은 법 시행령(2005. 3. 8. 대통령령 제1873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26조 제1항에 의하면, 주택재건축사업의 추진위원회가 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때에는 건설되는 건축물의 설계의 개요,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략적인 금액, 그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 사업 완료후의 소유권의 귀속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이러한 건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은 토지 등 소유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재건축에 참가할 것인지, 아니면 시가에 의하여 소유권 등을 매도하고 재건축에 참가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는 것으로서 조합설립동의의 내용 중 가장 중요하고 본질적인 부분이므로, 토지 등 소유자들이 각자 어떤 ○○아파트 등을 신청할 수 있는지, 토지 등 소유자의 권리가액 평가방법, 앞으로 신청할 ○○아파트 등의 분양가액은 권리가액과 대비하여 어떠한 비율로 책정되는지 등 재건축의 실행단계에서 다시 비용 분담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분담액 또는 산출기준이 정하여져야 한다고 할 것이고, 이러한 사항을 정하지 않은 조합설립동의서에 기초한 재건축을 위한 결의는 무효라고 할 것이다(대구지방법원 2009. 4. 10. 선고 2007나11997 판결 참조).

위와 같이 도시정비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다수의 하급심 판례에서는 종래의 민사법원이 내렸던 재건축결의하자에 관한 법리를 문장도 변함없이 거의 차용하고 있던 실정이었습니다. 이러한 법리를 그대로 차용하거나 심지어 주택재건축사업이 아닌 주택재개발사업, 도시환경정비사업에까지 해당 법리를 넓혀 적용한 하급심 판례의 태도 때문에 전국의 정비사업조합은 혼란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드물게 보는 하급심 판례에서는 위 법리를 차용하면서도 주택재건축사업의 실태를 반영하여 추후 보완을 통한 치유 법리나 종래 법리를 완화하는 논리를 보완적으로 적용하여 재건축결의하자 내지 조합설립동의하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습니다.

"…피고는 이 사건 소가 제기된 이후 피고가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 등에 대하여 재개발사업의 실행단계에서 다시 그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아니하여도 될 정도로 구체적으로 정하여 토지 등 소유자로부터 새롭게 조합설립동의를 받았음으로, 피고의 설립은 유효하다고 주장한다…이 사건 제2동의서에 첨부된…종전 토지 및 건축물의 감정평가현황, 권리가액의 인정기준, 조합원에 대한 공동주택의 공급면적 및 분양가격 등이 상세히 기재되어 있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 위 인정사실에 의하면 이 사건 조합설립동의와는 별도로 이 사건 제2동의서에 기초하여 조합설립동의가 유효하게 이루어졌다고 봄이 상당하므로 결국 피고의 설립은 유효하다 할 것이다(서울북부지방법원 2009. 6. 12. 선고 2009가합1348 판결)"

"…다만, 조합설립인가 당시 위와 같은 사항에 관하여 동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재건축사업의 실행단계에서 조합원 총회에서 그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하여 도정법상 가중정족수에 의한 결의가 있고 그 결의의 내용이 조합원들 간의 형평이 유지되도록 정한 것이라면, 위와 같은 하자는 치유된다고 봄이 상당하다(서울행정법원 2009. 3. 26. 선고 2008구합16995 판결)"

