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설부동산 칼럼



홍성준 변호사
sjhong@js-horizon.com

 

 

건설회사와 회생절차


우리가 위기를 실감하지 못하고 있던 2008년 하반기에 갑자기 벌어진 리만 사태 이후 적지 않은 국내 건설회사들이 도산의 위기로 내몰렸던 것을 기억합니다. 최근의 기업활동이 다른 기업, 나아가 다른 산업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는 것처럼, 건설회사의 도산이 단순히 도산하는 몇몇 회사만의 문제가 아닌지라 지난 1년여 동안 위기에 처한 건설회사의 위기 탈출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주단협약 등 다양한 형태의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시행되어 왔으나, 유감스럽게도 1년여가 지난 지금 언론지상에 국내건설회사의 구조조정 문제가 다시 거론되기 시작했고, 지난 3월 16일 그런 위기를 탈출하지 못한 성원건설이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했으며 그 이외의 몇몇 건설회사의 도산을 다시 걱정하게 되었습니다.

과거 법관으로서, 그리고 변호사로서 회생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필자는 회생절차는 재정적으로 위기에 처한 기업의 재건을 지원하여 우리 사회의 경제적 효용을 제고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업무 경험에 비추어 보면, 사업 구조적으로나 회생절차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는 현실적인 이유로 최근의 건설회사는 회생절차를 통하여 기업의 재건을 도모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선, 건설회사는 사업수행을 위해 빈번하게 활용하는 Project Financing으로 인해 심각한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정상적인 경제 여건 하에서는 건설사업의 시행사가 사업에 소요되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데에 Project Financing이 유용한 수단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는 금융구조상 수익에서의 우선권이 확보되고 높은 수익률이 보장되며 시행사의 도산으로부터 거의 완벽하게 격리시키는 구조를 갖고 있어 대주단이 금융으로 인한 risk를 최소한도로 부담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대주단이 자력과 신용도가 거의 없는 시행사를 차주로 하여 사업의 전망을 평가하여 금융을 하면서도 그 시공을 담당한 건설회사에 시공과 관련된 범위를 넘어서서 거의 무한대로 시행사의 채무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이로 인하여 시공을 담당하는 건설회사는 시행사가 소요 자금의 조달에서 차질을 빚을 경우 과중한 채무의 부담을 그대로 떠안을 수밖에 없는 반면, 그 사업이 고수익을 목표로 하는 대주단을 위하여 도산의 risk로부터 절연되어 있어 자신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다음으로, 건설회사에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재정적인 어려움을 건설회사가 주도하여 유효 적절하게 헤쳐나갈 수 있는 사회적인 환경이 조성되어 있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빠진 기업이 자신이 주도적으로 구조조정을 할 수 있는 회생절차가 아니라, 대주단이 집단적으로 주도하는 법원 외의 프로그램에 의존하도록 강제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봉착한 건설회사는 채권단의 채무 만기 연장, 신규자금의 지원 등을 수단으로 하여 선제적으로 유인하는 대주단협약에 가입하여 채권단의 지원을 기다리면서 구조조정의 적기를 놓치게 되고 종국에는 애초보다 훨씬 악화된 상태로 회생절차에 진입하게 되는데, 그 시점에는 구조조정을 수행할 수 있는 동력을 이미 잃은 상태이어서 어찌 보면 처음부터 성공할 것으로 기대할 수 없는 회생절차를 통한 구조조정을 시작되는 하는 순서를 밟아나가게 됩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IMF 사태 이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건설회사가 회사정리절차, 회생절차를 통하여 독자적인 구조조정에 성공하고서 정상 기업으로 거듭난 경우를 알지 못합니다. 그동안 건설회사가 회생절차를 성공적으로 졸업하는 유일한 통로는 보유 자산의 처분을 통하여 기업가치의 훼손을 지연시키다가 최종적으로는 제3자의 인수를 전제로 한 M&A를 통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주 또는 경영진의 회생절차 신청이라는 의사결정의 지연도 문제라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의사결정의 지연이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상황에 기인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경영권 유지 내지 주주 이익에 치중하여 채권자, 거래 상대방, 근로자 등 더 많은 이해관계인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입니다. 회생절차는 채권자를 포함한 모든 이해관계인이 손실을 감수하여야 하는 절차로서, 채권자가 손실을 덜 보고, 거래 상대방의 거래상 손실을 최소화하며, 근로자의 고용이 유지되기 위하여는 채무자 회사의 기업가치가 온전하게 유지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주주 이외의 이해관계인의 이익이 최대한으로 보장되어야 비로서 기업가치의 배분에서 그다음 순위에 있는 주주의 이익이 보장되는 정도도 최대한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재정적 파탄지경에 직면한 기업의 가치는 시시각각으로 훼손되는 것이 현실이어서 효율적인 구조조정의 착수가 지연될수록 그 훼손의 정도가 확대되고 결과적으로 채권단, 거래 상대방, 근로자는 물론 주주 스스로에게도 그 손실을 더욱 확대시키게 되므로, 경영권에 대한 집착 등을 이유로 회생절차의 신청을 지연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조기에 회생절차로 진입하여 효율적인 사업 구조의 재편을 도모하는 것이 그나마 모든 이해관계인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건설회사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회생절차를 통하여 정상 회사로 재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복잡한 법률구조와 사업구조를 가지고 있는 건설회사가 당면한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조기에 정상회사로 거듭나기 위하여는 첫째, 재정적으로 어려워지기 시작한 초기 시점에 사업의 기반을 유지한 상태에서 회생절차를 신청하는 것이 필요하고, 둘째, 회생절차를 통한 사업구조의 재편을 위하여 효율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이에 소요되는 비용의 확보가 필요하고 이를 위하여서도 회생절차의 조기 신청이 필요하며, 셋째, 모든 이해관계인의 최대이익을 위하여는 회생절차의 신청 전에 기업의 가치가 덜 훼손된 상태에서 늦어도 회생절차가 개시된 직후 그 가치의 훼손이 더는 확대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조기에 M&A를 통해 외부자금을 조달하여 채무를 정리하고 사업을 재건하여 회생의 길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들어 우리의 법원이 이런 형태의 M&A를 낯설어하지 않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건설회사의 도산을 다시 걱정하게 된 이 시점에서 채권자와 주주들이 상생할 수 있는 의사결정이 아쉽습니다.