"다만, 집합건물의 재건축은 보통 개별 동에 국한되지 아니하고 수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일단의 단지 내에 존재하는 수많은 구분소유자 전원을 상대로 하는 사업인 만큼 그 추진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교차되어 의견을 통일하기가 쉽지 않고, 그 추진과정에서 재건축에 추가로 참가하거나 탈퇴하는 구분소유자가 생길 뿐 아니라 법령의 개정, 주택시장의 변화 등으로 외부여건이 변동하게 마련이어서 재건축을 추진하는 초기 단계에서 구체적이고도 확정적인 추진계획을 마련할 것을 요구하기는 어렵고, 재건축추진위원회의 활동, 조합의 설립, 사업관계자와의 협의 등의 과정을 거치면서 단계적ㆍ발전적으로 형성되어 건축설계나 사업계획 등이 완성되면서 사업의 전반적인 모습이 비로소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통례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감안하여 집합건물법 제47조 제3항 제2호는 재건축결의사항 중 하나로 '건물의 철거 및 신건물의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산액'이라고 규정한 것으로 보이고, 제3호는 '제2호의 개산액을 기준으로 한 비용의 분담'을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2003. 7. 1.부터 시행된 도시정비법 제11조 제1항에 의하면 조합은 설립인가를 받은 후에야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도록 규정함으로써 조합 창립총회 당시에 조합원들이 비용분담에 관한 구체적인 합의를 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사정상 조합설립동의사항을 열거한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26조 제1항 중 제2호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략적인 금액', 제3호 '제2호의 금액을 기준으로 한 비용의 분담'을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도시정비법 제48조 제1항에 의하면 시공사 선정 후 분양신청 기간이 종료된 다음 분양신청 현황을 기초로 '분양대상자별 분양예정인 대지 또는 건축물의 추산액, 분양대상자별 종전의 토지 또는 건축물의 명세 및 사업시행인가의 고시가 있은 날을 기준으로 한 가격, 정비사업비의 추산액 및 그에 따른 조합원 부담규모 및 부담시기' 등의 사항이 포함된 관리처분계획에 대하여 조합총회의 의결을 거쳐 시장ㆍ군수의 인가를 받도록 하고 있어, 관리처분계획의 인가단계에서야 비로소 조합원의 비용분담사항이 어느 정도 구체화될 수 있고, 재건축결의 또는 조합설립동의 당시에는 조합원의 비용분담사항에 대하여 구체적 금액으로 정할 수 없고 산출기준으로 정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재건축결의 또는 조합설립동의를 하면서 '건물의 철거 및 신건물의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 등을 정할 때에는 재건축의 실행단계에서 다시 비용분담에 관한 합의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그 분담액을 구체적으로 정하기는 사실상 어렵다고 할 것이고, 다만 구분소유자들로 하여금 상당한 비용을 부담하면서 재건축에 참가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그 개략적인 금액을 기준으로 비용분담의 산출기준을 정하면 족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09. 7. 30. 선고 2008가합71928 판결).2)

위 판례들은 집합건물법 제47조의 재건축결의와 도시정비법 제16조의 조합설립동의를 동일시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한 견해는 조합설립인가를 행정법상 기본행위(재건축결의, 조합설립동의)를 보충해 주는 정도의 효력을 가진 강학상 인가로 인식하는 기존 대법원 판례의 한계를 넘지 못한 것입니다(대법원 1994. 10. 14. 판결 93누22753판결, 대법원 2004. 7. 22. 선고 2004다13694판결).

따라서 법원이나 정비사업전문변호사들은 기본행위인 조합설립동의의 하자를 치유하는 방법 내지 추완하는 방법 및 그 정당성에 대한 법리를 구성하려고 많이 노력하여 왔습니다.

 


위 인가처분의 성격에 대한 학설상 논의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법원은 2009. 9. 17. 선고 2007다2428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관리처분계획에 대한 총회결의는 관리처분계획이라는 행정처분에 이르는 절차적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관리처분계획은 인가ㆍ고시된 경우 행정처분으로서 효력이 발생하게 되는데, 종전의 태도로 본다면 관리처분계획에 대한 총회결의는 기본행위이고, 인가처분은 이를 보충해 주는 강학상 인가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러나 위 전원합의체 판결은 종래 대법원 판결에서는 기본행위로 평가해 줄 총회결의가 절차적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쟁송의 유형에도 변화를 주어 관리처분계획에 대한 인가ㆍ고시가 있는 경우 총회결의의 하자를 이유로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소송은 항고소송으로서 관리처분계획의 취소 또는 무효확인을 구하여야 하는 것으로 수정되었습니다.

대법원은 곧이어 추후 조합설립무효의 판단과 관련하여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되는 판시를 하였습니다. 대법원은 2009. 9. 24. 선고 2008다60568 판결에서 행정청이 도시정비법 등 관련 법령에 근거하여 행하는 조합설립인가처분은 단순히 사인들의 조합설립행위에 대한 보충행위로서의 성질을 갖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법령상 요건을 갖출 경우 도시정비법상 주택재건축사업을 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행정주체(공법인)로서의 지위를 부여하는 일종의 설권적 처분의 성격을 갖는다고 판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대법원은 재건축사업에 있어 부동의 역할을 해온 조합설립결의(동의)의 지위를 하자가 있을 경우 조합설립 자체를 무효로 만들어버리는 중대한 기본행위에서 조합설립인가처분이라는 행정처분을 하는데 필요한 요건 중 하나에 불과한 것으로 행정법적 시각으로 바로 잡게 됩니다.


이러한 조합설립결의(동의)의 법적 성격에 대한 대법원의 태도 변화는 전원합의체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만, 도시정비법이라는 공법과 그 안에 규정된 조합설립인가처분이라는 공법인을 만들어내는 독특한 성격의 행정행위가 본질 그대로 법원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기초가 마련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었습니다.

대법원은 기본행위를 민사법원에서 다투는 조합설립무효(확인)소송, 재건축결의무효확인소송, 관리처분총회결의무효확인소송 등을 모두 행정법원에서 관련 처분에 대한 항고소송으로 정리할 것을 요구하였고, 정비사업관계자들은 행정법원이 사정판결도 가능한 행정사건으로서 성격을 반영하여 심리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 기대의 근거는 바로 행정처분의 공정력이었고, 무효에만 이르지 않는다면 이미 쟁송기간이 지난 상태가 다수였으므로 이미 완성된 법적 상태를 보존할 수 있으리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민사법원의 경우에도 갑자기 늘어난 조합설립무효(확인)소송에 대한 반성적 고려로서 가능하면 치유를 인정해 주고, 심지어 종래 비용분담에 관한 사항에 대한 엄격한 판단기준에서 하급심으로 갈수록 추후 보완을 통한 치유를 적극적으로 허용해 주는 쪽으로 변화하던 중이었습니다. 즉 신(新)동의서를 징구하여 서증으로 제출하면 어떻게든 조합설립무효만큼은 면하게 해주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었습니다.

행정법원은 갑자기 관할을 가지게 된 정비사업에 관한 쟁송들에 대하여 행정사건의 기준을 가지고 도시정비법이 추구하는 목적, 재건축사업의 공공성, 공법인인 조합의 이익과 침해받는 개인의 이익 등을 형량하여 결론을 내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초기 행정법원은 오히려 민사법원의 하급심에서 추구하고 있는 소급적인 하자의 치유방식(물론 무효의 법리와 어긋나는 부분은 있습니다)보다 엄격한 잣대를 보여주었고, 2009년 이전 대법원 판례의 설시를 그대로 차용하였습니다.

"우선 이 사건 관리처분계획의 조합 설립 인가에 관한 하자의 치유 여부에 관해 본다. 재개발조합설립에 관한 동의 당시 비용의 분담에 관한 사항을 정하지 않고 사업실행단계에서 조합원총회가 이에 관해 결의하는 경우(새로이 동의서를 징구하는 경우에도 같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조합원들간의 형평을 보장하기 위해 조합설립시 필요한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에 관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다만, 이 경우 조합원총회결의 또는 새로운 동의서 징구 당시 법에 의해 요구되는 동의에 관한 요건을 충족하면 된다고 할 것이다), 이 경우 최초 조합설립 동의에 존재하던 하자는 치유돼 그때부터 유효하게 되거나 그때 새로운 동의가 있는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대법원 1998.6.26. 선고 98다15996 판결, 2005.4.21. 선고 2003다4969 전원합의체 판결 등 참조)고 할 것이므로, 비록 피고 조합이 이 사건 관리처분계획 수립 후 이 사건 사후 동의서를 다시 제출받았다고 하더라도 피고 조합의 설립인가가 소급적으로 유효하게 돼 이 사건 관리처분계획 또한 소급적으로 적법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서울행정법원 2009. 12. 4. 선고 2009구합11973)

민사법원에서 일고 있었던 움직임이 법리적으로 정치하다고 보기는 어려웠지만, 피고가 된 조합들은 나름 조금씩 변해가고 있던 법원의 태도에 밤낮 땀을 흘리며 새로운 동의서를 징구하고 있을 때였으나, 위 행정법원의 판단에 따라 또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종래 민사법원에서 오랜 기간 동안 고민해 오던 논리들이 행정법원에는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거나 적용 자체가 배제되었고, 행정법원은 결정적인 판단에 있어서는 종래 대법원이 취해 오던 재건축결의ㆍ조합설립동의의 하자에 관한 엄격한 기준만을 차용해 올 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조합설립인가처분을 설권적 처분으로 보고, 조합설립결의(동의)가 인가처분이 내려지는 절차의 한 요건에 불과하다면 과연 조합설립결의(동의)에 어느 정도 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전체 인가처분이 무효가 되는 것은 부당한 것이고, 저희 법인은 다수의 조합설립무효사건, 매도청구사건 등에서 이를 극복할 논리를 고민하였습니다. 그 결론은 바로 처분의 하자기준으로 판례와 통설이 받아들이고 있던 중대명백설의 신중한 적용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설ㆍ판례는 행정처분의 하자가 중대한 법규의 위반이고 또한 그것이 외관상 명백한 것인 때에는 무효이고, 그에 이르지 않는 것인 때에는 취소할 수 있음에 불과하다고 보고 있습니다(대법원 20078. 6. 14. 선고 2004두619판결).

그러나 정비사업분쟁을 처음 접하게 된 행정법원은 다른 처분의 하자는 중대명백설에 의하여 판단하면서 조합설립인가처분의 하자에 대해서는 그 기본행위인 조합설립결의(동의)의 하자를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높게 평가하여 전체 인가처분의 무효를 판단하는 기존 대법원 판결의 태도를 답습하였습니다. 즉 행정법원은 무효가 아닌, 취소될 수 있는 재건축결의의 하자, 조합설립동의의 하자에 대하여 기준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 판시는 "…이 사건 동의서에는 신축건축물의 설계 개요로서 대지와 건축 연면적, 층수와 철거비와 신축비, 기타 사업비용의 액수가 기재돼 있고, 비용분담에 관해 피고 조합 정관에서 정하는 것으로 기재돼 있다. 그렇지만, 피고 조합 정관에는 비용분담에 관한 결정권한이 총회에 있음을 정하고, 정비사업비의 조달원천과 조합원에게 정비사업비를 부과하는 절차와 징수방법에 관해 정하고 있으나, 비용을 분담하는 기준에 관해서는 '추후 사업시행구역 안의 토지 및 건축물 등의 위치•면적•이용상황•환경 등 제반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관리처분계획에 따라 공평하게 금액을 조정해야 한다'라는 추상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내용만 기재돼 있을 뿐이다"라고 종전 민사법원에서 설시하던 내용을 그대로 이기한 것에 불과했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09. 12. 4. 선고 2009구합11973 판결). 위 하급심판결은 위 내용 중 '추상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내용'이라는 판단은 무엇을 근거로 하였는지, 또한 정관의 규정이 왜 구체적이지 못한지에 대한 설시가 없습니다.

주택재건축사업에 대한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조합과 공무원으로서 국토해양부라는 소관부처가 고시한 규범인 정비사업조합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 별지 조합설립동의서 양식의 하자를 외관상 명백히 알 수 있었느냐는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했습니다. 조합설립동의서의 하자유무, 특히 법원이 일관되게 판시해 오는 비용분담의 사항의 하자는 공무원이 직무의 성실한 수행상 당연히 요구되는 조사대상이라고 보기도 어렵거니와 다음 대법원 판례에 의하더라도 공법인인 조합, 담당공무원 등 행정주체의 행위의 하자를 책할 수 없다고 보아야 하므로 외관상 명백한 하자라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행정처분에 사실관계를 오인한 하자가 있는 경우 그 하자가 중대하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다면 그 처분을 당연무효라고 할 수 없는 바, 하자가 명백하다고 하기 위하여는 그 사실관계 오인의 근거가 된 자료가 외형상 상태성을 결여하거나 또는 객관적으로 그 성립이나 내용의 진정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임이 명백한 경우라야 할 것이고, 사실관계의 자료를 정확히 조사하여야 비로소 그 하자 유무가 밝혀질 수 있는 경우라면 이러한 하자는 외관상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대법원 1992. 4. 28. 선고 91누6863판결)"

따라서 행정법원은 민사법원에서 이관된 사건이므로 이전 사건에서 최고법원이 세워놓은 논리구조 대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항고소송에서 무효, 취소를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엄밀히 도시정비법상 행정처분의 하자를 판단하여야 할 부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무효ㆍ취소의 구분은 만일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무효가 된다면, 그 하자가 승계되어 그 이후의 처분들이 모두 무효가 될 수 밖에 없으나, 취소사유에 불과하다면 쟁송기간이 지난 후에는 그 이후의 처분들에 대하여 하자승계를 이유로 위법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실익이 있습니다.3)

   
 


조합설립인가처분의 하자에 대한 중대명백설의 구체적 기준에 대한 논쟁은 조합설립무효확인소송에서 피고 조합의 항변이나 매도청구소송에서 원고 조합의 주장과 관련하여 의미가 있습니다. 대법원은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설립에 대한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가 '정비사업조합 설립추진위원회 운영규정'(건설교통부 고시 제165호)의 붙임 운영규정안 제34조 및 [별지3-1]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설립동의서(이하 '표준동의서')에 의해 이루어진 사안에서, 위 표준동의서상의 기재 내용이 조합원이 부담하게 될 사업비용의 분담기준이나 사업완료 후 소유권 귀속에 관한 사항 등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은 것이어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함으로써 종래 표준동의서를 이용하여 조합설립결의를 한 정비사업조합에게 매도청구소송이나 조합설립무효소송에서 승소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조합설립동의서 징구시에는 도대체 사업비가 얼마나 소요될 지 확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신축물의 설계 개요,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비용을 백지로 하여 동의를 받는 경향이 있었고, 이렇게 백지 동의서를 징구한 조합들은 그 내용이 불충분한 정도가 아니라 고지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도저히 구제의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서울 동대문구의 한 재건축조합이 1심에서 백지동의서, 표준동의서 등을 이유로 조합설립동의서가 무효이기 때문에 조합설립이 무효라는 이유로 매도청구를 기각당하고 제기한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의미있는 판결을 내립니다. 바로 중대명백설에 근거한 판단입니다.

"…피고들이 주장하는 위 사유와 같이 신축물의 설계 개요 및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비용이 공란인 채로 동의가 이루어졌다면 재개발조합의 설립과정에서 그 직접의 이해당사자인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가 가지는 현저한 의미 등에 비추어 사후에 위 공란을 보충하여 조합설립인가신청을 하였다 하더라도 이에 기한 조합설립인가처분은 그 하자가 중대하다고 할 것이나, 한편 조합설립인가신청을 받은 행정청으로서는 동의의 내용에 관하여는 동의서에 구 시행령 제26조 제1항 각호의 법정사항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지를 기준으로 심사할 수 밖에 없고, 토지 등 소유자가 동의서를 제출할 당시부터 신축물의 개요와 철거 및 신축비용에 관하여 기재가 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그 당시는 공란이었으나 사후에 이를 보충기재하였는지 여부까지 심사할 권한이나 의무는 없다 할 것이므로 앞서 본 위 하자는 그것이 외관상 명백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할 것이다(서울고등법원 2010. 6. 23. 선고 2009나21302 판결).4)

서울고등법원은 1심에서 패소한 7건의 매도청구소송에서 위와 같은 이유로 모두 항소를 인용하였습니다. 원고들 중 일부는 상고하였으나, 심리불속행판결로 항소심 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대법원은 2010. 10. 29. 건축물 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란을 공란으로 징구한 후 그 동의서를 제출하여 조합설립인가처분을 받은 조합이 제기한 매도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조합의 매도청구를 기각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하였습니다. 그 판시는 다음과 같습니다.

"원심이 인정한 사실관계에 의하면, 원고는 2006. 5. 13.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2006. 6. 12. 서울특별시 노원구청장으로부터 설립인가를 받은 후 2006. 6. 15. 법인설립등기를 마친 사실, 토지 등 소유자가 이 사건 조합설립 동의를 할 당시 동의서에는 '건축물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 란이 공란이었으나, 행정청에 조합설립인가를 신청하기 위하여 제출된 조합설립동의서에는 위 공란이 모두 기재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 수 있고, 이와 같이 조합설립인가 신청시에 행정청에 제출된 조합설립동의서에 '건축물철거 및 신축비용 개산액'이 기재되어 있었던 이상 비록 조합설립 동의 당시에 이 부분이 공란이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인가한 행정청의 조합설립인가처분이 당연무효라고 할 수는 없다(대법원 2010. 10. 29. 선고 2009다29380 판결)"

비록 심리불속행 판결이지만, 위 서울고등법원 판결을 확정시킨 상고심판결과 위 대법원 판결은 백지동의서를 징구한 조합의 매도청구소송이나 조합설립무효소송에서 향후 법원이 어떠한 기준으로 매도청구소송의 주체가 되는 조합의 존속 여부를 판단할지 잘 보여주는 판결이라고 할 것입니다.

     
 


결국 대법원은 행정법원을 포함한 하급심 법원에서 재건축결의 및 조합설립동의의 절대적인 위치를 강조하던 과거 민사법원(대법원 판결 포함)의 오랜 구습에서 벗어나 도시정비법 및 그에 포함된 처분이 가지는 의미, 처분의 하자에 대한 행정법 고유의 하자 판정 기준을 구체화하여 적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일부 동의사항을 백지로 할 수 밖에 없었던 사정을 원죄(原罪)처럼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 상당수 정비사업조합에 처분의 공정력을 바탕으로 하여 향후 자신있게 사업을 진행해 나갈 수 있고, 조합원들의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백지동의서의 경우 구제를 받으려면 반드시 조합설립인가신청 이전에 모두 보충할 것을 필요로 합니다. 따라서 동의서 자체의 하자가 있어 동의율이 부족하거나, 공무원이 접수한 동의서에 구체적인 내용의 기재가 탈루되어 있다면 그 조합은 설립무효를 면치 못할 것이므로 이 점을 구분하여야 합니다(대법원 2010. 1. 28. 선고 2009두4845 판결).

"원심판결의 이유 및 기록에 의하면, 참가인조합의 설립추진위원회가 토지 등 소유자들로부터 받아 피고에게 제출한 동의서에는 구 도시정비법 시행령 제26조 제1항 제1호의 '건설되는 건축물의 설계의 개요' 및 제2호의 '건축물의 철거 및 신축에 소요되는 비용의 개략적인 금액'에 관한 각 사항을 기재하도록 하는 난이 마련되어 있기는 하나 구체적인 내용의 기재가 전적으로 탈루되어 있는 사실그럼에도 피고는 2007. 1. 24. 참가인조합의 설립을 인가하는 이 사건 처분을 한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피고의 이 사건 처분에는 재개발조합설립인가의 요건인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내용에 관한 심사기준을 위반하여 효력이 없는 동의를 유효한 것으로 처리한 위법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재개발조합의 설립과정에서 그 직접의 이해당사자인 토지 등 소유자의 동의가 가지는 현저한 의미 등에 비추어 이 사건 처분의 위와 같은 하자는 중대하다고 할 것이고, 나아가 동의서의 외관상 그 하자를 쉽사리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유효로 처리하였다는 점 등에 비추어 그 하자의 명백성도 인정된다"


1) 새로운 재건축ㆍ재개발이야기 1, 김종보, 전연규 공저, 한국도시개발포럼, 2008, 33쪽.

2) 다만 상고심인 대법원 2009. 11. 26. 선고 2009다64864판결은 원심을 행정법원에 이송한다는 취지로 파기이송하였습니다.

3) 대법원 2007. 9. 6. 선고 2005두11951 청산금처분취소사건의 판결은 위 논의의 실익을 보여주고 있다.

  “구 도시재개발법(2002. 12. 30. 법률 제6852호로 폐지되기 전의 것) 제34조, 제35조, 제42조, 제43조의 각 규정에 의하면, 관리처분계획은 주택재개발사업에서 사업시행자가 작성하는 포괄적 행정계획으로서 사업시행의 결과 설치되는 대지를 포함한 각종 시설물의 권리귀속에 관한 사항과 그 비용 분담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행정처분이고, 청산금부과처분은 관리처분계획에서 정한 비용 분담에 관한 사항에 근거하여 대지 또는 건축시설의 수분양자에게 청산금납부의무를 발생시키는 구체적인 행정처분으로서, 청산금부과처분이 선행처분인 관리처분계획을 전제로 하는 것이기는 하나 위 두 처분은 각각 단계적으로 별개의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독립된 행정처분이라고 할 것이므로, 관리처분계획에 불가쟁력이 생겨 그 효력을 다툴 수 없게 된 경우에는 그 관리처분계획에 위법사유가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당연무효의 사유가 아닌 한 관리처분계획상의 하자를 이유로 후행처분인 청산금부과처분의 위법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런데 원고(선정당사자, 이하 '원고')가 이 부분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사유들은 모두 관리처분계획에서 정하고 있는 비용 분담에 관한 사항 즉 청산금 산정방법에 하자가 있다는 것으로서 설령 그 주장과 같은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하자는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대하고도 명백하다고 볼 수 없어 관리처분계획의 당연무효 사유에는 해당하지 아니한다(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1두6333 판결 등 참조).

원심이 같은 취지에서 이 사건 관리처분계획에 이미 불가쟁력이 발생한 이상 관리처분계획에 원고가 주장하는 바와 같은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그러한 이유로 이 사건 청산금부과처분을 다툴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은 옳고, 거기에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바와 같은 청산금 산정에 관한 법리오해나 심리미진, 채증법칙 위배 등의 위법이 있다고 할 수 없다.

4) 달리 소개할 논점도 많지만, 본 글에서는 백지동의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